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카카오·넥슨·스마일게이트 등 IT업계 노조들이 정부가 주 52시간제 ‘보완대책’ 명목으로 근로시간 확대 사유를 늘려선 안 된다며 공동 성명을 냈다.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노조) 수도권본부 IT위원회는 2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는 탄력근로제, 선택적 시간근로제 단위기간확대와 같이 기업들의 일방적인 요구만을 반영한 법안논의를 철회하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IT업계 경영진들은 공짜 야근이 가능한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과도한 노동시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성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승욱 카카오지회(크루유니온)장은 “무려 48주나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하여 일해야 했던 IT노동자가 죽음을 선택하는 비극적인 사건을 아직 기억한다. 최근 한 익명 커뮤니티에는 한 게임회사에서 96시간 연속 근무 후 응급실로 이송됐다는 폭로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고 전하며 “소위 ‘사람을 갈아서’ 서비스를 만드는 식의 형태는 사라져야 할 구시대적 관습임에도 사용자의 강압적인 야근이 존재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우리 삶이 나아진다고 하지만 그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왜 아직도 장시간 근로로 인해 힘겨워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이 주 52시간 상한제가 노동자들의 ‘더 일할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도 뭇매를 맞았다. 서 지회장은 해당 발언을 전한 뒤 “또한 한 기업(NC소프트)의 대표는 주52시간 상한제로 인해 중국이 6개월 만에 만들 게임을 우리나라는 1년 동안 만든다면서 한탄하고 밤새 일하고 있는 사무실을 자랑하듯 광고소재로 사용하기도 했다”며 “다시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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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준 스마일게이트지회장은 “IT업계는 고질적인 하청구조로 인한 저임금노동과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장시간 근로가 만연하다. 사람이 버틸 수 없는 구조이기에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평균 근속년수가 채 2년이 되지 않는다. 과연 이런 현실이 장병규 위원장이 말하는 것처럼 더 많이 일할 권리를 침해해서 일어나는 일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차 지회장은 “52시간 상한제조차 정부의 처벌유예 등으로 시행이 연기되면서 현장에서 자리 잡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기업들은 야근문화의 핵심요인인 과도한 단기목표나 부족한 인력, 하청구조에 대한 개선 없이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후 오히려 휴게시간 기준을 강화하여 노동시간을 감소시키는 방식으로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아무리 노동시간을 초과해도 수당이 발생하지 않는 포괄임금제 또한 대부분 IT기업에서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며 “탄력근로제,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같은 유연근무제의 핵심은 사용자가 쓰기 편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기본권인 건강권, 휴식권을 지키는 것이다. 특히 IT산업의 특성상 자율적인 업무환경이 정착되어야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할 수 있기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노동시간 단축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노동조합 카카오, 네이버, 넥슨, 스마일게이트지회가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 기조에 역행해선 안 된다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 네이버, 넥슨, 스마일게이트지회가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 기조에 역행해선 안 된다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또한 “탄력근로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확대는 노동자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노동조합이 없다면 회사가 임의로 뽑은 근로자대표를 통해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네이버, 넥슨, 스마일게이트, 카카오와 같이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서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없고, 또한 IT노조가 있는 회사들은 모두 포괄임금제가 폐지되었고 이로 인해 실질 노동시간도 감소했다. 더 이상 과로가 죽음의 원인으로 되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필수가 되어야 한다”며 “모든 IT업계 노동자들에게 호소 드린다.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노동조합을 통해서 우리의 권리를 찾아가자”고 당부했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정미 의원은 “이분들은 현재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굴지의 IT 기업과 게임 기업에서 일하고 계신다. 한 때 판교를 부르는 별칭은 ‘등대’였다. 새벽까지 불을 환하게 밝힌 건물들이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등대와 같았기 때문이다. 2년 전 청년 노동자가 과로사로 사망한 회사 또한 ‘구로의 등대’,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이 높은 회사였다. 소위 말하는 ‘크런치 모드’가 젊은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라고 전한 뒤 “정부 발표대로 일시적 업무량 증가에 따라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할 경우 게임 업계는 신제품 출시나 업데이트 시기가 오면 노동자들에게 ‘크런치 모드’를 합법적으로 시킬 수 있는 상황이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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