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한 언론사 주최 토론회에서 기업들과 둘러앉아 ‘데이터 3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모처럼 여당과 제1야당이 ‘정쟁보다 미래를 보자’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가운데, 이를 지켜본 한 보험 이용자는 “(법안 논의) 순서가 바뀌지 않았느냐”며 항의했다. 국회가 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추진하는 이면에 정보 주체의 권리를 도외시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과 최운열 민주당 의원이 공동주최한 토론회에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한국당 의원들, KT·네이버·아산병원 등 데이터산업 관련 기업들이 참석했다. ‘4차 산업혁명, 데이터 경제로 뚫자: 기업이 묻고 국회가 답하다’를 주제로 진행됐으며, 국회사무처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금융위원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가 후원에 이름을 올렸다. 데이터 3법은 가명처리한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활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인정보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 이른바 ‘개망신법’으로도 불린다.

민주당과 한국당 의원들 모두 법안을 처리하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무위 한국당 간사인 김종석 의원은 “이 무렵 데이터 3법이 통과될 거라 낙관했는데,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80% 이상은 완성됐다”며 “이미 원내지도부 간 합의도 봤다. 정기국회 안에 3법 다 올라가길 바란다. 특히 정무위에 민병두, 유동수 의원이 계시기에 저는 절대로 반대 안 한다. 최선을 다 해서 미력하지만 법이 완성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간사인 유동수 의원은 법안 처리를 못한 아쉬움에 새벽에 잠이 깼다고 말한 뒤 “김종석 간사께 부탁드린다. 법안소위에서 표결처리 할 때 반대하지 마시길 바란다”고 농담섞인 발언을 했다. 보통 법안소위는 다수결 표결보다 만장일치 관행을 따르는데, 정무위 소위에선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 반대로 신용정보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 2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 공동주최로 '4차 산업혁명, 데이터 경제로 뚫자: 기업이 묻고 국회가 답하다' 토론회가 진행됐다. 토론회에 참석한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들과 기업 관계자 등이 AI 로봇을 가운데 두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2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 공동주최로 '4차 산업혁명, 데이터 경제로 뚫자: 기업이 묻고 국회가 답하다' 토론회가 진행됐다. 토론회에 참석한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들과 기업 관계자 등이 AI 로봇을 가운데 두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축사가 끝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려던 찰나, 이를 지켜보던 김미숙 보험이용자협회 대표가 “‘기업이 묻고 국회가 답한다’ 하셨는데, 정보주체한테 묻고 기업과 국회가 답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대표는 “보험회사 같은 경우 개인정보 수집할 때 불법행위하면서 수집한다. 청구서 양식에 ‘필수동의서’라고 제3자 제공에 의무적으로 동의하게 한다”며 “그런 식으로 이미 악용하는 게 드러나는데 정보주체에겐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데이터로 기업이 얻을 이익만 생각해주는 것 같다”고 했다. “안전장치 한 다음에 데이터 경제 뚫자고 말씀하는 게 순서 아니냐”고 목소리 높이던 김 대표는 주최측이 이후 발언권을 주겠다며 발언 자제를 거듭 요청하자 발언을 멈췄다.

이후 토론은 문용식 한국정보화진흥원장 등 발제에 이어 의원들의 업계 의견청취 위주로 진행됐다. 김혜주 KT 빅데이터사업추진단 상무는 “현업 입장에서 ‘데이터는 호환마마보다 무섭다’고 한다. 보관도 하지 말고 저장도 하지 말고 1년마다 소비자에게 알려주고, 2년 동안 거래 없으면 다 지우라고 한다”고 주장한 뒤 “지금까지 사고들은 범죄적 행위 등에 의한 사고다. 그런데 처벌이 3년 이하 징역형이기 때문에 1000만건 이상 데이터 팔아먹은 모 차장도 이미 출소했다. 범죄 처벌은 약하면서 기업은 책임을 떠안아야 하니 아무 것도 안 하려는 상황”이라며 데이터 3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진규 네이버 DPO(개인정보보호책임자)는 “개인정보 활용에 있어서 유럽연합(EU) 같은 경우 당초 수집 목적과 양립 가능한 목적이라면 개인정보를 추가적으로 처리할 때 최초 법적 근거에 따라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 뒤 “네이버는 가입단계에서 실명을 확인하지 않는다. 다만 법률적으로 실명확인이나 고객확인이 요구되는 경우 휴대전화 확인 절차를 거치고 별명이나 가명데이터를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소영 서울아산병원 빅데이터센터 교수는 “산업적이라는 이유로 연구단계로 끝나면 활용할 수 없는 협소한 정보 밖에 가질 수 없다”며 “맞춤형 의료가 되려면 나와 사회 구성원들의 연계결합 정보가 만들어질 때 자료 가치가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헬스케어 데이터’ 산업이 생명윤리안전관련 법률과 충돌하는 지점에 대해서도 국회의 역할을 촉구했다.

▲ 26일 데이터 3법 관련 국회 토론회 방청석에 앉아있던 김미숙 보험이용자협회 대표(가운데)가 일어나 발언하고 있다. 토론 테이블에는 왼쪽부터 자유한국당 송희경, 김종석 의원과 KT, 네이버 관계자 등이 앉아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26일 데이터 3법 관련 국회 토론회 방청석에 앉아있던 김미숙 보험이용자협회 대표(가운데)가 일어나 발언하고 있다. 토론 테이블에는 왼쪽부터 자유한국당 송희경, 김종석 의원과 KT, 네이버 관계자 등이 앉아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최운열 민주당 의원은 이와 관련해 “가보지 않은 세상에 대한 불안감이 있을 수 있다. 기술의 진보는 아무도 예상을 못한다. 그런 걸 다 예상해서 완벽하게 가려면 나아가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기본적으로 한국경제가 처한 현실 인식 차이인 것 같다”며 “경쟁상대국은 저 앞에 가 있는데 시작조차 못하게 발목을 잡으면 한국경제가 어떻게 가겠나. 무서워서 못만들면 우리만 낙오한다. 일단 가게 하고 다른 장치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김미숙 대표는 “말도 안돼, 말도 안돼”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김 대표가 최 의원이 있는 동안 할 말이 있다고 여러 번 발언기회를 요청했지만, 최 의원은 “식구들이 다 전해줄 것”이라며 다음 일정을 이유로 먼저 자리를 떴다.  

사회자가 급히 다음 발언자로 순서를 넘기며 송 의원에게 KT에서 일했던 이력을 묻자 송 의원은 “KT사업단에서 일했었다. (김 상무가) 제 밑에 있었다. 후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송 의원은 이날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명칭을 ‘개인정보위원회’로 바꿔 개인정보 이용과 이를 활용한 산업 진흥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명정보 활용 목적에서 ‘산업적 연구’라는 문구가 빠진 점도 지적했다. 김혜주 KT 상무는 나아가 △범부처 데이터전략위원회 설치 △데이터 재식별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한 ‘테스트 베드’(test bed) △AI 학습 프리존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토론회는 정기국회에서의 데이터3법 처리를 기약하며 마무리됐다.

김 대표는 이날 토론회가 끝난 뒤 미디어오늘에 “의원 모셔다 놓고 기업 요구 들어주려고 자리를 마련한 것 같다”고 지적한 뒤 “송 의원은 자신이 KT 선배라는 무서운 발언을 어떻게 할 수 있나. 특정 업종과 유착돼 있다고 어떻게 대놓고 말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