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지면에서 광고와 기사를 구분해야 한다는 원칙은 오래전에 무너졌다. 지난 1994년 한국소비자보호원 조사를 보면 ‘신문광고윤리실천요강’에서 광고와 기사를 혼동하기 쉬운 편집체제를 금지하고 있지만 모든 중앙일간지가 이 윤리강령을 어기고 있었다. 조사결과 ‘기사형 광고’ 중 76%가 허위·과장 문구를 사용했다. ‘기사형 광고’란 형식이 기사지만 내용으론 광고인 글을 말한다. 

누군가가 신문사 판단을 거쳐 실제로 취재원이 되긴 쉽지 않다. 원하는 방향·내용·분량으로 기사에 등장하기란 더 어렵다. 그렇다고 관심 못 받는 광고면에 등장하는 것도 마뜩잖은 일이다. ‘기사면에 등장하는 광고주’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과 기사면까지 판매해 더 많은 수익을 올리려는 신문사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다. 이에 사반세기 전부터 ‘광고-기사 분리’ 원칙이 흔들렸다. 

기업만 돈 주고 지면을 사는 행위를 하진 않는다. 정부도 세금으로 신문지면을 구매해 해당 기관장·단체장, 자신들 정책 등을 알린다. 이명박 정부 시절 신문법을 개정하면서 ‘기사형 광고’를 실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처벌조항이 사라졌다. 마음껏 정부 주장을 담은 전문가 기고나 기획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보통 기사에 돈을 받았다는 표시조차 하지 않는다.  

▲ 사진=istockphoto
▲ 사진=istockphoto

 

국회는 지난해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부광고법(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법률)을 통과했다. 정부광고법 9조(정부기관등의 유사 정부광고 금지 등)를 보면 정부기관등은 정부광고 형태 이외에 홍보매체나 방송시간을 실질적으로 구매하는 어떤 홍보형태도 할 수 없다. 

법을 통과하면서 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에서 세금으로 지면을 구매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여전히 정부기관 등에선 불법이 아닌 방식으로 기획기사나 전문가 기고에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실제 정부기관들이 어떤 과정으로 지면을 구매하는지, 법 제정과정에서 어떤 허점이 생겼는지 살폈다. 

정부가 지면을 구매하는 방법

지난달 한국건강증진개발원(개발원)은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에 ‘감염병 예방 홍보 협력사 선정 제안요청서’를 보냈다. 개발원은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정부광고법상 정부광고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정한 언론재단이 독점 대행한다. 

해당 제안요청서를 보면 개발원은 “해외여행력 묻고 알리기의 중요성”을 알리겠다며 3대 일간신문(조선·동아·중앙일보 등)에 ‘전문가 기고문 또는 기획기사 게재’를 요청했다. 총 사업예산이 1억3000만원인데 이 중 매체비로 4100만원을 책정했다. 언론재단에 올라온 제안요청서를 보면 심심치 않게 정부기관들이 광고의 한 형태로 기획기사를 요청하는 경우를 찾을 수 있다. 

▲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지난달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제출한 '감염병 예방 홍보 협력사 제안요청서' 일부
▲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지난달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제출한 '감염병 예방 홍보 협력사 제안요청서' 일부

 

경기도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난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정부기관 등에서 기사에 내고 싶은 정보만 제공하면 홍보협력업체에서 기사형식으로 글을 만들고 신문사와 관련한 실무를 언론재단이 대행한다고 했다. 언론재단에 따르면 전문가 섭외도 홍보협력업체에서 한다.  

해당 지자체 관계자 “우리(지자체)가 정보를 주면 용역사(홍보협력사)가 언론사들이 원하는 폼에 맞게 (기사)초안을 작성해준다”며 “용역사가 언론사와 기본적인 얘기를 하고, 언론재단에서 요구하는 전달사항을 용역사가 전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이번에 선정한 홍보협력사 이름을 언급하며 “언론재단 쪽에선 아는 업체더라”고 했다. 언론재단은 이를 대행하며 수수료 10%를 떼어간다. 

해당 지자체는 정책을 홍보하려고 ‘애드버토리얼, 경제지·중앙지’에 월1회씩 4개월(총 4회) 기획기사를 싣고 싶다고 언론재단에 요청했다. 기획기사 예산을 따로 잡진 않았고, 라디오·신문·온라인 광고 등까지 포함해 총 1억2700만원으로 책정했다. 해당 관계자는 자신들이 기획기사를 홍보수단으로 넣은 건 이번이 처음인데 다른 공공기관과 협업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해당 지자체에게 아이디어를 준 한 공공기관은 지난 7월 자신들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12개월간 월5회(총60회)’ 기획기사를 싣고 싶다는 요청서를 냈다. 이 기관은 기획기사를 온라인광고 한 항목으로 분류했다. 광고송출 금액은 정부광고 수수료(정부광고료의 10%)를 포함한 금액이며 정부광고 수수료의 60%를 홍보협력사에 지급하기로 했다. 

