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청와대 안에 있었다면 안 했을 것 같다.” 탁현민씨가 옳았던 것 같다. 

MBC ‘2019 국민과의 대화, 국민이 묻는다’ 포맷이 또 한 번 TV에 등장할 일은 없을 것 같다. 110분간 300명의 국민 패널로부터 23개의 질문과 의견이 나왔다. 국민 패널이 질문을 던지고 대통령이 답하는, 그럴듯하게 말하면 ‘타운홀 미팅’ 형식, 솔직히 말하면 “도떼기시장”(김어준)이었다. 300명. 혼란은 예고된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대통령님!” “여기요!” “저요!”라며 손들고 소리쳤다. “잠깐만요, 조금 질서를 지켜주시기 바라고요….”(배철수) TV 속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답변만큼 중요한 게 질문이다. 그러나 많은 질문이 방송사고에 가까울 정도로 길고 두서없었다. 전국 생중계에서 명확히 질문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떨리는 일이다. 훈련되지 않은 ‘국민 패널’의 대부분이 민원 또는 하소연에 가까운 발언을 이어갔던 것도 예견된 일이었다. 각본 없는 질문 앞에서 대통령의 답은 원론적이거나, 또는 동문서답으로 이어졌다.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이 빌어먹을 쇼의 문제는 대통령의 목소리도 시민의 목소리도 제대로 전달이 안 됐다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19일 MBC ‘2019 국민과의 대화, 국민이 묻는다’의 한 장면.
▲19일 MBC ‘2019 국민과의 대화, 국민이 묻는다’의 한 장면.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tbs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대통령께 가장 죄송한 형식의 방식이었다. 죄송했다. 대통령의 강점은 진심과 진정성인데, 그걸 제대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한 뒤 “언론에서 짜고 친다는 의혹을 제기하니, 그럴 바에야 아무것도 없이 해보자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어준씨는 “대통령을 도떼기시장에 밀어 넣었다. 이런 기획을 제안한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MBC는 왜 이러한 방식을 택했을까. 

앞서 KBS는 지난 5월9일 정부 취임 2년을 맞아 이뤄진 ‘대통령에게 묻는다’ 방송에서 대담자의 질문과 태도가 논란에 휩싸이며 후폭풍을 겪었다. 대담자였던 KBS기자는 위트도, 여유도 없었고, 정색하고 던진 질문은 80분이란 시간에 걸맞지 않게 평이했다. 몇몇 질문에선 질문과 ‘거리 두기’에도 실패했다. MBC는 KBS와 전혀 다른 방식의 미디어 이벤트를 기획했다. 대담자를 1명에서 300명으로, 기자에서 국민으로 바꾸고, 음악인 배철수씨를 옆자리에 앉혔다. 

KBS보다 부드럽게, 기자 대신 국민들의 목소리를 날 것 그대로 듣는다는 취지였지만, 돌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방치한 꼴이었다. 의미 있는 국민패널의 질문도 있었지만, ‘기회비용’이 컸다. 사회자가 진행하는 중에도 질문을 하겠다는 요구가 이어졌고, 대통령의 난감한 모습은 그대로 전파를 탔다. 호평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고민정 대변인조차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두서없이 얘기하는 국민도 계신 거고, 정책을 잘못 이해한 분도 계신 거고, (질문에는) 분노와 고마움이 섞여있었다”고 총평했다. 

19일 저녁 서울역 대합실에 모인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 김용욱 기자
19일 저녁 서울역 대합실에 모인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 김용욱 기자

이날 방송에선 “대통령께서 너무 늙으신 것 같아 눈물이 난다”는 발언도 나왔다. 사전 준비된 영상에선 “대통령님 사랑해요. 아프지도 말고 건강하게 살아요”와 같은 어린아이 발언도 나왔다. 문 대통령의 입장곡은 배철수씨가 고른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당신에게 필요한 건 사랑)였다. 배씨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며 곡 선정 이유를 밝혔지만, 누군가에겐 한가한 ‘대통령 헌정방송’으로 비칠 수 있었다. MBC의 한 시사교양PD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민폐일 정도로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우호적인 방송이었다”고 혹평했다. 

‘국민과 대화’ 형식으로 대통령이 직접 TV에 등장하는 미디어이벤트는 매우 소중하다.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를 빌어 정책 문제를 정확하게 짚고 구체적인 해명이나 해법을 물어야 한다. 청와대 바깥의 차가운 현실을 대통령에게 전달해야 했다. 하지만 이날 방송은 “한가한 TV쇼”(조선일보)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고민정 대변인이 “마지막 끝날 때는 모두가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박수치는 모습을 보며 국민들의 높은 수준을 확인했다”고 했지만, ‘도떼기시장’에 대통령을 밀어 넣은, 이날 밤에 만족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