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가 굳게 내려앉은 LG유플러스 본사 정문 앞에서 CJ헬로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두 달째 농성 중이다. LG는 묵묵부답이다. 시민단체와 면담도 거부했다. 고용승계와 직접고용을 보장하라는 요구도 아니었다. 차가운 길바닥에 나와 고용불안에 떠는 노동자와 만나 대화하라는 간곡한 요청마저 뿌리쳤다. 결국 회사 안으로 한발 짝도 들이지 못한 채 항의서한만 겨우 전달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잘못 되도, 뭔가 한참 잘못됐다. 

LG유플러스는 케이블방송 CJ헬로를 인수하려 한다. 얼마 전 공정위로부터 조건부 승인을 받아냈다. 하지만 공정위는 방송통신 전문규제기관이 아니다. 시장상황에 따른 경쟁제한성만 판단한다. 방송 승인의 핵심사항인 공익성 심사는 과기정통부의 몫이다. 이번 인수의 주요쟁점인 지역성 보장과 고용승계에 관한 정책적 판단도 과기정통부가 내린다.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는 이제 막 1차 관문을 통과했을 뿐 진짜 심사는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본심을 앞둔 LG유플러스가 여유만만하다. 긴장감이 돌기는커녕 호기롭기 그지없다. 심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승인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아직 풀지 않은 숙제가 잔뜩 쌓여있는데도 말이다. 

3년 전 LG유플러스는 SKT를 향해 “나쁜 인수합병을 포기하라”고 말했다. CJ헬로를 인수합병하면 “매년 엄청난 가계통신비가 SKT의 이윤으로 돌아가고”, “알뜰폰 정책은 무력화”되며, “대규모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 반대광고를 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식의 ‘내로남불’이 LG의 경영철학이 아니라면 이번에는 유플러스가 답을 해야 할 차례다. 그러나 LG는 인수 선언 이후 지금까지 1면 광고는커녕 A4 한 쪽짜리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정부심사가 다가오자 최근 하현회 LG부회장은 앞으로 5년간 2조6천억원을 투입하여 5G 혁신형 콘텐츠를 육성하겠다는 (심사용)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허나 이런 식의 콘텐츠 투자계획은 “자신들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독과점 기업의 전형적인 행태”일 뿐이라고, “인수기업과 CJ그룹의 콘텐츠 시장 독과점은 중소 제작사와 창작자의 의욕을 꺾어 한류콘텐츠를 고사시킬 것”이라고 일축했던 것은 다름 아닌 LG였다!

▲ 166개 시민사회·노동·언론단체가 꾸린 ‘방송통신 공공성 강화와 나쁜 인수합병 반대 공동행동’은 지난 20일 LGU+에 CJ헬로 고객센터 노동자와 재차 면담을 요청하고 나섰다. 사진=희망연대노조 제공
▲ 166개 시민사회·노동·언론단체가 꾸린 ‘방송통신 공공성 강화와 나쁜 인수합병 반대 공동행동’은 지난 20일 LGU+에 CJ헬로 고객센터 노동자와 재차 면담을 요청하고 나섰다. 사진=희망연대노조 제공

아무리 살펴도 ‘그 때는 나쁜 합병이고 지금은 좋은 인수’라고 판단할 구석이 없어 보인다. 가계통신비로 LG 이윤만 늘리고, 알뜰폰을 무력화하며, 일자리를 빼앗는 ‘나쁜 인수’임에 분명하다. 달리 변수가 없다면 이대로 허용해서는 안 되는 ‘나쁜 인수’가 틀림없다. 그런데 어찌 LG유플러스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저리 여유만만 할 수 있을까. 애써 지역성 강화 방안을 찾지 않아도, 굳이 하청업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아도, 무난히 승인을 받을 거란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리라. SKT와 CJ헬로의 인수합병을 불허했던 그 때와 지금, 정부의 시그널과 심사기조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2016년 3월, 공정위 심사완료를 앞둔 시점. 박근혜 정부 미래부는 SKT·CJ헬로 인수합병 심사에 반영할 방송분야 ‘심사주안점’을 공개했다. 주목할 점은 미래부가 심사에 앞서 인수기업인 SK에 △원‧하청 노동자의 고용안정 방안, △시청권 보호 및 강화 방안, △지역채널 공정성‧독립성 확보 방안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고용승계, 고용안정성 보장, 인력 배치, 노사정책 등 구체적인 평가항목들이 포함됐다. 또 미래부는 “지역보도의 공정성‧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채널운용 독립성 확보방안의 실효성과 투자계획의 적정성” 등을 중점 심사하겠다고 예고했다. SK가 사업계획서를 보완해야 할 지점을 알려줬다는 점에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미디어스, 16.03.23)

반면, 2019년 11월 심사돌입을 앞둔 과기정통부는 한 마디로 무대책이다. 심사주안점은커녕 심사의 기본방향조차 알 길이 없다. 과기정통부 관계자 입에서는 노동과 일자리 대책이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지역성 강화와 시청자 권리 보장 방안은 하나도 알려진 게 없다. 그 대신 심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과기정통부는 내부적으로 상당부분 결론에 다다른 상황”이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심사를 ‘어떻게 하겠다’는 말보다 “연내에 마무리 하겠다”는 말이 앞선다. LG는 여유를 부리고, 노동자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이유다.

▲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LG유플러스 본사 앞에서 시민 필리버스터에 임하고 있다. 사진=희망연대노조 제공
▲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LG유플러스 본사 앞에서 시민 필리버스터에 임하고 있다. 사진=희망연대노조 제공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는 단순히 한 방송사의 최대주주를 변경하는 일이 아니다. 연쇄적 인수합병이 완료되면 유료방송 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지역의 시청자와 노동자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구조 개편의 시기에 정부의 책임은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만약 이대로 ‘나쁜 인수’가 허용된다면 그건 ‘그 때의 미래부만도 못한 지금의 과기정통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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