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 파견·용역 노동자들이 무기한 파업하는 가운데 보수언론의 노조 폭력성 부각 보도가 줄잇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들 보도를 바탕으로 노조를 검찰 고발했고, 의료 매체들이 받아쓰며 해당 주장이 재생산되고 있다. 병원 비정규직들이 왜 파업하는지 알려주는 기사는 드물다.

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 분당서울대병원분회 노동자 400여명은 지난 7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파견·용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노사 교섭이 결렬되면서다. 노동자들은 분당서울대병원 본관 1층 로비 점거농성 중이다. 이들은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간호보조와 환자이송, 청소 업무를 맡는다.

조선일보는 파업 4일차인 지난 10일 ‘어린이집 입구서 욕설에 폭력 휘두른 민노총... 아이들은 공포에 떨었다’ 단독 보도를 냈다. 조선은 “(7일) 영유아 100여명이 있던 어린이집 입구에서 병원 파견·용역 노조원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며 “어린이집 원생들은 1시간 넘게 발이 묶였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노조원들이 몸싸움을 벌이거나 환자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건도 발생했다”고도 했다. 조선일보는 “시위에 불만을 토로하는 환자를 폭행하는 사건도 발생했다”며 “8일 병원 로비에서는 한 환자가 노조원들의 마이크를 뺏으면서 항의를 하자 노조원 10여명이 달려들어 머리채를 잡고 옷을 찢는 등 폭력을 휘둘렀다. 이 환자 역시 응급실로 옮겨졌다”고 밝혔다. 기사엔 노조 해명은 없다. 

▲조선일보 웹사이트 갈무리
▲조선일보 웹사이트 갈무리
▲지난 15일 채널A  ‘뉴스A’ 갈무리
▲지난 15일 채널A ‘뉴스A’ 갈무리

실상은 달랐다. 분당서울대병원분회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애당초 어린이집 입구를 막지 않았다. 이들이 집결한 병원 행정동 입구는 어린이집 입구와 분리돼 있어 막을 이유도 없었다. 윤병일 분회장은 미디어오늘에 “조선일보가 진을 쳤다고 표현한 어린이집 입구는 행정동 문과 10m 정도 떨어졌다. 노조원들은 행정동 출입구에서 30분 간 구호를 외쳤다”고 말했다.

노조는 “환자 폭행사태” 보도를 두고도 당시 환자의 사과로 일단락된 사건이라고 밝혔다. 윤 분회장은 “여성 조합원이 평화롭게 자유발언하는데, 환자인지 보호자인지 모를 한 남성이 일언반구 없이 달려들어 마이크를 거칠게 빼앗았다”며 “체격이 건장해 분회장인 나와 다른 조합원들이 나서 제지했다”고 했다. 그는 “파출소에 임의동행된 뒤 해당 남성이 조합원에게 사과하면서 일단락됐다”고 말했다.

다른 보수언론도 노조의 폭력만 부각한 보도를 이어갔다. 채널A 뉴스프로그램 ‘뉴스A’는 11일과 15일 각각 ‘병원 노조 시위에 어린이들 ‘벌벌’…환자·의료진 불편 호소‘, ‘노조원들의 시끄러운 농성…피해 호소해도 경찰은 ‘뒷짐’’ 보도에서 같은 취지의 리포트를 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는 이들 보도를 바탕으로 노조를 검찰에 고발했다. 의협은 14일 “정당한 쟁위행위의 범위를 벗어나 환자를 폭행하고 환자안전을 위협해 강력한 처벌을 촉구한다”며 윤 분회장 등 노조 관계자들을 업무방해죄와 상해죄, 폭행죄 등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의협 홍보 관계자는 노조가 전한 사실관계는 다르다는 지적에 “(조선일보) 단독보도를 보고 검찰에 고발했다. 노조 입장은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언론이 의협 입장만 받아쓰며 ‘노조 폭력성’은 기정사실화되는 추세다. 조선일보와 한국경제, 문화일보 등 보수언론 외에도 의료 전문매체 다수가 “민주노총에 전면전 선포” 등의 표현으로 의협 성명을 그대로 보도했다. 이들 매체 가운데 매일노동뉴스만 노조 해명을 전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는 지난 14일 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 분당서울대병원분회 관계자들을 업무방해와 상해, 폭행 등으로 검찰 고발했다. 사진=의협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는 지난 14일 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 분당서울대병원분회 관계자들을 업무방해와 상해, 폭행 등으로 검찰 고발했다. 사진=의협

노조는 분당서울대병원 내 파견·용역 노동자들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사측은 △2017년 7월20일 이전 입사자는 직접고용 △이후 입사자는 가산점을 부여해 경쟁채용 △최근 3년 내 입사자는 공개 경쟁채용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정규직 전환 방식을 둘러싸고는 직종마다 투표로 자회사 전환 여부를 각자 택하도록 하자는 안을 내놨다. 노조는 원무과나 외래보조, 시설, 주차 등 무노조 직종에서 사측의 영향 아래 자회사 방식을 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내 파견·용역 노동자는 1300여명으로, 국립대병원 가운데 간접고용 규모가 큰 편이다.

민중의소리는 지난 19일 ‘분당서울대병원 파견·용역 노조, 환자 폭행? ‘허위사실 보도, 왜곡 말라’’ 제목으로 보수언론의 보도에 노조 설명을 전했다. 경인일보는 지난 17일 ‘총파업 돌입한 분당서울대병원 노조, 회사안은 자회사로 떠밀기’에서 파업에 들어간 노조 요구를 보도했다.

한편 다른 국립대병원에선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합의가 속속 이뤄지고 있다. 서울대병원(본원·강남센터·보라매병원)과 대구 경북대병원에 이어 최근 강원대병원 노사도 비정규직을 직접고용하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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