광고주들은 이런 행위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돈을 주고 지면을 구매하는 일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있다’는 질문에 공감하지 못했다. 개발원 관계자는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아직 홍보협력사를 어디로 할지 논의 중에 있어서 확실하게 말해줄 수 없다”고만 했다. 지자체 관계자는 “언론과 연결하는 관계는 언론재단에서 컨트롤해준다”고 말했다. 

언론재단 관계자는 지난 2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기획기사·전문가 기고도 협찬고지하거나 애드버토리얼면에 나가면 정부광고로 집행이 가능하다”며 “협찬고지를 하지 않거나 애드버토리얼면에 싣지 않으면 정부광고로 집행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정부광고시행체계. 자료=문화체육관광부
▲ 정부광고시행체계. 자료=문화체육관광부

 

지면구입 막지 못하는 정부광고법

신문사들은 대부분 정부에게 돈을 받고 기사를 썼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언론재단 관계자 말처럼 정부가 구입한 모든 지면에 신문사들이 협찬사실을 고지했다고 인정해도 문제는 남는다. 

‘아무개 정부부처가 지원 또는 협조했다’ 정도의 문구를 기사 끝에 표기했을 때 이를 보는 독자가 몇이나 될까. 이미 기사인 줄 알고 본 독자들이 나중에 홍보성 글인 걸 알았더라도 제목 등 주요내용이 기억에 남는 건 사실이다. 또 이 표현을 봤더라도 ‘정부가 자료를 제공하고 인터뷰에 응했겠지’ 정도로 생각할 뿐 설마 신문사가 지면을 돈 받고 팔았다는 생각까지 할 수 있을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정부가 홍보협력사와 언론재단을 거쳐 세금으로 신문지면을 사는 일은 현행 정부광고법을 어기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 정부광고법 논의 과정에서 사실상 법을 무력화하는 내용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노웅래 의원은 지난 2016년 7월 정부광고 형태 이외의 홍보행위를 예외 없이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처벌조항을 담아 정부광고법을 발의했다. 2016년 11월22일 346회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문화체육관광법안 심사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 교문위 전문위원이 이를 반대했다. 

박용수 전문위원은 “정부광고 형태 이외의 모든 행위를 일률 금지하는 건 홍보방법을 과도하게 제한할 소지가 있으며 광고 효과성을 저해할 수 있다”며 “과태료를 부과하는 건 정부기관 등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제한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관주 당시 문체부 제1차관도 “홍보의 자율성이 과도하게 제한될 여지가 있다”며 “일률적으로 유사광고 금지 규정이 들어가면 광고시장이나 언론 활동이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협찬고지 등 다양한 정책홍보가 보장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광고법에서 과태료 조항이 사라졌고, 정부광고법 9조에는 ‘정부광고 형태 이외의 홍보매체를 실질적으로 구매하는 어떠한 홍보형태도 할 수 없다’는 내용에 다음과 같은 단서가 붙었다. “다만, 해당 홍보매체에 협찬받은 사실을 고지하거나 ‘방송법’에 따른 협찬고지를 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않다” 사실상 정부가 지면을 구매할 길을 터준 단서조항이다. 

포털도 ‘기사로 위장한 광고’ 규제

협찬고지를 하더라도 ‘기사형 광고’의 본질은 광고다. 기사형 광고가 기사면에 들어가는 행위는 저널리즘 원칙에 반한다. 포털도 이를 규제하고 있다. 뉴스제휴평가위 ‘네이버·카카오 뉴스제휴 및 제재심사 규정’을 보면 ‘기사로 위장한 광고(기사형 광고) 전송’을 부정행위로 규정했다. 제휴평가위 뿐 아니라 언론사와 포털의 계약서에도 돈 받고 만든 광고를 포털에 전송하지 못하게 했다. 

거의 모든 신문사에서 경영과 편집 경계가 무너졌고, ‘기사형 광고’라는 이름으로 기사면에 광고가 침투해 있다. 물론 처벌조항을 만드는 게 최선인지 논란이 있다. 독자를 기만하는 ‘기사형 광고’를 피할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못한 것 언론계 과제도 있다. 감독기관이 있더라도 광고주와 신문사의 은밀한 거래를 모두 포착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광고를 팔아야 할 신문이 지면을 파는 행위까지 정당화할 순 없다.  

[관련기사 : 정부부처 언론사 지면구매, 문재인 정부에서도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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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한국언론재단, 신문의 기사형 광고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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