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효력을 정지한다고 발표한 이후 일본이 약속을 어기거나 ‘일본의 퍼펙트 게임’ ‘한국, 미국에 굴복’ 등의 주장이 나오자 청와대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4일 오후 부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장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일본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정 실장은 지소미아 연장 발표 전후 일본 측의 몇 가지 행동을 두고 “우리로서는 깊은 유감을 표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이런 식의 행동이 반복된다면 한일 간의 협상 진전에 큰 어려움이 있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우선 한일간 발표하기로 약속한 22일 오후 6시 보다 1시간 앞서 NHK 등에서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발언을 통해 합의사항이 보도된 점을 들었다. 정 실장은 우리 정부의 경우 6시 이전까지 국내 언론에 사전에 일절 알려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정 실장은 일본이 양국 동시 22일 오후 6시 발표 약속을 깨고 우리보다 7~8분 정도 지연 발표한 의도도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 실장은 세 번째로 일본의 경제산업성(경산성)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 한일 간에 당초 각각 발표하기로 한 일본 측의 합의 내용을 아주 의도적으로 왜곡 또는 부풀려서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정 실장은 “이것은 한일 간에 양해한 내용과 크게 다를 뿐만 아니라 만일 이러한 내용으로 일본 측이 우리와 협의했다면 합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일본 측의 경산성 발표의 문제점을 두고 정 실장은 “우리 측이 사전에 WTO 절차 중단을 통보해서 협의가 시작됐다는 설명인데, 아니다”라며 “우리가 사전에 이러한 약속을 해서 협의가 시작된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 실장은 또한 “일본 경산성이 한국이 수출관리의 문제점 개선의 의욕이 있다고 시현, 그 사람들 표현에 의하면 시현이라는 얘기를 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주장도 완전히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정 실장은 표현상에는 없지만 한일간 양해와 확인을 통해 ‘수출 규제 조치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협의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일본의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수출 규제에 관련해 일본이 ‘수출관리의 부적절한 사안이 존재하고 있다’, ‘앞으로도 개별심사를 통한 허가 실시 방침에는 변경이 없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 정 실장은 “한일 간에 사전에 조율한 내용과는 완전히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정 실장은 “만일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일본이 우리와 협상을 했다면 우리가 애당초 합의를 할 수가 없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역설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그동안 뒤통수를 치고 도저히 이해 못할 일을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소미아 종료 효력 정지를 결정했다. 그러면서 다시 일본이 뒤통수 친다고 항의하는등 발끈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부 일본 언론 보도를 두고도 정 실장은 “정말 실망스럽기 이를 수 없는데 더 실망스러운 것은 일본의 고위 정부 지도자들의 일련의 발언”이라며 “매우 유감스러울 뿐만 아니라 전혀 사실과도 다른 이야기를 자신들의 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정 실장은 예를 들어 ‘한국이 미국의 압박에, 압력에 굴복했다’, ‘일본 외교의 승리’, ‘퍼펙트게임이었다’는 주장을 들어 정 실장은 “사자성어로 견강부회(牽强附會)로,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을 자기 식으로 하는 (해석한) 것 아니냐”라고 반발했다. 정 실장은 이번 협상 결과를 정반대로 봤다. 그는 우리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후 일본이 우리에 접근해와 협상이 시작되는 등 큰 틀에서 보면 “우리 문재인 대통령의 원칙과 포용의 외교가 판정승했다”고 평가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 실장은 강제징용 문제 해결 없이 아무 진전과 대화도 없다는 일본 주장이 깨졌고, 지소미아와 수출 규제 문제는 완전히 별개라고 주장했던 일본 원칙도 사실상 깨졌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김현종 2차장이 지난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과의 정상회담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김현종 2차장이 지난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과의 정상회담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정 실장은 이러한 일본의 행위를 두고 “외교 협상을 하는 데 있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 영어로 ‘브리취 오브 페이트(breach of faith)’라고 본다”며 “발표 이후 즉각 일본의 이러한 불합리한 행동에 대해서 외교 경로를 통해서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강력히 항의했다”고 설명했다. 정 실장에 따르면, 일본측은 우리가 지적한 이러한 입장을 ‘이해를 한다’, 특히 경산성에서 부풀린 내용으로 발표한 것에는 ‘사과한다’, 마지막으로 ‘한일 간 합의 내용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점을 재확인해줬다고 주장했다.

정 실장은 “영어로 트라이 미(Try me)라는 얘기가 있는데, 어느 한쪽이 터무니없이 주장을 하면서 상대방을 계속 자극할 경우, ‘그래? 계속 그렇게 하면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모른다’라는 경고성 발언”이라며 “유 트라이 미(You try me), 제가 그런 말을 일본에 하고 싶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 압박을 해서 양보했다’, ‘아베도 그런 발언을 하고 자신들이 양보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는 보도 내용을 두고 정 실장은 “주한미군 문제는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일체 거론이 안 됐다”며 “한일 간의 지소미아가 그러한 굳건한 한미동맹의 근간을 훼손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은 아니라고 보고, 미국도 그렇게 봤을 것으로 이해한다”고 답했다.

이어 아베 총리 발언을 두고 정 실장은 “언론에 보도된 것만 보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코멘트하기는 어려우나 언론에 보도된 것들이 사실이라면 아주 지극히 실망스럽다”며 “그게 일본 정부의 지도자로서 과연 양심을 갖고 할 수 있는 말인지 되물어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청와대는 일본 언론을 인용보도한 국내 언론 보도를 두고도 문제를 제기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금 이런 한일 간의 충돌과 마찰이 있을 때마다 일본 측의 시각으로 일본의 입장을 전달해왔다”며 이번 협상결과가 나오자 “일본의 입장을 반영한, 일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국내 언론의 비합리적인 비난 보도가 다시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윤 수석은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는 보도”라며 “지소미아 카드를 쓰지 않았다면 상황이 어떻게 진행됐을지 생각해 보면 안다”고 주장했다. 윤 수석은 “일본은 그들이 밝혀온 대로 협상에 응하지 않고, 대(對)한국 수출 규제는 아무런 실마리 없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윤 수석은 “제발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 보도해달라”며 “일본 언론의 보도를 사실로 전제하고 보도하는데, 일본 언론의 그런 주장과 보도가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지, 그 보도(내용)가 사실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윤 수석은 “내용이 허위이면 허위 보도”라며 “사실이 아니면 소설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윤 수석은 지소미아 효력 정지를 통보한 것을 ‘다시 지소미아 카드를 쓰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일부 언론의 주장을 두고 “도대체 무슨 근거로 무엇을 바탕으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사실이 아닌 것을 제목으로 뽑아서 보도한다”고 말했다. 윤 수석은 “일본 측의 주장이라는 이유”라며 “물론 클릭 수는 올라갈 수 있겠지만 국민이 오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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