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고등 교육기관인 대학교가 무너지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대학교는 취업양성소로 변했고 사학비리의 온상지가 됐다. 학생과 기업은 대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쓸모없다고 투덜대고 학문의 담론 대신 등록금이 화두가 돼 사학재단과 학생 사이에 불화가 쌓이고 있다. 벼랑 끝에 선 대학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이 책의 지은이인 김창인씨가 기억하는 첫 대학 수업은 최악이었다. ‘진로탐색과 자기계발’ 수업은 신입생 모두가 의무 수강했던 과목인데 기업 CEO와 인사담당자들이 번갈아 가며 자신들 인생관을 들려주는 방식이었다. 강의 들으러 온 문과대 새내기들에게 강사로 온 모 기업 인사담당자는 전과를 권유하며 “인문학은 미래가 없다”, “전공보다 영어 공부에 힘써라”, “전과에 성공해야 대기업 원서를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은이가 기억하는 ‘대학기업화’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 추락하는 대학에 날개가 있을까 / 김창인·이동현·고준우 지음 / 들녘 펴냄
▲ 추락하는 대학에 날개가 있을까 / 김창인·이동현·고준우 지음 / 들녘 펴냄

대학은 기업을 만나 순수학문을 탄압하고 학생자치를 억압했다. 학생이 낸 등록금으로 땅투기 하고 펀드 투자하면서 학교 재정은 나몰라라 했다. 이를 비판하는 교수는 해임되고 그 자리는 비정규직 강사로 채우고, 정당한 임금과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청소노동자들을 탄압했다. 

이런 대학기업화 흐름은 사립대 뿐만 아니라 국립대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 법인화 결정은 국립대도 대학기업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법인화는 국가가 더 이상 재정을 책임지지 않으니 서울대는 독립된 법인으로 스스로 재정을 확보하라는 뜻이다. 어느새 대학기업화는 대학 사회에 방향성이 됐다. 여기서 상처입고 떠나는 사람은 대학기업화를 비판하는 학생과 교수들이다.

대학기업화는 대학이 기업처럼 이윤을 창출하는 목적으로 하고, 대학을 사유재산으로 소유하는 개념이고, 대학을 기업이 요구하는 자본주의형 인간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만든다. 이는 대학이 인재양성과 고등 교육기관임을 망각하는 것이다. 1980년대 한국에서 대학은 저항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학벌과 출세, 더 좋은 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취업양성소가 됐다. 

‘좋은 대학’과 ‘나쁜 대학’을 가르는 기준이 취업률과 손잡은 뒤 한국 대학가는 ‘학과통폐합’ 몸살을 앓았는데 학과통폐합이 절정에 달했던 2015년 한 해에 통폐합된 학과만 456건이다. 이렇게 사라진 학과는 대부분 인문·사회·예술 계열이었는데 철학과·국문학과·사회학과·회화학과·영화학과 등이 사라졌다. 대학은 ‘학문공동체’인데, 학과통폐합은 ‘학문’과 ‘공동체’ 모두를 해체하는 프로젝트였다. 대학은 학과통폐합하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통합의 정신이라고 포장했지만 그들이 학과통폐합한 진짜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 2017년 12월11일 오전 서울 노원구 서울여대 행정관 앞에서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농성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17년 12월11일 오전 서울 노원구 서울여대 행정관 앞에서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농성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재원으로 기능한다. 그렇다보니 명문대로 불리는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학생과 부모는 무리하게 경쟁에 참여해 너무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결국 개인의 다양한 재능 계발은 이뤄지기 힘든 구조다.

자본에 종속되고 시장의 치열한 경쟁논리 속에서 고등교육의 본질을 되살리는 대학이 가능할까. 이 질문에 선뜻 답할 수 없는 한국대학의 불편한 진실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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