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고 구하라씨가 숨진 후 악성댓글 폐해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이를 검색어 기사(어뷰징 기사)로 조장한 언론계 책임도 거론된다. 특히 언론은 검색어 기사로 인한 폐해가 크게 불거질 때마다 사후약방문식 반성만 할 뿐 근본적인 대처에 나서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디어오늘이 지난해 9월부터 1년 간 고 구하라씨를 다룬 보도를 살펴 본 결과 구씨도 검색어 기사의 피해자였다. 언론은 △악성 댓글을 기사로 확대 재생산했고 △구씨의 협박 피해 사건을 게임처럼 다루거나 자극적 내용을 활용했으며 △구씨가 ‘피해자답지 않다’는 잘못된 보도까지 냈다. 지난 5월 구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시도를 했을 때도 사건과 무관한 사생활 정보로 검색어 기사를 썼다.

▲지난 24일 숨진 채로 발견된 가수 고 구하라 씨의 빈소가 25일 서울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고인의 영정이 놓혀있다. ⓒ민중의소리·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4일 숨진 채로 발견된 가수 고 구하라 씨의 빈소가 25일 서울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고인의 영정이 놓혀있다. ⓒ민중의소리·사진공동취재단

 

기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때는 지난해 9월13일, 협박 가해자 최아무개씨가 폭행 피해자라는 보도가 나온 때다. 네이버 뉴스 검색에 걸린 기사만 443건이다. 검색어 기사 상당수가 구씨를 희롱했다. “구하라 남자친구 폭행 구설…춘자·비키도 인정한 주먹”(헤럴드경제), “‘말려도 안 돼’ 구하라 남친 폭행, 춘자·김숙이 본 구하라 싸움 실력”(서울신문), “구하라, 건강 과시를 이렇게?…남자친구 폭행 논란”(MK스포츠), “그녀는 무쇠팔인가? 가수 자질 논란도...구하라 남자친구 상처, '도넘은' 테러”(이코노미톡뉴스) 등이다.

자극적으로 낙인 찍는 편파 보도도 상당했다. “구하라, 무대 위 '삶' 종지부? 이유있는 이슈 메이커...‘여신 분위기 어디로?”(제주교통복지신문), “구하라는 구설녀?…선물 돌려막기→롤리타 사진→담배 SNS→남자친구 폭행”(동아일보), “구하라 이번엔 폭행? '이별 쿨하게 받아드리는 쿨녀'”(한국정책신문), “구하라, 탄로난 로맨스 내막 '최악'… 혹독한 아홉수 전초전”(데일리안) 등의 방식이다. 검색어 보도는 네이버 뉴스 검색 기준 ’365건(9월14일)-109건(15일)-164건(16일)-509건(17일)‘ 순으로 계속됐다. 5일간 1590건이다.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분석툴로 산출한 2018년 9월13일부터 10월5일까지 고 구하라씨를 다룬 기사량 통계. 지역지 28곳, 방송사 5곳을 포함해 총 54개 매체만 검색 대상이다.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분석툴로 산출한 2018년 9월13일부터 10월5일까지 고 구하라씨를 다룬 기사량 통계. 지역지 28곳, 방송사 5곳을 포함해 총 54개 매체만 검색 대상이다.

 

18일 구씨가 ’디스패치‘를 통해 처음 피해 사실을 밝히면서 보도량은 1176건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때부턴 자극적 보도가 급증한다. “구하라 카톡 대체 어떻길래? 누리꾼들 경악...‘그 오빠분 만났을텐데 밤 생활 방해해서 미안하다’”(위키리스크한국), “구하라 카톡 공개, 도 넘은 남자친구 폭언+의심 ‘性생활 언급까지’”(서울신문), “‘밤생활 방해해서 미안해요’ 구하라, 남자친구와 나눈 카톡 보니…“(국민일보) 등의 보도다. 10월에도 “구하라, 섹스비디오로 협박 당했다···옛 애인이 촬영”(뉴시스), “구하라 전 남자친구, 추가 사생활 촬영물 보유 가능성有 ‘잠든 구하라 얼굴에...’”(뉴스타운) 등의 낯뜨거운 기사가 나왔다.

