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송은 이주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하지 않고, 이주민을 한국인으로 만들어서 보여주려고 한다. 제가 알기로 한국인은 인도 카레를 안 먹었다.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냐면 오뚜기 카레가 나오자 먹기 시작했다. 한국인은 모든 걸 ‘한국 프렌들리’하게 만들더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이레샤 이주여성 단체 톡투미 대표)

▲ KBS ‘이웃집 찰스’ 지난 8월20일 방영분.
▲ KBS ‘이웃집 찰스’ 지난 8월20일 방영분.

외국인 출연 한국 방송프로그램이 지나치게 동화(同化)주의에 빠져있고, 자극적으로 다룬다는 지적이 나왔다. 동화주의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한 가지 방식 이외의 다른 방식을 무시하는 것을 뜻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이주민이 말하는 예능 속 차별과 혐오, 사소하지 않은 차별’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은 “방송에서 외국인이 한국 음식을 잘 먹는 모습에 집중한다. 잘 먹는 모습을 보면 ‘한국 사람 다 됐네’라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한다. 이런 게 바로 동화주의다. 외국인이 한국 음식을 잘 먹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를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주민들과 함께 지난 3개월간 이주민이 나오는 방송프로그램을 모니터링했다. KBS ‘이웃집 찰스’ 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EBS ‘다문화 고부열전’ EBS ‘아빠 찾아 삼만리’ 등 다문화 배경의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프로그램들을 살폈다. 

모니터링 결과 △동화주의를 강조하고 △서구·유럽보다 동남아 국가 이주민을 무시하고 △다문화라는 발언을 남용·오용하고 △이주민 며느리와 한국 시어머니 간의 갈등을 극대화하고 △동남아 국가 이주민 가정의 가난을 전시하는 등이 문제 제기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분석했다.

KBS ‘이웃집 찰스’ 프로그램은 200화에서 순댓국을 먹는 이주민 학생들의 모습을 내보냈다. 이 장면이 나오자 진행자인 최정원 아나운서는 스튜디오에 출연한 이주민들에게 “두 분도 순댓국 잘 드세요?”라고 물었고, 이주민들은 “아주 잘 먹습니다”라고 답했다. 또 다른 이주민이 순댓국에 이것저것 넣는 장면에 나오자 최정원 아나운서는 “진짜 제대로다”라고 감탄한다.

▲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이주민이 말하는 예능 속 차별과 혐오, 사소하지 않은 차별’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민언련 제공
▲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이주민이 말하는 예능 속 차별과 혐오, 사소하지 않은 차별’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민언련 제공

이날 토론자로 나선 장동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일본어 통번역지원사는 “한국에서 음식 문화가 중요한 거 안다. 하지만 음식을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 ‘한국 사람 다됐네’라는 말을 많이 듣다 보니 나는 나인데 ‘한국 사람이 돼야 하나?’라는 무언의 압력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레샤 대표도 “한국에서 20년 살고 있는데 아직도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듣고 있다”고 말했다.

정혜실 이주민방송 대표는 동화주의를 원하면 한국도 프랑스처럼 공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혜실 대표는 “프랑스는 다문화주의를 추구하긴 하지만, 이주민에게 동화주의를 선언했다. 프랑스는 프랑스 문화를 따르면 국민으로 대우해주겠다고 밝힌다. 한국도 동화주의만 선언하지 않았지 사실상 한국 문화를 강요하고 있다. 동화주의를 선언하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김언경 처장은 다문화라는 발언이 남용·오용되는 사례도 지적했다. KBS ‘이웃집 찰스’는 다문화 사람들로 구성된 ‘글로벌 프렌즈’팀이 한국의 중학생 팀과 농구 시합을 한 장면을 내보낸 후 한국 사람이 “다문화 가정 애들이랑 농구 하니까 느낌이 색다르고 좋았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이 장면은 왜 문제일까. 김언경 처장은 “다문화라는 말 자체는 좋은 말이지만 사람에게 다문화라고 말하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혜실 대표도 “다문화는 아름다운 말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오로지 이주민을 향해서 쓰고 있어서 문제”라고 했다. 실제로 다문화가족지원법은 결혼이민자와 대한민국 국적자로 이뤄진 가족만을 지원 대상으로 한정한다.

EBS ‘다문화 고부열전’ 프로그램은 이주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은 “제작진들이 포맷 자체에 묵인 것 같다. 한국 시청자를 우선으로 생각하며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지적한 뒤 “이주민 정서를 소홀하게 여기고 있다. EBS 내부에서도 그런 비판이 있다고 들었다. 인권감수성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 EBS ‘다문화 고부열전’ 지난 18일 방영분.
▲ EBS ‘다문화 고부열전’ 지난 18일 방영분.

이날 토론회장에는 장재혁 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CP와 황고은 BBS PD, 김영미 독립PD 등 현직 PD들이 참석했다. 

분쟁 지역을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김영미 PD는 “우리 사회는 차별을 공감 코드보다 차별 코드를 만들어야 하나. 남보다 내가 우월하다는 걸 강조해서 힐링하는 방식은 잘못됐다”며 “차별 코드를 만들면 만들수록 차별이 세분화되면서 사회가 양극화된다. 차별은 평화의 적이다. 공감 코드를 찾으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프로그램이 ‘서구·유럽의 부유한 남성이 주로 출연하고 여성은 꾸밈에만 집중하는 장면을 내보낸다’는 지적에 장재학 CP는 “주의하고 있는 게 굉장히 많다. 하지만 MBC every1은 상업방송사다 보니 시청자의 선택을 맞춰갈 수밖에 없다”면서도 “고착화된 프로그램 포맷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