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오정훈, 이하 언론노조)은 9월29일부터 10월6일까지 8일 동안 ‘2019 해외현장조사사업단’을 파견했다.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영국 런던, 벨기에 브뤼셀를 방문해 각 나라의 언론 현장을 조사했다. 조사 대상은 각 나라의 언론 기관 노조 지부들과 언론정책 정부부처, 언론 유관 기관이다. 유럽 언론의 △제작환경 △고용구조 △미디어진흥 및 규제 정책을 들여다봤다. 미디어오늘은 언론노조의 해외현장조사 사업 가운데 프랑스 일정을 동행 취재했다.

프랑스 최대 언론인노동조합은 정부 정책에 의해 경직된 언론 환경과 기자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문화부와의 만남에서는 미디어 다양성을 위한 언론 정책을, 공영방송인 텔레비지옹-라디오 노동조합과의 만남에서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들었다. -편집자주

한국 일부 언론인은 ‘주52시간’ 시행을 두고 “기자 특성과 맞지 않는다”고 한다. 주 52시간과 정시 퇴근을 요구하면 ‘기자정신’이 없는 기자로 치부하기도 한다. 특히 방송업은 노동시간 단축에서도 제외된 21개 업종 중 하나로, ‘초과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업종’으로 여겨진다. 프랑스는 주당 기본 근무시간이 35시간이다. 한국 언론의 ‘주 52시간도 모자르다’는 주장은 이들에게 어떻게 들릴까.

지난 9월30일 프랑스 파리 전국기자노동조합(Syndicat National des Journalistes, 이하 SNJ) 사무실에서 만난 도미니크 프라달리에(Dominique Pradalié) 대외협력담당 부위원장은 프랑스에서도 ‘노동 시간 단축’을 두고 첨예한 갈등이 일어난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프랑스 언론은 지금① 마크롱 정부 이후 프랑스 언론은 태풍전야”)

▲SNJ의 도미니크 프라달리에 대외협력담당 부위원장. 사진=정민경 기자.
▲SNJ의 도미니크 프라달리에 대외협력담당 부위원장. 사진=정민경 기자.

현재 프랑스 노동 시간 관련 법제를 보면, 주당 기본 근무 시간을 35시간으로 규정해놓고 있다. 35시간 이상 일하는 시간은 예외 없이 추가 근무 시간이다. 추가 근무 시간에 대해서는 기본급보다 인상된 수당을 줘야한다. 단체협약에 의해 노동 시간은 추가될 수 있지만 보통 48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한다. 또한 프랑스 노동법에 따르면 하루 6시간의 근무마다 최소 20분의 휴게 시간을 부여해야 한다고 규정돼있다.

한국에서는 방송업이 노동시간 단축에서 제외된 특례업종으로 분류되지만 프랑스에서 방송이나 영상 등 콘텐츠 사업이라고 해서 특례업종으로 근로시간 감축에서 제외되진 않는다. 다만 노동법에서 기간제 근로가 관례적으로 허용되는 분야로 언급돼있긴 하다. 영상 노동에 대해서도 법정 표준 근무 시간인 35시간이 원칙이며, 초과 근무의 경우 시간에 따라 차등 인상된 추가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다만 법적 처벌은 명시돼있지 않다.

프랑스 언론사, 특히 기자 직군 자체가 근무 시간이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노동 시간을 개별적으로 정하는 문화다. 계약을 할 때 시간을 정해 계약하기도 한다. 

도미니크씨 역시 언론사의 편집장 출신이다. 젊은 시절 오랜 기간동안 휴가없이 일했던 분위기를 겪었다. 프랑스에서도 전통적으로 기자들은 ‘스스로 몇 시간 일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기자들이 ‘나는 기자이고,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좋아’라는 식으로 생각해 추가노동을 한다고 해도 조직 내에서 그냥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프랑스 기자 채용의 구조도 반영돼있다. 프랑스 기자직 노동자 약 3만5000명 가운데 프리랜서 기자가 20%를 넘게 차지하고, 취업 경로도 대부분 프리랜서 기자로 시작해서 수년 간 경력을 쌓으면서 기자증을 발급받는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노동 시간 감축보다는 ‘기자로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 방점을 둔 분위기가 형성된 모양이다.

도미니크씨는 “최근 젊은 기자들의 생각은 바뀌었다. 법적으로 정해진 근무 시간(35시간)을 갖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며 “현 상황은 서로 노동 시간과 관련해 ‘칼을 맞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정도로 갈등이 첨예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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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와 ‘기레기’로 골머리 앓는 것은 프랑스도 마찬가지

‘가짜뉴스’ 현상과 기자를 일명 ‘기레기’로 부르며 비판하는 분위기는 일맥상통했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노란조끼 시위’(마크롱 대통령의 유류세 인상 발표에 반대하면서 시작돼, 반정부 시위로 확산된 시위)에서 실제 현장과 보도내용이 다른 것을 보고, 기자들을 비판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기자들은 이런 분위기에 현장 취재를 선호하게 됐다고 한다. 도미니크씨는 “젊은 기자들이 현장에 직접 나가서 보고 쓰는 기사가 많아졌다”며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진짜 정보가 뭔지 헷갈리기 때문에 현장에 가서 쓴 기사를 많이 보고, 기자들도 그렇게 하는 추세다”라고 전했다.

넘쳐나는 시대에 일부러 정보를 왜곡하는 ‘가짜뉴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은 프랑스도 같았다. 한국 방송통신위원회처럼 프랑스 CSA(방송위원회) 역시 가짜뉴스에 대한 법적 규제를 하고 있다. 그러나 도미니크씨는 법적규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적 규제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짜뉴스를 발견해 법적으로 대응하게되면 48시간 이후에나 규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가짜뉴스는 그 사이 인터넷을 통해 퍼져 나간다”고 한계를 설명했다.

기자에 대한 비판이 심해지는 사회적 분위기도 비슷했다. 9월26일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전 프랑스 대통령이 서거하고 이후 언론보도에서 ‘기레기’ 논란이 일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한 언론에서 시라크 대통령 관 위에 국기가 놓여진 것을 두고 “‘청백적의 천'을 덮었다”고 보도해 비판이 일었다. 국기를 두고 청백적의 천이라고 표현한 것. 도미니크씨 역시 이를 두고 “기사에서 사용할 말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최근 주요 언론사 기자 직종에 대해 일부 사람들이 ‘사주에게 돈을 벌어주기 위해 비열하게 행동하는 직군’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미디어 자체가 정치경제적으로 소위 말하는 재벌과 같은 권력에 매여 있는 상황이다. 언론사에 속한 유명한 앵커와 기자들이 있지만, 권력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식의 보도를 많이 한다. 때문에 시민들이 미디어를 불신하는 경향이 심해졌다. 프랑스에서는 '주흐날롭' (journalope, journaliste+salope, 기자+매춘하는 사람을 뜻하는 비속어)이라는 말이 한국 ‘기레기’처럼 쓰이기도 한다.”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는 프랑스 언론. 사진=정민경 기자.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는 프랑스 언론. 사진=정민경 기자.

이러한 상황에 SNJ는 정부와 기자,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해 공적영역 보도에 의견을 전달할 창구를 설립하는 일을 추진 중이다. 기자윤리에 국가위원회를 만드는 일이다. 

도미니크씨는 “이러한 기구의 설립은 무엇보다 ‘시민의 알 권리 보장하고 있느냐’하는 질문에서 출발했다”며 “사실 각 언론사에는 모두 ‘편집 방향’이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기자윤리’나 ‘취재윤리’를 어떻게 처리할지에는 편집방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기준을 어떻게 세울지 다루는 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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