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화에 반대한 청년공채들의 집단행동은 이후 입사자의 판단 기준이자 역할 모델이 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29년차 역무원이자 연세대학교에서 노동권을 연구(사회학 전공)한 장경태 박사(53)는 지난달 2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서울교통공사 정규직화 2년이 지났지만 청년 공채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2017년 서울지하철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사무직 중심의 청년 공채 노동자들의 거센 저항을 목격한 뒤 내부토론을 관찰했다.

장 박사는 “서울시도, 서울교통공사도, 노조도 정규직화 과정에서 청년공채들 반발을 예상치 못했다”고 했다. 2016년 5월 2호선 구의역에서 용역업체 소속 김군(19)이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전동차에 받혀 숨졌다. 공분이 일었고, 위험의 외주화 중단과 안전관리 일원화 요구로 이어졌다. 서울시는 이듬해 1~8호선을 통합해 서울교통공사를 출범했다. ‘지하철 안전업무 분야 직영전환’도 추진했다. ‘직영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정규직과 여전한 격차 문제를 제기하자 서울시는 정규직 전환 정책을 발표했다. 장 박사는 “그간 신자유주의 경영기조에서 방향을 트는 긍정적인 정책이고, 정원과 예산도 기존 공채에 손해가 없게끔 따로 이뤄지니 정규직도 찬성하리라 봤다”고 했다.

그러나 청년 공채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2015년 이후 입사자 중심으로 ‘공정사회를 염원하는 서울교통공사 청년모임’이 결성하고 1인 시위와 대자보 붙이기, 청와대 청원 등 반대 활동을 적극 폈다. 정규직 임금을 쪼개 전환자들 임금을 충당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들은 줄이어 노조를 탈퇴했다. 99년 구조조정 이래 처음으로 대거 뽑은 공채 입사자들이었기에 기존 노조원과 위화감은 더 컸다. 서울지하철노조 역무지부는 청년공채 노동자들의 현장 목소리를 들으려고 6차례나 토론회를 열었다.

▲장경태 쌍문역 역무원이자 연세대 사회학 박사를 지난달 24일 서울 쌍문역 역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민주노총 서울교통공사노조 조합원이다. 사진=김예리 기자
▲장경태 쌍문역 역무원이자 연세대 사회학 박사를 지난달 24일 서울 쌍문역 역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민주노총 서울교통공사노조 조합원이다. 사진=김예리 기자

장 박사는 당시 청년공채들이 ‘원칙’을 강조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지하철 통합과 정규직화 과정에서 기존 청년공채는 얻는 것이 더 많았다. 서울시는 정원을 확대해 무기계약직을 정규직 전환하겠다고 약속해 청년 공채들은 신분이 불안할 이유가 없었다. 지하철통합 과정에선 겹치는 직제를 축소하면서 생긴 예산을 저연차에 나눠주면서 이들의 임금이 올랐다. 그런데도 ‘공정하지 않아 반대한다’는 입장이 나왔다. 장 박사는 “이들은 지금도 노조와 선배들이 원칙을 어긴 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여긴다”고 했다.

장 박사는 이를 ‘보상심리’로 풀이했다. 그는 “안정된 일자리를 구한 뒤에도 이들의 심리는 아직 노량진 고시촌에 있다”며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들을 관통하는 태도는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들에 차별과 혐오, 무례 △그들을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직군에 두자는 배제 △정규직화는 ‘성취 빼앗기’라는 불안이었다”고 분석했다.

장 박사는 정규직 청년 공채들 가치관을 ‘생존주의’라고 해석했다. 장 박사는 “외환위기 이후 성장한 이들은 줄곧 경쟁에 몰렸고, 이는 생애에 끝이 없다. 이들은 자신의 모든 자원을 역량으로 바꾸는 ‘자기통치’를 하며 자랐다”며 “소위 명문대를 나와도 9급 공무원 합격을 플래카드로 내거는 시대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청년세대가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문화 속에 자라 즉각 반응에 익숙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무엇이 정당한지 고민한 뒤 노조활동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쳐 얻어내기보다 눈앞 공정성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한편 청년 공채의 판단 배경에 유념할 일이 있다. 정규직화 과정은 ‘번갯불 콩 구워 먹듯’ 이뤄졌고, 통합하면서 노사 처우합의가 일부 지켜지지 않았다. 장 박사는 “정규직 전환 반발에 긴 시간 설득이 필요한데, 시와 정부가 정원과 재원을 제대로 조율하지 않은 채 급하게 추진했다”고 했다. 장 박사는 본래 용역업체나 직영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 전환된 청년 조합원과 정규직화에 동의한 청년 공채 조합원 생각도 알아봐야 한다고 했다.

장 박사는 “(정규직이란) 안전망을 가진 청년 사무직 공채를 연대와 책임의식 있는 시민으로 되돌릴 조심스런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가 시도할 대안 가운데 하나로 ‘교육’을 꼽았다. 그는 “청년들은 끝없는 경쟁과 자기계발에 몰린다. 현실에서 노조가 힘을 발휘하려면 시위, 단식, 점거처럼 전통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는데, 이런 모습은 한국사회에서 노조가 처한 위치를 모르는 이들에겐 구태의연하다”며 “여러 방식의 교육으로 자신과 다른 삶의 방식과 주체를 경험하고 연대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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