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사업자 간 인수합병에 대한 정부 심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8일 공정거래위원회 심사 결과가 ‘조건부 승인’으로 나왔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심사를 연내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공정위 결과 발표 일주일 전인 지난 1일 사전동의 심사일정은 물론 항목과 배점까지 공개했다.

사업자와 정부부처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종합하면,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건에 대한 결론은 연내 나오고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 관련 심사는 방통위 사전동의 절차(최장 35일)를 거쳐 내년 1월 중 끝이 난다. LG와 SK는 이미 축배를 들었다.

두 통신재벌의 바람대로 인수합병이 이뤄진다면 SK LG KT 이동통신 3사는 유료방송과 초고속인터넷 시장을 각각 3분의 1씩 점유하게 된다. 업계 1위 CJ헬로와 2위 티브로드가 인수되고 합병된다면, 나머지 케이블방송들 또한 줄줄이 매각 수순을 밟을 것이다. 굉장히 빠른 시일 내에 이동통신부터 유료방송까지 우리 사회 방송통신시장은 통신재벌 3사가 독과점하게 될 것이다.

인수합병이 성사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SK자본과 LG자본의 힘이 세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KT가 아현국사 화재사고와 CEO 리스크 때문에 제대로 대응을 못해서도 아닌 것 같다. 케이블방송 가입자 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빨리 처분하고 싶은 케이블사업자 때문만도 아니다. 통신재벌과 정부는 그동안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글로벌 방송플랫폼에 맞서 국내 방송플랫폼의 대형화가 필요하다”고 바람을 잡았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독과점이 오히려 괜찮을 수도 있다. 방송통신서비스를 소수의 대기업들에게 맡겨 규제와 진흥과 관리에 드는 제도와 행정력을 집중시킬 수 있고, 매출 규모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재벌은 기대감에 들떠 있다. 본격적으로 땅 짚고 헤엄치는 시대가 열리기 때문이다. 가입자 수백만을 한 번에 사들여서 3사 독과점 시장을 만들고, 가입자들을 유·무선 결합과 온가족 결합 같은 것으로 묶어두고 사물인터넷 등 홈서비스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상파나 CJ E&M, 종편 같은 콘텐트사업자와의 각종 협상(CPS, VOD)에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자본과 정부 입장에서 무시 못 할 큰 변수가 생겼다. 방송통신기업의 인수합병 과정에 뛰어든 노동조합과 미디어운동단체들 때문이다. 정부는 심사과정에서 시장지배력 전이, 독과점 심화, 지배구조, 재벌의 갑질과 문어발식 확장, 사업자간 힘의 관계 정도만 고려했는데 이제는 지역채널 독립성 등 방송의 지역성 강화, 시청자 권리 보장,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장과 직접고용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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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더불어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은 이 같은 흐름을 만든 주체 중 하나다. 노조는 2015~2016년 SK의 CJ헬로 인수합병을 반대하며 이 판에 뛰어든 이후 명분과 논리와 힘과 세력을 키워왔다. (이건 정신승리나 자뻑이 아니다. 우리 노조는 통신재벌에 맞서 싸우고 재벌들과 직접 교섭하며 ‘정규직화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방송통신업계를 대표하는 민주노조다.)

우리 노조로서는 ‘조직의 명운’이 걸린 문제다. 우리 노조에는 LG유플러스 정규직과 비정규직, CJ헬로 비정규직, SK브로드밴드 홈앤서비스 노동자, 티브로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딜라이브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더하면 5천여명의 조합원들이 인수합병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요구는 명확하다. ‘고용보장-정규직화’이다. 그리고 그만큼 노동조합은 절실하다.

그런데 SK도 LG도 어떤 답변도 내놓지 않는다. 두 통신재벌이 정부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는 ‘고용보장’이라는 단어가 없다. 이들이 내놓은 보도자료나 임원들의 입에서도 이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SK가 CJ헬로 인수합병을 추진했을 당시 기자간담회를 열고 모든 질문에 답변을 했던 때와 분위기가 정반대다.

노동조합으로서는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다. 케이블 계열사(CJ헬로), 케이블사업부문(티브로드)을 따로 관리하고 결국 케이블 가입자를 IPTV로 전환시킨 뒤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는 시나리오 말이다.

비정규직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SK와 LG가 정부에 제출한 사업계획서 요약본에는 ‘협력업체와 상생’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 문구의 뜻은 케이블을 설치하고 수리하고 노동자들은 계속 외주화하겠다는 것이다. ‘케이블은 하청업체에 맡기고 IPTV는 자회사에 맡긴다’는 해괴하기 짝이 없는 인력운영계획을 세운 것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에 있어 두 통신재벌은 자가당착이다. SK는 2017년 홈앤서비스라는 자회사를 만들고 홈서비스부터 기업영업부문까지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 5천여명을 정규직화했다. 그런데 SK는 티브로드의 비정규직은 정규직화를 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LG 또한 현재 정규직화를 위해 노동조합과 협상 중이다. 입만 열면 정도(正道)와 윤리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는 재벌들이 케이블 업계 3위 사업자만도 못하다. 딜라이브는 2016년부터 꾸준히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오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알라.

사정이 이러니 노동조합은 싸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 백여개 단체들을 조직해 공동대응기구를 만들었고, 기자회견과 간담회와 토론회를 해오고 있다. 일반 서명에 비해 작성하기가 몇 배나 어려운 시청자의견서를 5천장 넘게 받아 과기정통부에 제출했다. 올 여름 과기정통부 앞에서 시작한 노숙농성은 CJ헬로를 거쳐 현재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 본사 앞에서 진행 중이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우리 조합원들은 SK와 LG 앞에서 노숙을 한다.

키는 과기정통부, 방통위로 넘어갔다. 두 부처가 제시한 심사기준과 배점, 정책담당자들이 면담에서 한 이야기들을 보면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는 공공성, 지역성, 노동자와 시청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투사인 것 같다. 공공성을 사수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심사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자, 이제 어떡할 건가. 노동조합, 미디어운동단체들, 지역운동단체들을 무시하고 과거의 관행대로 사업자만을 불러다가 심사할 건가. 5천장이 넘는 시청자의견서는 도대체 어떻게 반영할 건가.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해 징역을 살고 있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SK-티브로드 합병법인의 주요주주로 참여하는 것을 허락할 건가. 통신재벌들이 고객대면 업무와 위험작업을 외주화하도록 허용할 건가. 방송통신시장 전체를 통신재벌 3사에 넘기면서 우리 사회는 도대체 무엇을 얻어내야 하는 건가.

답은 나왔다. 이제 심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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