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고(故) 장자연 사건을 보도한 MBC PD수첩과 해당 보도에서 수사 외압 당사자로 지목된 조선일보의 법정 다툼 1라운드는 지난 20일 다소 ‘싱겁게’ 끝났다. 서울서부지법 제12민사부(부장판사 정은영)는 PD수첩 제작진과 외압 사실을 이 방송에서 폭로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전부 승소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조선일보가 항소할 가능성도 있지만 1심 판결문 논리는 간결·명쾌하다.

쟁점이 됐던 보도 내용은 ①2009년 당시 조선일보가 이동한 사회부장(현 조선뉴스프레스 대표)을 통해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에게 수사 관련 외압을 행사했다는 내용과 ②조선일보가 개최해 경찰에 수여하는 청룡봉사상을 지적하는 부분이었다.

조선일보는 PD수첩의 ①·② 관련 내용이 허위사실이고, 이를 적시해 원고(조선일보·이동한) 명예를 훼손했으니 정정보도할 의무가 있고 손해배상(PD수첩이 6억원, 조현오가 3억원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② 보도 내용이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담당 수사관에게 상금과 특진이 주어지는 청룡봉사상을 시상했다”는 것으로 적시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 조현오 전 경찰청장. 사진=미디어오늘
▲ 조현오 전 경찰청장. 사진=미디어오늘

먼저 ①, 즉 조선일보의 장자연 사건 수사 외압을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재판부는 조선일보의 수사 외압은 “진실한 사실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판결문에서 확인되는 사실 관계는 2009년 3월 사망한 장자연씨가 생전 작성한 문서(‘장자연 문건’)에 “연예기획사 대표로부터 유력인사들에 대한 술접대, 잠자리 강요를 받았고 2008년 9월경 연예기획사 대표가 조선일보 사장으로 하여금 잠자리 요구를 하게 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것. 장씨 오빠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성매매 혐의 등으로 형사 고소했지만 2009년 8월 ‘혐의없음’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이 시기 사건을 맡은 경찰(경기지방경찰청·분당경찰서 합동수사팀)을 상대로 조선일보의 수사 외압이 있었다는 게 조현오 전 청장 주장이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방송과 재판에서 일관됐던 조 전 청장 증언이 구체적이라고 봤다. 조 전 청장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원고 이동한이 찾아와 몇 차례 만난 적 있고 이동한은 방상훈 이름이 거명되지 않게 해달라, 방상훈이 경찰 조사를 받지 않게 해달라 등의 요구를 하면서 ‘조선일보가 정권을 퇴출시킬 수도 있다’ 등의 협박을 했다. 이에 위협을 느꼈다.”

재판부는 “조현오가 2012년경 자신에게 부정적 보도를 한 조선일보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대도 PD수첩 인터뷰는 그로부터 수년이 경과한 뒤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당시 장자연 사건과 관계없는 별개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던 상황이므로 조현오가 이동한을 지목해 구체적 내용의 허위 진술을 할 만한 충분한 동기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 조현오가 허위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사정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장자연 사건 수사 당시 경기지방경찰청 형사과장으로 재직했던 최원일씨가 당시 조현오에게 이동한 연락처를 받았고 장자연 사건 관련해 조선일보 창구가 사회부장(이동한)으로 일원화됐다는 말을 들었으며, 수사과정에서 이동한이 ‘방상훈이 경찰 조사를 받지 않게 해달라’ 등의 요구를 했다고 진술한 점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가 지난 5월 장자연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를 통해 조선일보가 2009년 경찰의 장자연 사건 수사 때 외압을 행사했다고 밝힌 점 △실제 2009년 수사 당시 방상훈 사장이 경찰서에서 조사 받지 않고 다른 장소에 경찰관이 방문해 조사받는 등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점 등이 조 전 청장 진술을 뒷받침한다고 봤다. 

▲ 조선일보 사옥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 조선일보 사옥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②와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명확했다. 조선일보는 PD수첩이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담당 수사관에게 상금과 특진이 주어지는 청룡봉사상을 시상했다”고 보도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그와 같은 사실을 단정적으로 적시했다거나 암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PD수첩이 청룡봉사상을 일례로 “조선일보는 경찰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표현한 것에 대해 “제작진 의견이나 논평에 불과하다”며 “청룡봉사상 수상자 선정에 대한 비판적 의혹 제기 수준을 넘어 간접적으로라도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담당 수사관에게 상금과 특진이 주어지는 청룡봉사상을 시상했다’고 보도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정리해보면, ② 부분(청룡봉사상)은 PD수첩이 그렇게 보도한 적 없다는 것이고 ① 부분(조선일보의 수사 외압)은 PD수첩이 적시한 사실이지만 허위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조선일보 측의 손배 청구에 관해서도 “이 사건 보도는 고 장자연의 사망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당시 부실 수사 원인으로 지목되는 부당한 외압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보도”라며 “주요 목적·동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원고들(조선일보·이동한)을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적시된 사실(조선일보의 장자연 사건 수사 외압)은 진실한 사실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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