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다.”

대부분의 저널리즘 교과서가 인용하는 오래된 격언이다. 일반적 현상보단 예외적이고 돌출적인 사건이 뉴스가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격언의 유효기간이 끝난 듯하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온라인으로 정보가 빠르게 전파되는 지금 시대엔 사람이 개를 무는 드문 일보다 개가 사람을 무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자주 발생하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무는 행위’ 그 자체보다 그 행위 맥락과 영향이 더욱 중요하다. 장난스레 자신의 반려견을 살짝 깨무는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다고 언론들이 저널리즘 교과서대로 “드디어 사람이 개를 물었다”고 보도하진 않는다. 하지만 반려견과 반려인구가 늘어나면서 개가 사람을 물어 다치고 죽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그건 뉴스로 다뤄야 할 사회적 문제다.

언론이 시대에 맞는 역할을 하려면 사건을 표피적으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회에서 인간과 반려동물이 공존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하고, 적절한 대책이 강구되도록 공론을 만드는 사려 깊은 기사를 써야 한다. 물론 여전히 교과서 격언대로 특수한 사례도 탐구할 가치가 있다. 그런데 그런 사건들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 안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만한 구조적 문제가 있어서다.

서울시내 경찰서에 출입하던 사회부 기자였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후회되는 일이 있다. 관할 구역 내의 범죄나 사건 통계를 구하지 않은 일이다. 이미 대부분 경찰서 출입기자들은 경찰이 좋은 취재원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사건에 대한 정보를 웬만해선 공개하지 않을 뿐더러 간헐적으로 나오는 보도 자료도 대부분 보도가치가 떨어진다. 경찰도 기자를 상대하기 난감할 것이다. 형사 사법 절차상 경찰 수사는 가장 앞 단계다. 아무리 사건을 깔끔하게 처리해 검찰에 송치를 해도 검찰 수사 과정과 재판 단계에서 새 사실들이 드러나고, 수사 내용이 재판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피의자의 개인 정보와 피의사실 공표로 침해되는 법익도 상당하다. 그래서 경찰서에서 간혹 나오는 보도 자료엔 뒷말이 나올 일 없이 경찰이 아주 깔끔하게 처리한 소소한 사건들이 담긴다. 만일 언론이 경찰의 보도 자료로만 기사를 쓴다면 이 세상은 가끔 사기 사건이 발생하지만 경찰이 범죄자를 적시에 검거해 사건을 해결하는 곳으로 보일 것이다. 언론인은 이런 편향에 빠지지 않으려 늘 경계해야 한다. 

내가 오래된 저널리즘 격언과 언론인이 빠지기 쉬운 편향을 얘기한 이유는 최근에 불거진 영화 ‘겨울왕국’ 노키즈존 논란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보면 이 논란을 처음 다룬 기사는 11월24일자 파이낸셜뉴스 이콘텐츠부가 게재(기자 이름 없이 부서 이름으로 게재)한 “겨울왕국2 영화관 매너 논란, ‘애들 시끄럽다’ vs ‘어른이 참아야’ [헉스]”다. 짧은 이 기사엔 건조하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아이 소음으로 관람이 불편했다”와 “어른이 좀 참아야 한다”는 의견을 병렬적으로 배치했다. 그 이후 국민일보, 연합뉴스, 아시아경제 등은 온라인 논란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다뤘다. 언론이 자주 사용하는 전문가 발언 인용도 잦았다. 아시아경제(한승곤 기자)는 익명의 전문가 발언을 인용하며 “예절교육이 중요”하다고 전했고, 연합뉴스(조성미 기자)는 전문가 의견으로 “제한적으로 아이 입장을 제한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스크린 독점 상태인 ‘겨울왕국2’는 일부 제한해도 될 것 같다. 이를 차별이라고 하는 것은 과한 주장”이란 하재근 문화평론가 의견을 기사에 인용했다. 머니투데이(유동주 기자)는 “[팩트체크] ‘겨울왕국2’ 노키즈관...법적문제 없다?”는 기사를 통해 “노키즈존의 설치엔 법적인 문제가 없다”가 팩트라며 “일정 크기 이상의 식당이나 영화관 등에 키즈존·노키즈존을 구별 설치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방법 등으로 해결책을 모색해 볼 수 있다”는 이필우 변호사의 의견을 전했다. 중앙일보는 자사의 페이스북 계정에 “노키즈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를 묻는 설문조사를 올려 응답자 70%가 “아이 소음에 방해받지 않고 영화 볼 권리가 있다”고 한 조사 결과를 게재했다.

▲ 14F 일사에프 “겨울왕국2 노키즈존 논란, ‘애니까 떠들죠’ vs ‘진짜 짜증나요’”유튜브 갈무리.
▲ 14F 일사에프 “겨울왕국2 노키즈존 논란, ‘애니까 떠들죠’ vs ‘진짜 짜증나요’”유튜브 갈무리.

논란을 잘 살펴보면 근본적 의문이 생긴다. 왜 한 해 아이가 100만명 넘게 태어날 때보다 30만명도 태어나지 않을 지금에 와서 ‘노키즈존’이나 양육자를 향한 혐오적 표현들이 범람하는 것일까.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방치하는 부모가 문제라는데, 그 부모들의 경우 남에게 피해를 줘도 상관없다는 ‘인식’이 부모가 되면서 갑자기 생겨난 것일까. 이런 질문들을 따져보면 결국 문제는 아이가 있든 없든 타인에게 주는 피해에 무신경한 사람들에게 있고, 비판도 응당 그들에게 한해야 한다. 모든 엄마와 아빠들이 외출할 때마다 벌벌 떨도록 혐오적 표현이 넘쳐나는 현상 그 자체가 사회적 문제다. 

개인들이 가진 편견들이 모이면 집단을 향한 혐오 정서가 된다. 필자가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느낀 불쾌한 경험들을 특정 집단 특징으로 일반화하지 않는 이유다. 언론에는 더 큰 책임이 요구된다. 자신이 쓰는 기사가 특정 집단을 향한 편견에 영향을 주지 않는가 늘 따져볼 필요가 있다. 특히 외국인 범죄나 계모나 계부의 아동학대 등 특정 집단에 소속된 개인이 저지른 행위를 다룰 땐 더욱 세심한 접근이 요구된다. 역사가 주는 교훈도 뚜렷하다. 광주민주화항쟁 유가족들은 왜 억울한 시절을 보냈으며 일본에서 발생한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들을 학살시킨 광기는 무엇에서 비롯됐을까. 모두 과도한 일반화에서 비롯된 집단 혐오가 발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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