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내 웹툰·일러스트 작가와 번역가, 디자이너 등 문화예술 콘텐츠 분야 프리랜서의 지난해 수입 공백이 평균 3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처지에 정부 표준계약서도 권고에 그쳐, 생계 어려움은 물론 불공정거래 피해도 일상으로 겪고 있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지난 7~10월 서울지역 문화예술 콘텐츠 프리랜서 580여명을 설문·면접 조사한 결과 이들은 지난해 평균 2.5달 동안 수입 없이 생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77%가 적어도 1달, 평균 3.3달 동안 수입 공백을 겪었다. 분야별로는 감독·그래픽디자이너·시나리오 작가 등 영화계 프리랜서의 수입공백이 4.1달로 가장 길었다.

서울노동권익센터의 조사 결과를 보면 프리랜서의 소득은 낮고 불규칙하다. 표준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드문 데다 작업를 완료한 뒤에야 한꺼번에 보수를 지급 받는다.

상당수는 정부 표준계약서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활용하지 못한다. 정부 표준계약서를 알고 있다고 답한 이는 71.5%에 이른 반면, 한 번이라도 작성해 본 사람은 31.8%로 절반에 못 미쳤다. 정부는 2015년부터 문화예술인을 위한 분야별 표준계약서를 보급하지만 권고사항에 그친다.

이들의 평균수입은 연 2656만원, 한 달 221만원 꼴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작업 비용과 세금, 수수료 등 지출을 뺀 실제 소득은 월 200만원 안팎으로 예상했다. 올초 통계청이 발표한 임금근로자 월평균 소득 287만원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응답자의 절반가량(47.4%)은 작업을 모두 완료한 뒤에 지급 받는다. 신태중 서울노동권익센터 정책연구팀장은 “이같은 방식은 작업기간에 소득이 없어 문제인 데다, 완료 뒤 보수를 떼일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교육실에서 ‘서울지역 문화예술 콘텐츠 분야 프리랜서의 노동실태와 권익개선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서울노동권익센터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교육실에서 ‘서울지역 문화예술 콘텐츠 분야 프리랜서의 노동실태와 권익개선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프리랜서가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처지를 업체가 악용하는 일도 빈번하다.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프리랜서는 시장에서 (업체와) 협상력이 약한 데다 다단계 하도급·에이전시를 거치고, 맞춤한 법적 보호가 없어 불공정거래와 권익 침해가 자주 일어난다”고 했다.

가장 잦은 유형은 계약을 어기고 보수를 깎거나 아예 주지 않기다.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예산 규모가 작은 프로젝트일수록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며 “근로계약이 있는 노동자는 임금을 떼이면 노동청을 찾아가지만, 프리랜서는 소송해야 한다. 업체도 이들이 민사나 공정거래위원회 제소 등 비용 들고 감정 소모되는 법 절차를 밟지 않으리란 점을 잘 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약에 없는 일을 하도록 요구하거나, 중개 에이전시가 수수료를 과도하게 떼 가는 중간착취 관행도 있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28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교육실에서 토론회를 열고 이 같은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개선방안을 논했다.

전문가와 당사자는 프리랜서의 노동권을 보호하려면 표준계약서를 의무 적용하고 내용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 자리에서 “면접자들은 표준계약서가 형식에 그치지 않으려면 실태조사를 거쳐 평균 보수 수준 등을 계약서에 명기해야 하고, 공공부문이라도 의무 작성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협동조합이나 노동조합, 협회와 같이 당사자 조직을 만들고, 프리랜서가 겪은 불공정거래 문제를 해결하는 공적 지원기구를 꾸려야 한다고도 밝혔다.

서울시가 프리랜서 생계 지원과 권리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종수 노무법인 화평 대표노무사는 “시는 지난해 프리랜서 권익보호와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실태조사를 했지만 실제 지원과 보호사어은 미흡하다”며 “경기도와 같이 표준계약서 제작과 적용, 법률지원 사업 등 새 지원사업을 발굴해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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