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ㄹㄴㄴㄴ해 ㄷ달 ㅊㅈ날 남 대한민국 ㅂ해 ㄱ달 죽음’

수수께끼같은 이 표현은 백범 김구 선생의 아내 최준례 무덤 비석에 새겨진 글귀다. ‘큰별쌤’으로 유명한 최태성 ‘모두의 별별한국사 연구소’ 소장은 30일 서울 고양 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열린 ‘경기도 명사 초청 역사콘서트’에서 이 비석을 소개했다.

3·1운동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ㄹㄴㄴㄴ해는 단기 4222년을 뜻한다. 숫자 ‘1’을 자음 ‘ㄱ’으로 표현했다. ‘대한민국 ㅂ해’는 ‘대한민국 6년’이라는 뜻이다. 당시는 1924년이다. 대한민국 1년은 3·1 운동이 있던 해인 1919년이다. 최태성 소장은 “우리 언어를 못 쓰던 그 시대에 모든 생활에 한글을 쓰고 또 써야만 기억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일제강점기에도) 대한민국 6년이라고 계산한 점도 인상적”이라고 했다.

최태성 소장은 “3·1운동은 이를 기점으로 역사를 앞뒤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라며 “당시 인구가 2000만명이었는데 200만명이 참여한 어마어마한 거족적 항쟁이다. 일본으로부터 독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이루기 위해 광장에 이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고 했다.

▲ 최태성 ‘모두의 별별한국사 연구소’ 소장이 30일 서울 고양 아람누리 아람국장에서 열린 ‘경기도 명사 초청 역사콘서트’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최태성 ‘모두의 별별한국사 연구소’ 소장이 30일 서울 고양 아람누리 아람국장에서 열린 ‘경기도 명사 초청 역사콘서트’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그는 3·1 운동을 계기로 만든 국호 ‘대한민국’을 언급하며 “대한제국은 황제의 나라다. 조선과 고려는 왕의 나라다. 우리 반만년 역사 대부분이 왕과 황제의 나라였다. 이때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최초의 나라 형태인 ‘민국’이 탄생했다”며 “이전에는 백성이었지만 이때를 계기로 국민, 시민이 됐다”고 설명했다.

상하이에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를 피해 대장정을 하며 저항했다. 최태성 소장은 “임시정부에 가서 설립 당시 사진을 보니 잘생긴 청년이 보이더라. 신익희 선생이셨다. 당시 25살이었다. 다른 임시정부 사진에서는 중년이 된 그가 보였다”며 “왜 청춘을 바치면서 여기까지 오셨냐고 묻게 되더라”라고 했다. 

최태성 소장은 투옥돼 고문받다 운명을 달리한 저항시인 이육사의 시를 소개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하늘도 다 끝났다고 한다. 나라가 망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세상 생각해보셨나. 절망이다. 이쯤되면 내려놓을만 한데 그는 ‘오히려’라는 반전 단어를 택했다. 꽃은 핀다고 한다. 그것도 빨갛게 핀다고 한다. 이 꽃을 기필코 피워내겠다며 자신의 청춘과 재산과 모든 걸 바쳤다. 그 꽃이 바로 여러분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 30일 서울 고양 아람누리 아람국장에서 열린 ‘경기도 명사 초청 역사콘서트’. 사진=김도연 기자.
▲ 30일 서울 고양 아람누리 아람국장에서 열린 ‘경기도 명사 초청 역사콘서트’. 사진=김도연 기자.

 

역사를 어떤 관점으로 봐야 할까

이날 앞서 연단에 올랐던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공감과 연민으로 바라본 한국 현대사’를 주제로 강의했다.

주진오 관장은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똑같은 역사 인식이란 없다. 오늘 일기 쓰시거나 페이스북에 글을 쓰실 때 이 강연에 대해 쓰는 분도 계시고 아닌 분도 계실 거다. 쓴다고 해도 내용이 다 다를 거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진오 관장은 “자신이 가진 정치적 입장, 이념적 태도로 해석해야만 진실이고 그렇지 않으면 편향이라고 보는 논리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박근혜 정부 때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언급하며 “정부가 역사에 대한 해석과 서술을 독점하는 체제가 국정교과서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이 반대했다. 전세계 어디에도 국정에서 검정으로 갔다가 다시 국정으로 돌아온 나라는 없다”고 했다.

주진오 관장은 식민지배, 이념 갈등, 전쟁, 독재 등을 잇따라 겪은 근현대사를 설명하며 “세계사적으로도 이렇게 슬픈 역사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물관에 온 해외 인사들이 폐허를 겪었음에도 어떻게 이런 나라 만들었냐고 묻는다. 이들이 의미 부여하는 건 경제성장 뿐이 아니다. 불의한 권력을 내쫓아온 역사”라고 강조했다.

▲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 사진=김도연 기자.
▲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 사진=김도연 기자.

 

어떤 관점을 갖고 역사를 볼 것인가. 주진오 관장은 “역사의 갈등과 고비를 지날 때마다 이 나라를 살아온 사람들, 그들에 대해 공감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특히 역사의 피해자에 공감해야 한다. 그들의 삶이 왜 전쟁으로 인해, 국가 권력에 의해, 갈등으로 인해 파괴돼야 했는가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주진오 관장은 “과거 대한제국의 지배자들, 일본 제국주의에 순응하고 잘 살았던 친일세력들, 해방 이후에도 독재를 지지하며 살아온 세력들이 있다. 그들에게 공감하는 것과 저항을 통해 민주주의 공화국을 세우려 한 사람 입장에 서는 역사 인식은 상당히 다르다”고 했다. 그는 “어떤 쪽에 역사인식을 갖는지는 자신의 몫이다. 그러나 가급적 연민, 공감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강연 이후 이어진 토크콘서트에서 주진오 관장은 “3·1 운동의 가장 큰 정신은 타협”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민족대표는 종교 대표들이었다. (거사일을) 일요일로 정했으나 개신교에서 주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우려했다. 그때만 해도 천도교의 세가 훨씬 강했고 자금도 대부분 전담했는데도 개신교측 의견을 들어 3월1일 토요일로 옮겼다. 만일 한쪽에서 주도권을 쥐려 했다면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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