이미 보도된 기사와 같은 내용을 보도하면서 단독 이름표를 붙이는 ‘단독 남용 관행’이 처음으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돼 조정을 받았다. 언중위가 ‘언론계가 무분별한 단독 경쟁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청구 취지를 받아들이면서 기자 간 불만 토로로만 다뤄지던 관행이 중재 기관에 공식 접수되기 시작했다.

박아무개 주간조선 기자는 지난달 22일 한국일보 11월12일자 “경찰 ’자금유용의혹‘, 홈앤쇼핑 잇단 압수수색” 제목의 기사를 대상으로 언중위에 정정보도 신청을 냈다. 주간조선이 이틀 먼저 동일한 내용을 보도했기에 한국일보 기사 제목에서 단독을 빼고 기사 하단에 ‘위 기사는 주간조선 2582호의 단독기사임을 밝힙니다’란 문구를 삽입해달라는 요구였다.

양측은 지난 2일 언중위 조정을 거쳐 단독 삭제 청구만 받아들인다는 요지로 합의했다. 한국일보가 앞선 11월16일 기사 제목을 수정한 점이 조정에 반영됐다. 한국일보는 이 과정에서 ‘독자 취재로 기사를 작성했다. 주간조선과 한국일보 기사 내용에 차이도 있다. 기사를 낼 때 다른 기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불찰로 단독 보도를 냈고, 두 기사 내용 차이가 단독을 유지할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해 16일 단독을 삭제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신교계 언론 '뉴스앤조이'가 지난 7월 편집국장 칼럼으로 언론의 단독 표기 남용 관행을 비판했다. 사진=뉴스앤조이 홈페이지 갈무리
▲개신교계 언론 '뉴스앤조이'가 지난 7월 편집국장 칼럼으로 언론의 단독 표기 남용 관행을 비판했다. 사진=뉴스앤조이 홈페이지 갈무리

 

제목이 수정된 후에도 박 기자가 조정 신청을 유지한 이유는 사안이 특정 언론사의 문제가 아니라서다. 무분별한 단독 표기 경쟁이 오래 곪아 언론 불신을 초래하는 부작용을 낳았지만 공식 중재기관을 통한 문제제기는 이뤄진 적이 없었다. 박 기자는 “개별 언론사를 탓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구조적인 문제는 공식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공론화되고 개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단독 가로채기’ 피해가 전국단위 종합지, 방송사 등 규모가 큰 매체보다 중·소규모 매체에 쏠린 점도 반영됐다. 박 기자는 “사실 1인 미디어나 소규모 매체는 거대 언론사를 상대로 항의하기 쉽지 않다. 언중위가 이런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룬 전례를 남겨놓으면 나중에 같은 문제가 벌어져도 소규모 매체 기자들이 문제제기를 하기 용이하다고 판단해 취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소규모 매체들 피해는 반복돼왔다. 개신교계 언론 ‘뉴스앤조이’의 구권효 편집장은 지난 7월 “언론의 단독병”이란 칼럼에서 직접 KBS, JTBC 등을 비판했다. 지난 6월 KBS는 뉴스앤조이가 보도한 조은희 서초구청장 발언 논란을 다루고 싶다며 뉴스앤조이로부터 취재 도움을 얻었으나 기사에 ‘단독’을 붙여 냈다. JTBC는 지난 4월 파리열방교회 송영찬 목사의 성폭행 의혹을 보도하며 “송 목사가 신도들을 상습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JTBC 보도를 통해 불거졌다”고 전했다. 뉴스앤조이가 의혹을 보도한 지 한 달 후다.

이들 사이에선 “소규모 매체의 보도 파급력이 작은 점을 악용한다”는 원성도 높다. 한 노동계 전문지에서 일했던 기자는 “김용균씨 산재사망 때 한국서부발전이 김씨 사망 직후에도 기계를 재가동하려고 예비 벨트를 점검했다는 팩트가 나와 한 인터넷신문이 1보를 다뤘고, 노동계 전문지가 2보까지 냈으나 서울신문이 이틀 후 단독을 달아 낸 사례가 있다. 다른 사례도 많아 일일이 기억하긴 힘들다”고 밝혔다.

▲ 자료사진. TV조선(위)과 채널A 뉴스 프로그램 갈무리.
▲ 자료사진. TV조선(위)과 채널A 뉴스 프로그램 갈무리.
▲2014년 10월 31일 같은 사안을 다룬 경향신문 기사(위)와 프레시안 기사 갈무리.
▲2014년 10월 31일 같은 사안을 다룬 경향신문 기사(위)와 프레시안 기사 갈무리.

 

경북 지역 온라인신문 뉴스민은 경향신문으로부터 ‘기사보류’ 요청을 전달받은 적도 있다. 노조탄압 문제가 심각한 구미의 아사히글라스를 꾸준히 취재해온 뉴스민은 2016년 4월 회사 간부가 조합원들에게 노조 탈퇴를 회유한 녹취록을 확보했다. 기사를 송고하기 직전 뉴스민은 관련 취재원으로부터 ‘경향신문이 단독 보도를 준비했는데 기사를 늦게 내줄 수 없는지 물어본다’는 요구를 전해 들었다. 뉴스민은 기사를 그대로 냈고 경향신문은 다음 날 같은 쟁점의 기사를 실었다.

한 종합편성채널로부터 단독 가로채기 피해를 본 적 있는 기자 A씨는 기자들이 저작권에 경각심이 없는 문제를 짚었다. A씨는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 경우 중소 매체 보도를 인용할지라도 원 소스를 명확히 밝히고, 다른 매체 보도에 추가 취재를 한 경우 최초 보도를 인용한다”며 “A매체가 최초 보도를 했음에도 B매체가 보도한 것으로 탈바꿈되는 건 기자 입장에선 기사를 뺏기는 셈”이라 비판했다.

뉴스민은 2012년 창간 이래 한번도 ‘단독’ 표기를 한 적이 없다. 천용길 편집장은 “(지역 독립언론 특성상) 뉴스민만 단독 보도하는 기사가 상당수인데 일일이 단독을 적는 것도 우습고, 또 매체 수가 매우 많은 상황에서 일일이 다른 기사를 체크할 수도 없다. 단독을 표기하는 게 맞지 않다”고 밝혔다. JTBC도 단독을 남용한다는 비판이 누적되자 지난해 2월 ‘뉴스 프로그램에서 단독 표현을 쓰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언론계에선 단독 남발 경쟁이 결국 언론 불신만 자초했다는 자성도 나온다. 단독·특종 등 수식어는 한 언론사가 다른 언론사보다 먼저 혹은 홀로 취재한 기사 중 ‘공익적 가치가 큰 기사’에 한해 붙는다. 그러나 타사가 보도한 기사나 기존 보도에 정보만 몇 개 추가한 기사에 원칙없이 남용되면서 독자의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지적이다.

김위근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은 “원 소스 출처를 밝히는 건 상식의 문제고 해외 언론만 봐도 원 소스 출처를 밝히는 기사를 쉽게 볼 수 있다. 한국 언론계엔 이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며 “누구나 접근 가능한 자료나 2차 자료 인용 보도에 단독을 다는 폐해까지 나오면서 언론 불신이 더 커진다. 타인의 저작물에 출처를 밝히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단독보도 가치도 이 문화 속에서 비로소 제대로 인정받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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