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 중인 <삼성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 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 소송에서, 삼성 측 변호사는 최근 “이 보고서의 공개 논란은 입법적으로 해결되었다”며 올해 8월에 통과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제출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고 많이 놀랐고 참담했습니다.

“국가핵심 기술에 관한 정보는 공개되어선 안된다”(9조의 2)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문장입니다. 지난 수년간 삼성 반도체 공장에 관한 <안전보건진단 보고서> <특별감독 보고서>,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 소송에서, 그리고 삼성 노동자들의 직업병 관련 소송에서, 삼성과 고용노동부가 숱하게 했던 주장입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는 산자부가 지정한 ‘국가핵심기술’이 쓰이고 있으므로 그 공장에 관한 이 보고서들은 모두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이고, 따라서 공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명백히 틀린 주장이었습니다. 종래 산업기술보호법이 ‘국가핵심기술’을 따로 지정하는 이유는 관련 기관으로 하여금 그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관리ㆍ감독하라는 취지이지, 관련 정보를 모두 비공개하라는 취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라는 건 대체 어디까지 일까요. 그 공장에 관한 모든 정보를 말할까요. 그래서 삼성 주장처럼 그 공장 작업환경의 유해성을 알 수 있는 모든 정보들도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가 되는 걸까요. 더욱이 우리 정보공개법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생명ㆍ건강 보호를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설령 그 내용이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더라도 공개되어야 한다고(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9조 1항 7호 가목). 

우리는 삼성 측의 그 주장에 논리적으로 맞섰고 법원도 우리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2017년과 2018년, 잇따라 위 보고서들에 대한 공개 판결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즉, 위와 같은 삼성의 주장은 법률적으로 틀렸다는 판결을 이미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주장이 고스란히 새로운 법률이 돼 나타난 겁니다.

이번 개정안에는 이런 규정도 있습니다. 산업기술을 포함한 정보라면 적법하게 취득했더라도 그 취득 목적 외로 사용·공개해서는 안된다(14조 8호). 그렇게 사용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도 있고(36조 4항),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22조의2). 심지어 기업은 그러한 행위가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수사기관에 조사 및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15조). 

역시 어디서 보았던 문장입니다. 법원의 정보공개 판결로 인해 어느 삼성 직업병 피해 유족이 <작업환경 보고서>를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삼성은 그 유족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 안에 이런 경고가 있었습니다. “산재 입증 외의 용도로 사용·공개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달라” [ 관련기사 : 삼성전자가 직업병 피해 유족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합니다 ] 역시나 법률적으로 틀린 경고였습니다. 정보공개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취득한 정보에는 사용 목적에 제한을 둘 수 없었습니다. 유족이 그 보고서를 어떻게 사용하건, 설령 삼성 반도체 공장의 유해성을 폭로할 목적으로 사용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경고도 고스란히 법률이 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무거운 처벌규정도 붙었습니다. 

자, 그래서 이제 어떻게 될까요.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사업장에 관한 모든 정보가 비공개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건강 보호를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라도 공개되지 않을 겁니다. 또한, ‘산업기술’을 사용하는 공장에 대해서라면 그 공장의 유해성을 규명하고 알리는 모든 활동이 수사 대상이 될 겁니다. 검·경이 출석요구를 할 수도 있고 관련 자료를 압수할 수도 있습니다.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고 민사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공장의 유해성에 관한 모든 공익적 행동에 합법적인 재갈이 물려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법이 만들어졌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국회,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 언론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 법이 최종 통과될 때까지 국회에서는 소소한 논란 조차 없었습니다. 이 법의 개정 소식을 알리는 산자부의 공식 보도자료에도 앞에서 말한 문제 조항들은 모두 빠져 있었습니다. 언론이 “국가핵심기술 관리 대폭 강화”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단 몇 개의 기사에도 관련 내용은 빠져 있었습니다.

2007년부터 시작된 삼성 반도체 직업병 투쟁의 역사는 곧 삼성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에 관한 알권리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처음부터 삼성은 모든걸 감췄고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롯이 직업병 피해가족들과 활동가들의 싸움이었습니다. 그 오랜 투쟁이 위 보고서들에 대한 정보공개 판결을 이끌어냈고 고용노동부로 하여금 ‘안전보건자료 공개 지침’이란 것을 처음 만들게 했습니다. 이제 막 그 공장을 둘러싼 시커먼 장막이 조금씩 벗겨지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국회가 그 모든 성과를 한방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참 대단들 하십니다.

이 법에 찬성한 206명의 국회의원들께 묻습니다. 이 법안은 처음 국회에 발의된 원안 그대로 통과됐습니다. 민주당, 정의당 가릴 것 없이 단 한 명의 반대표도 없었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신겁니까. 이제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는 손 놓을까요. 다른 공장에 대해서도 ‘산업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행여 ‘국가핵심기술’은 없는지, 하나하나 따져가며 문제제기 할까요. 그 공장 노동자들과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병들건 죽건, 그냥 눈 감을까요.

이제라도 솔직하게, 미안하다, 몰랐다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일본이랑 무역 분쟁이 한창일 때 우리 기업 보호하는 법이라기에 그냥 그런 줄 알았다, 누가 어떤 의도로 이 법을 기획했는지, 그 안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정말 몰랐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쩔 건지, 이 악법을 어떻게 되돌려 놓을지,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이 법은 이미 나쁜 법입니다. 그런데 기업과 공공기관이 이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하위 법령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더 나쁜 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일단 그것부터 막아야 합니다. 내년 2월부터 시행되는 법입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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