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위원회가 해외 혐오표현 관련 미디어 규제 현황을 다룬 보고서(해외언론법제연구 용역사업 결과)를 발표했다. 혐오에 대응해 차별금지법을 마련하고자 하는 우리 입장에서 참고가 될만한 내용이다.

책임연구원 지성우(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동연구원 윤성옥(경기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박용숙(강원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 이승현(연세대학교 강사), 보조연구원 모준성(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은 ‘해외 각국의 혐오표현 관련 미디어 규제 현황과 법제 연구’를 통해 독일, 영국, 미국, 일본 등 모두 4개국의 혐오표현 관련 미디어 규제 현황을 살핀 보고서를 발표했다.

독일은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하는 등 광범위하게 제재하고 있다. 지난해 독일에선 외국인 혐오와 반(反)유대주의 범죄가 전년보다 20%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왔다. 독일은 형법 제 130조 제 1항에 “대중선동죄”를 규정하고, 구술 또는 간행물을 통해 치안방해가 되는 방식으로 “특정 인구집단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거나 그들에 대한 폭력적 또는 독단적 조치를 요구하는 행위” , “특정 인구집단을 모욕하거나 악의적으로 비방하여 타인의 인간적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를 매우 광범위하게 금지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혐오표현 그 자체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일은 입법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가장 혐오표현을 광범위하게 규제하는 입법을 하고 있다고 평가된다”고 지적했다.

일반법으로 일반평등대우법(Allgemeines Gleichbehandlungsgesetz)과 군인의 평등대우에 관한 법률(Gesetz über die Gleichbehandlung der Soldatinnen undSoldaten) 등 차별금지법을 두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관련 법안은 민간인과 군인을 대상으로 인종, 민족적 출신, 성별, 종교・세계관, 장애, 연령 또는 성적 정체성을 사유로 하는 차별을 예방하고 배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자들은 “우리나라의 경우도 일단 일반법으로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한 이후 형법 개정을 통해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규정을 추가・보완하는 방식으로 당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독일은 SNS상 혐오 표현과 관련해 ‘네트워크집행법’이라는 특별법을 제정해 기존 형법에 위배되는 표현물만을 적용 대상으로 해서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을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독일에서는 소셜네트워크를 비롯한 인터넷 망에 일정한 범죄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게시물은 국가가 직접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망 사업자에게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SNS상에서의 표현행위의 내용을 규제하는 방안에 대해 입법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며, 이러한 입법내용은 향후 우리나라의 관련 입법에도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해외언론법제연구보고서.
▲ 해외언론법제연구보고서.

영국은 1986년 공공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제정된 공공질서법에 따라 반인종주의를 주장하는 표현도 처벌대상이 된다.

연구자들은 "영국의 공공질서법은 선동 행위를 규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혐오표현의 대상이 되는 집단 구성원 개인에 대해 이루어진 표현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지적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다만 공공질서법에 괴롭힘 규정을 두고 개인적 법인 침해 범죄를 적용하고, 인종과 성차별, 장애 등에 관한 차별금지법을 하나로 통합한 평등법을 제정해 보완하고 있다.

SNS상 혐오 표현에 대해서는 범죄 및 질서위반법에 따라 ‘피해자의 장애, 인종, 종교, 성적지향, 트랜스젠더 정체성에 대한 범죄자의 적의를 동기로 이루어지는 범죄행위’를 가중처벌하고 있고, 지난해 혐오표현 대응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 중이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표현의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정서가 지배적이고, 수정헌법 제1조에 따라 혐오표현 규제 법률이 제정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의 차별금지법으론 1991년 민권법, 장애인법,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 평등임금법 등이 있다. 미국의 혐오범죄 연방법률로는 2009년 매튜 세퍼드와 제임스 버드 주니어 혐오범죄방지법, 평온한 주거권에 대한 불법방해죄법, 종교재산침해, 교회방화방지법, 권리방해공모법이 있다. 연구자들은 “혐오표현 판단에 있어 미 법원은 대면성의 요건, 실질적 위협을 중요하게 판단하고 있다”며 “법원은 ‘십자가를 불태우는 행위가 모두 제한되지는 않지만 십자가를 불태우는 것이 협박(intimidation) 수준에 이르렀을 때 금지될 수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지난 2017년 ‘헤이트스피치 억제법’을 제정했지만, 벌칙 규정 설치가 보류되면서 제정 당시 축소됐던 ‘혐오데모’도 증가세에 있다고 전했다.

이에 일본 법무성은 혐오표현 등의 구제 조치의 대상을 개인만이 아니라 집단으로까지 확대시키는 지침을 각 지방 법무국에 통지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결정은 관련자와 오랜 검토를 거쳐, 최근 발생하는 혐오표현이 집단이나 불특정 다수인에 대해 이루어지는 경향이 높은 반면, 이에 대응할 수 없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지방법원은 혐오표현에 반대하는 뜻을 개진하기 위한 게시물의 경우 공익성을 인정해 혐오 표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오사카 지방법원은 타인의 게시물을 퍼오거나 정리한 혐오표현과 관련한 게시물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청구를 인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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