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9일 ‘프로듀스X101’ 마지막 방송 이후 4개월이 지났다. 4개월 전에는 상상 못 한 일이 ‘투표 조작 의혹’을 제기한 시청자운동 이후 현실로 등장했다. 아이즈원·엑스원은 해체 수순을 밟을 것이란 예측이 많다. 당장 11일 방송예정이었던 MBC ‘마이리틀텔레비전V2’에서 아이즈원 분량은 통편집됐고, 19일 방송예정이었던 JTBC ‘아이돌룸’편도 결방됐다. 프로미스나인·워너원 등 엠넷이 키운 그룹 모두 활동에 ‘빨간불’이 켜졌다. 

‘국민프로듀서’를 표방했던 CJENM 계열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시리즈가 모두 조작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엠넷이 지난 18일 시즌 1~4의 다시 보기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연출자였던 안준영PD는 애초 경찰 조사에서 시즌3 ‘프로듀스48’과 시즌4 ‘프로듀스X101’의 조작만 시인했으나 이후 ‘프로듀스101’ 시즌 1·2의 순위조작까지 경찰 수사로 드러나며 다시 보기 서비스가 ‘조작증거’가 되면서 내린 결정이다. 

▲엠넷 '프로듀스' 시리즈 연출을 맡았던 안준영PD(가운데). 지난 14일 구속기소됐다. ⓒ연합뉴스
▲엠넷 '프로듀스' 시리즈 연출을 맡았던 안준영PD(가운데). 지난 14일 구속기소됐다. ⓒ연합뉴스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안준영PD와 김용범CP가 지난 14일 사기·업무방해·배임수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가운데 신형관 CJENM 음악콘텐츠부문장 겸 부사장도 피의자로 입건됐다. 경찰은 지난 5일 신 부사장의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다. 그는 프로듀스 시리즈를 비롯해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의 최종책임자다. 이번 사건으로 신형관 부사장을 포함해 기획사 관계자 등 10여 명이 입건됐다. 

제작진은 경찰 조사에서 1위~20위 연습생 순위를 내정해놨다고 진술했다. 방송가에서는 최종책임자였던 신 부사장이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는 의혹이 많다. 만약 신형관 부사장의 혐의까지 드러난다면 4개월 전 논란이 불거진 뒤 모르쇠로 일관하다 제작진을 수사 의뢰하며 ‘꼬리 자르기’에 나섰던 엠넷의 대응이 애초부터 위선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엠넷은 지난 5일 “수사결과에 따라 책임질 부분에 대해 반드시 책임지겠다”며 사과했다. 그리고 경찰 수사는 ‘아이돌 학교’ 등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확대되고 있다. 당장의 관심사는 향후 엠넷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계속 편성할지 여부다. 2009년 ‘슈퍼스타K’시즌1을 시작으로 지난 10년간 오디션으로 성장해온 채널이기 때문에 오디션을 포기한다면 엠넷은 대규모 변화가 불가피하다. 

▲'프로듀스101'은 엠넷 최고의 상품이었지만 지금은 엠넷 위기의 중심에 있다.
▲'프로듀스101'은 엠넷 최고의 상품이었지만 지금은 엠넷 위기의 중심에 있다.
▲엠넷의 '십대가수' 공개모집 포스터.
▲엠넷의 '십대가수' 공개모집 포스터.

지금도 엠넷은 2020년 초 방영을 목표로 오디션 프로그램 ‘십대 가수’를 편성, 오는 24일까지 지원자 접수를 받고 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18일 스포츠동아를 통해 “이 시점에 굳이 엇비슷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엠넷은 ‘십대 가수’에서 문자투표를 진행하지 않는 방안을 고려한다고 밝혔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문화일보는 SBS 예능본부장 출신으로 수개월 전 CJENM으로 자리를 옮긴 남승용 CJ 콘텐츠이노베이션 본부장을 주목하며 “엠넷이 12월 CJ 정기인사에서 대대적 물갈이에 착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CJENM 관계자는 13일자 문화일보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관여했던 기존 담당자들의 보직이 대대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엠넷에서 오디션 조작 논란에 자유로운 PD는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PD수첩’ 방송 이후 많은 언론이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아이즈’는 19일부터 ‘Mnet악행전’ 연재를 시작하며 △언프리티 랩스타 △아이돌학교 △쇼미더머니 △슈퍼스타K 등 엠넷의 과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불거진 논란을 조목조목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연예매체 기자는 “지금도 (오디션 프로그램) 연습생 취재가 쉽지 않다. 엠넷과 CJENM은 여전히 슈퍼 갑”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11월8일자 10면.
▲조선일보 11월8일자 10면.

언론은 방송사가 나서서 ‘아이돌그룹’을 상품으로 제작해왔던 구조를 비판하고 있다. CJENM은 음원과 음반의 기획·제작·유통사업까지 진출한 가운데 연예기획사를 자회사로 편입해 매니지먼트 사업까지 뛰어들었으며, Mnet 오디션 프로그램을 이용해 미래의 자산이 될 아이돌을 홍보하는 식으로 수익을 창출했다. ‘프로듀스101’ 시즌2에서 탄생한 그룹 ‘워너원’은 지난 1년 6개월간 매출액만 1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수익 대부분을 엠넷, 워너원을 담당했던 CJENM 소속 기획사, 멤버 각자의 소속 기획사 등이 나눠 가져 정작 가수 본인에게 돌아간 수익은 일부에 불과해 불공정 계약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CJENM은 ‘프로듀스’ 1~4 시리즈 출신 그룹 수익의 최소 50%를 가져갔다. 조선일보는 “방송사와 기획사가 돈 되는 아이돌을 만들어 수익을 공유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밀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엠넷과 CJENM의 변화와 함께 정부와 국회의 제도개선·입법 논의도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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