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까지 만들어줬으면 나머지라도 해라”
“내가 왜 대본이 아니라 회견문을 써야 하나”
“주업은 연출인데 피켓들기가 내 부업이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파행되면서 상당 수 법안들이 심사조차 못 받고 폐기될 상황에 놓였다. 앞서 예정된 소위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이 통과될 거라 기대했던 문화·예술인들은 22일 손글씨를 적은 피켓을 들고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 모였다. 이들은 문체위 소속 의원 16명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일하지 않는 국회는 필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술인들의 노동권, 성평등, 복지 등 기본 권리 보장을 골자로 하는 예술인권리보장법(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은 지난 4월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뒤 7개월 동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해 말부터 민관협치기구인 새문화정책준비단과 문화예술계 단체, 문화체육관광부 등 논의와 현장 예술인들 의견 수렴을 거쳐 만들어진 법안이다.

신희주 감독(여성문화예술연합)은 “예술계 성폭력을 제도적으로 해결하고자 여성문화예술연합이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예술인복지재단을 찾아다니며 정책 건의를 하기 시작한 지도 만 3년이 됐다”고 전한 뒤 “국회 문체위 의원들은 예술계 성폭력에 대한 법안 발의도 하지 않았다. 예술인 성폭력예방교육에 대한 조항이 삽입된 예술인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여성가족위원회의 여성 의원들이다. 예술인권리보장법 외에 예술계 성폭력에 대한 문체위 의원의 발의법안은 한 건도 없다. 예술인권리보장법조차도 예술인들이 직접 의원들을 찾아다니지 않았으면 18일에 법안 상정이 되지 않을 뻔 했다”고 지적했다.

▲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문화예술노동연대·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여성문화예술연합 등 문화예술인단체들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노지민 기자
▲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문화예술노동연대·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여성문화예술연합 등 문화예술인단체들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노지민 기자

홍예원 연출가(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는 “국회의원은 누군가를 도와주는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당연히 해야 할 책무를 방기하지 말라”며 “지난 1년간 예술가들이 직접 공부하고 토론해 법까지 손수 만들어 줬다. 세금으로 월급 받는 국회는 떠먹여주는 밥이라도 씹어서 넘기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오경미 문화예술노동연대 사무국장은 “예술인의 가난과 고통은 예술인의 숙명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국민으로서 노동자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박탈당한 결과”라며 “예술인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권리가 있다. 왜 예술인만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지 노동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 보호도 받지 못하는지 우리 사회는 되물어야 한다”고 법안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19, 20일 예정됐던 문체위 법안소위는 여야 간 소위 ‘쟁점법안’ 문제로 꽉 막혀 있다. 자유한국당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위탁 운영을 5년 연장하는 특별법 개정안(최경환 대안신당 의원 대표발의)을 안건에 포함한 상태로 법안소위를 열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까지는 비쟁점 법안을 우선적으로 다루는 소위 개회 여부도 불투명하다. 처리되지 못한 법안들은 20대 국회 회기가 종료되면서 폐기된다.

▲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문화예술노동연대·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여성문화예술연합 등 문화예술인단체들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노지민 기자
▲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문화예술노동연대·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여성문화예술연합 등 문화예술인단체들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노지민 기자

문체위 더불어민주당 간사 신동근 의원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박인숙 한국당 간사가 당론이라 상정도 안 된다며 구체적 문제가 뭔지도 얘기를 안 해주고 있다. 그쪽 당 원내수석과 상의 좀 해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태”라며 “국회의원이 법안을 심사해서 문제제기는 할 수 있다. 상정조차 안 해주면 안 되지 않느냐”고 했다. 바른미래당 간사인 이동섭 의원은 “양당(민주·한국)에서 쟁점 법안은 놔두더라도 비쟁점법안은 상의해서 통과시켜야 하지 않겠나.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지, 자신들 당리당략에 의해 (법안들을) 볼모로 만드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아직 간사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아시아문화전당법을 제외하고 여당 쪽에서 수정 제안을 한다면 고려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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