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자 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강제징용 판결 이후 벌어진 한일간 갈등을 해결하겠다고 내놓은 법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있다며 문 의장의 역사의식을 묻는등 격한 반응을 내놓았다.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는 27일 국회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들은 돈 몇 푼을 받자고 싸워 온 것이 아니다”라며 “문 의장은 더 이상 피해자들을 모욕하지 말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후 문 의장에게 직접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들이 이렇게 반발하는 이유는 이른바 ‘문희상안’으로 알려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요지에 재원 마련을 한일 양국의 ‘기부금’으로 해서다. 전쟁범죄에 사죄하고 불법에 배상책임을 요구하는데, 반대로 ‘자발적 기부’과 ‘위로금’ 같은 표현으로 불법의 책임을 희석시킨 법안이라는 지적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단체들이 갖고 있는 문희상 안을 보면 ‘특별재단에 의한 위자료 재원’ 마련을 위해 △한일 양국 관련 기업들의 자발적 기부금 △양국 민간인들의 자발적 기부금 △지금은 활동이 종료된 ‘화해치유재단’의 남아있는 잔액 약 60억원 △그 밖에 기부금과 수입금 등으로 조성한다고 됐다. 이 안은 “위자료나 위로금 지급에 필요한 총 비용은 2년 동안 한시 운영을 감안해도 소송 진행을 고려할 때 대략 3000억원 정도로 예상됨”이라고 써놓았다. 특히 박근혜 정권 말기에 극심한 반발을 낳은 한일 위안부합의의 결과물인 ‘화해치유재단’의 남은 돈까지 쓰겠다고 해, 피해자들에게 더 굴욕감을 줬다.

이들 단체는 이날 회견에서 “그(법안) 내용을 보면 무엇을 해결하기 위한 법안인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는 모든 식민주의가 비난받아야 하고 중대한 인권침해엔 ‘진실, 정의, 피해회복(배상), 재발방지’를 인권회복 조건으로 제시하는데, 문희상 안은 이런 기본 전제를 모조리 무시했다.

재원 마련 항목을 두고 이들은 “‘양국기업과 민간의 기부금’으로 하고 있어 누구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며 “더구나 이 기금에 ‘화해치유재단’의 60억원을 포함시키고, ‘2015년 위안부 합의’를 공식화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문 의장이 스스로 비난 받을 각오를 했다지만, 제대로 된 사죄 한번 받아보지 못한 수많은 강제동원 피해자 권리를 무슨 근거로 소멸시키고, 이미 무효화된 ‘위안부 합의’를 끄집어내 무엇을 되살리려는 것인가”라며 “일본정부와 평생을 싸워온 것을 명목도 불투명한 돈을 받기 위함으로 폄훼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문 의장의 해법에는 인권피해자들의 상처 회복에 필요한 기본적인 성찰조차 담겨있지 않다”며 “문 의장은 박정희의 1965년 청구권협정, 박근혜의 2015년 이른바 일본군‘위안부’ 합의가 피해자들의 인권을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았는지 잊었는가”라고 반문했다.

▲강제동원공동행동, 정의기억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동원 관련 문희상 국회의장 안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제동원공동행동, 정의기억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동원 관련 문희상 국회의장 안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은 “일본 정부와 기업이 가해의 책임을 인정하지도 않고, 사죄도 하지 않은 채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강제동원 문제 전체를 해결한다니, 문 의장의 역사인식을 묻고 싶다”며 “피해자들은 돈 몇 푼을 받자고 싸워 온 것이 아니다. 문 의장은 더 이상 피해자들을 모욕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피해자 변호인들(이상갑·김정희·최봉태·김세은 변호사)과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도 이날 성명을 내어 “정치권 일각에서 얘기되고 있는 ‘기부금’ 방식의 해결안은 피해자의 인격과 존엄을 무시하는 것으로써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 역시 “일본정부의 분명한 사죄가 수반되지 않은 금전 지급은 제대로 된 해법이 아닐 뿐 아니라, 74년간 명예회복 투쟁을 전개해 온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역사 정의에 기반 하지 않는 해결책은 해결책이 아니라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된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강제 징용 피해자들을 외면한 채 한일 간 미래는 없다”며 일본 정부엔 책임 인정과 사죄, 피고 기업들의 적극 배상 노력을, 한국정부엔 사법부 판결 이행을 위한 외교적 책임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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