재판 진행 중엔 피해자를 고려치 않는 게임중계식 제목 문제가 나왔다. 피해자 증인 신문이 예정된 날 “‘본인이 직접 진술’… 구하라vs최종범, 진검대결”(OSEN), “구하라, 최종범 2차공판 불참→7월 공판엔 참석… ‘전 연인’ 재회하나”(스포츠조선) 등의 제목이다. 구씨를 다룬 기사 수는 재판 날짜(변경 기일 포함) 별로 199건(4월18일), 220건(5월30일), 159건(7월18일), 116건(5월25일), 175건(8월29일)이다.

사건 공개 후 처음으로 구씨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게시되자 전자신문은 “구하라 근황 공개에 누리꾼들은 황당? '이 와중에..'”, 톱스타뉴스는 “구하라, 남자친구 최종범 논란 이후 첫 근황…'이 와중에 SNS?'”, 넥스트데일리는 “구하라 근황 공개, 엄청난 정신력” 등의 제목으로 검색어 기사를 썼다. 성폭력 사건 ‘피해자다움’을 공격한 악성 댓글을 그대로 전했다.

검색어 기사는 지난 5월 구씨가 한 차례 자해 시도를 했을 때조차 반복됐다. 이날 구씨를 다룬 기사만 372건이다. 아주경제는 구씨가 안검하수 수술을 받은 걸 연관지어 “안검하수 뭐길래…'구하라' 관련 검색어 등장?” 기사를, 월요신문은 구씨 SNS 사진을 활용해 “구하라, 구조 전 남긴 '의미심장' sns...‘안녕’” 기사를 냈다. “현재까지 상황 정리해보면… 결국 최종범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울산종합일보)이란 낚시성 기사도 있다.

▲문제적인 검색어 기사 제목 모음.
▲문제적인 검색어 기사 제목 모음.

 

문제가 이러함에도 언론계가 선제적으로 자정에 나선 적은 드물다. 2014년 한국일보가 독자 뉴스 홈페이지 ‘한국일보닷컴’를 만들며 무분별한 검색어 기사를 게재하지 않겠다 선언한 예는 있지만 포털업계보다 소극적이다.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2017년 11월 처음 ‘어뷰징 보도’ 문제가 심각한 매체 7곳과 뉴스공급 계약 해지했다. 포털은 어뷰징 문제가 심한 언론사에 페널티를 주는 방향으로 문제를 관리하고 있고 카카오는 지난달 31일부터 연예뉴스 댓글 서비스를 잠정 폐지했다.

포털 규제의 맹점은 광활한 사각지대다. 검색어 기사는 규모가 큰 매체에서 더 심각한데 포털은 이를 통제하지 못한다. 실검팀은 인력·자본이 비교적 충분한 중대규모 언론사에서 운영하기 쉽다. 전담 자회사를 만들거나 어뷰징 보도 매체와 계약해 트래픽을 올리는 방식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 10월 사망한 연예인 설리씨의 검색어 기사 조사 결과 연예·스포츠매체보다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종합지가 낸 기사량이 더 많았다. 종합지 중엔 국민일보·서울신문·세계일보·한국일보가, 경제지 중엔 매일경제·서울경제·한국경제·머니투데이가 검색어 기사를 썼다.

잇단 여성 연예인의 사망에 자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언론계에서도 나온다. 실제 검색어 기사팀에서 일해본 적 있는 A기자는 “트래픽 올리는 실검 기자에게 성과급을 주는 종합지가 있다. 10대 전국 종합지 중 하나다. 포털이 어떤 정책을 써도 언론은 피해 나갈 궁리를 하는 쪽인데, 이 태도가 변하지 않고선 피해는 더 양산될 수 있다. 이번에도 반성없이 지나갈 것인가”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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