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시청자위원회(위원장 이준웅)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EBS 시사교양 프로그램 ‘다문화 고부열전’이 이주 여성을 편견과 차별의 시선으로 다룬다는 비판이 나왔다. 최근 언론시민단체에서 주최한 토론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는데 이미 시청자위원들이 문제를 삼았지만 개선하지 않은 셈이다. EBS ‘다문화 고부열전’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도 비슷한 비판 글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 18일 주최한 토론회에서 ‘다문화 고부열전’은 한국에 이주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을 부각하고 이주민의 정서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프로그램에는 ‘시집살이를 시키려는 시어머니’와 ‘미숙하고 못된 며느리’의 갈등상황에 집중하며 교육방송에 어울리지 않는 반인권 발언도 있었다. 이날 토론에선 제작진의 의도를 모르겠다며 프로그램을 없앴으면 좋겠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 EBS 시사교양 프로그램 '다문화 고부열전'
▲ EBS 시사교양 프로그램 '다문화 고부열전'

 

시청자위 지적에 “시청률 높아서…”

지난 14일 EBS 시청자위원회는 지난 9월25일자 시청자위원회 회의록과 당시 나온 제언답변 반영결과를 공개했다. 

이를 보면 김민문정 위원은 며느리가 18시간 노동을 하는데도 문제적인 며느리로 그려지거나, 시어머니가 ‘사람을 사서 뒤를 밟아야 하나’와 같이 인권을 침해 소지가 있는 위험한 발언이 등장한 장면, 고부갈등을 중재하거나 어머니를 돌볼 책무없이 중간에서 애쓰는 안타까운 존재로만 아들(남편)이 그려지는 장면 등을 언급했다.

▲ 다문화 고부열전 '고부갈등 때문에 아들은 힘들어' 편
▲ 다문화 고부열전 '고부갈등 때문에 아들은 힘들어' 편

 

김민 위원은 “‘며느리의 수상한 외출’, ‘고부갈등 때문에 아들은 힘들다’, ‘허술한 며느리 냉랭한 시어머니’ 등 제목만 봐도 안타깝다”며 “여성들이 주인공인데 여성의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전통적 고부갈등을 다루는 설정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김민 위원은 ‘다문화’라는 용어의 문제도 꼬집었다. 한국 사회에선 ‘다문화’란 말에 다양한 문화를 포함하기 보단 저개발 국가들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는 지적이다. 이어 “이런 한계와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없다면 굉장히 중대한 결단이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도 했다. 프로그램 전면개편 내지 폐지에 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날 김춘효 위원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매개역할을 하는 아들(남편)의 목소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외국인 며느리가 한국에 와서 여러 정체성을 갖는 과정 등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의견 등을 냈다. 배경희 위원은 EBS가 차라리 이주여성이 자녀를 낳았을 때 겪는 언어교육·기초학력 문제를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이니 감안해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날 박치형 당시 부사장은 “내부에서도 구성이 천편일률적인 거 아니냐는 얘기도 있지만 그럼에도 여러 변화를 시도하고 있고 현실적으로 시청률을 견인하고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며 “감안해달라”고 답했다. 

▲ EBS 홈페이지 '다문화 고부열전'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글
▲ EBS 홈페이지 '다문화 고부열전'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글

 

시청자게시판에서도 논란

EBS ‘다문화 고부열전’ 시청자 게시판에서도 프로그램 불만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편견을 부추기는 프로그램 개선을 요구합니다”란 최근(19일자) 글에선 ‘며느리를 복종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은 점 등 EBS가 밝힌 기획의도, 갈등을 다룬 방송인데 내레이션이 시어머니 관점에 있는 점과 같이 진행상 문제까지 상세히 지적했다. 

시청자위원회와 비슷한 취지로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글도 많지만 며느리를 비난하는 글도 많이 올라왔다. 이는 고부갈등을 건강하게 해결한다는 제작취지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다문화 고부열전’이 시어머니 관점에서 며느리 희생을 강요한다는 비판이 타당했다는 증거다. 며느리를 비난하는 글에서도 ‘교육방송에서 내보낼 내용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따라붙었다. 

시청자위원회 지적 처음 아냐 

EBS 시청자위에선 지난해에도 ‘다문화 고부열전’ 문제를 다뤘다. 지난해 3월22일 회의에서 김춘효 위원은 “한국 문화·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며느리들이 ‘일만 하는 이미지’에 불평불만만 하는 이미지로 보여진다”며 “‘너네는 한국사회에 맞춰야 하는 사람, 우리에게 맞춰야 하는데 못 맞추고 있으니 우리가 얘기를 들어줄게’ 이런 시혜자적 관점이 계속된다”고 지적했다. 

EBS 제작진과 경영진도 문제를 알고 있었다. 당시 콘텐츠협력제작부장은 “제작기간을 기존 3~4주에서 5~6주로 늘려 가족간의 관계, 친정에서 내는 목소리 등을 더 반영하겠다”며 “아직 부족할 수 있지만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장해랑 당시 사장도 “여전히 관점의 문제, 차별·편견·갑질이 깔려있다고 본다”고 인정했다. 

이어 장 전 사장은 “제작진들에게 완곡하게 ‘난 너무 불편하다. 이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고, 제작진들도 그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답변을 한지 1년8개월이 지났다.   

[관련기사 : ‘이웃집찰스’ ‘다문화 고부열전’ 이주민 차별·혐오 만연]
[관련기사 : EBS ‘고부열전’이 불편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