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54.6%, 캡틴마블 61.1%, 어벤져스:엔드게임 80.8%, 기생충 46.2%.

올해 많은 관객을 모은 영화들의 개봉일 상영점유율이다. 모두 전체 상영 횟수의 절반에 육박하고 이 점유율이 1주일 넘게 지속되면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제기됐다. 이달에도 같은 논란이 벌어졌다. 22일 개봉하는 ‘겨울왕국2’다.

겨울왕국2 개봉일 상영점유율은 63.0%. 하루 동안 전국 극장이 10번 가운데 6번 이상을 겨울왕국2 상영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상황을 지켜보던 영화인들이 “정부·국회는 더 이상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묵과해선 안 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원회’(이하 위원회)는 22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스크린 독과점 해소 방안을 담은 영비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증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 통과를 촉구했다.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원회’(이하 위원회)는 22일 오전 서울 중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원회’(이하 위원회)는 22일 오전 서울 중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위원회는 “프랑스 경우 영화법과 협약에 의거해 강력한 규제·지원 정책을 영화 산업 제 분야에 걸쳐 병행하고 있다”며 “일례로 스크린 15~27개를 보유한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한 영화가 점유할 수 있는 최다 스크린은 4개이며 11~23개 스크린에선 각기 다른 영화를 상영한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대자본이 투입된 일부 영화들이 나머지 영화들을 압사시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시각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승자독식·약육강식이 당연한 것이라면 우리 삶과 우리네 세상 만사는 과연 어떻게 되겠느냐”며 “시장이 건강한 기능을 상실해 갈 때 국회와 정부는 마땅히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원회는 “영화 다양성 증진과 독과점 해소는 법과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특정 영화 배급사와 극장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 덧붙였다.

위원회가 지목하는 법안은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6년 대표 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된 영비법 개정안이다. 개정 골자는 △대기업 배급과 상영 겸업 금지 △복합상영관에 예술·독립영화 전용상영관 1개 이상 지정해 영화상영일수의 100분의 60 이상 상영 의무화 △영화발전기금 용도로 전용상영관에 대한 지원 사업을 포함 △시간대별·요일별 관객 수, 상영 시간대 및 요일 등을 고려한 공평한 상영관 배정 의무화 등이다.

조승래 민주당 의원이 2017년 11월 대표 발의한 개정안도 국회 계류 중이다. 이 안은 대기업 직영 상영관의 경영자가 동일한 영화를 40% 초과해 상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를 담고 있다.

영화 하나가 상영관 60%를 차지하는 비정상

자리에 참석한 정지영 감독은 “제작진 등이 ‘역풍을 맞는다’며 만류했지만 이 자리에 나왔다. ‘블랙머니를 극장에 올리지 않아 기자회견하는 게 아니냐’는 비난도 많은데 불공정함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정 감독이 연출한 ‘블랙머니’는 20% 후반대 상영점유율을 유지하다 21일 상영점유율이 28.7%에서 13.6%로, 좌석점유율은 33.9%에서 11.7%로 급감했다.

정 감독은 “영화는 손익 분기점를 넘을 자신이 있기에 (회견 참석을 반대한) 투자자나 제작진에게 크게 미안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손해를 보더라도 이 기회에 언론인들이 영화계 불공정 시장 문제를 지적해주면 그게 더 보람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 감독은 “블랙머니 경우 상영 전 배급팀에 ‘전체 상영관의 3분의 1은 넘지 않는 게 좋겠다. 그게 다양성 확보를 위해 좋겠다’고 당부했다”며 “다행히 3분의 1 이하를 유지했다”고 덧붙였다.

정 감독은 또 ‘미국영화에만 문제제기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동료 영화인들이 오랜만에 돈을 잘 벌고 있는데 공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도 한 번 그 짓(비판)을 한 적이 있다”며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대화를 거론했다.

정 감독은 “허락을 구하지 않고 대화 내용을 공개한다. 영화 개봉 전 봉 감독에게 ‘축하한다. 하지만 이번 상영에 점유율 3분의 1을 넘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렇게 모범이 돼 주면 한국 영화인들이 박수치고 정책 당국이 문제를 깨달을 것’이란 취지로 문자를 넣었다. 봉 감독은 ‘배급사에 그렇게 관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어서 죄송하다. 50% 이상 넘지 않게 노력해보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정 감독은 “봉 감독은 자신이 애써 노력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던 자괴감에 슬펐을 것”이라며 “불가능한 일을 주문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법과 제도로 규제되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한편 회견에선 위원회 대응이 독립·예술영화 및 소규모 제작자들 입장도 포용하고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영화 극한직업, 기생충 사례처럼 한국 상업영화 제작사·배급사 등도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국회에 계류된 도종환 의원 대표 발의 개정안이 위원회가 동의하는 법이다. 이 법안에 독립·예술영화를 위한 규제·지원 방안이 함께 포함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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