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플랫폼의 다변화는 ‘따옴표 저널리즘’의 진화를 불렀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 언론은 쏟아지는 정보를 검증 없이 인용하거나, 특정한 정보·보도를 ‘가짜뉴스’라 칭하는 발언을 받아쓰는 행태로 혐오·갈등 조장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다. 19일 국회입법조사처가 ‘정치발전을 위한 미디어의 역할과 과제’를 주제로 주최한 토론회에서 언론 스스로 ‘책무’를 되새겨야 한다는 요구가 한목소리로 나왔다.

정일권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요즘 가짜뉴스라 비난받는 많은 콘텐츠는 뉴스가 아니라 정보일 뿐이다. 잘못된 정보, 조작된 정보, 나쁜 의도를 지닌 정보, 확인되지 않는 정보인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즉 지지 세력을 규합하거나 반대 세력 정당성을 훼손하기 위해 자신에 대한 비난과 비판 콘텐츠를 가짜뉴스라고 낙인 찍는다”며 “뉴스 품질의 문제와 함께 이러한 정치적 행동의 잘못을 지적하는 언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언론이 상대 정치 세력을 비방하는 정치인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정치인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그릇된 용어를 써서 선동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편부당성이라는 이상만을 좇아서는 매 정권교체기 ‘코드 언론’ 논란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예컨대 “조선일보와 전임 사장 체제 MBC가 보수 정치세력 편을 들고 한겨레와 현재 사장 체에 MBC가 진보 정치 세력 편을 들고 있다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모든 사안에 대립하는 세력이 있고, 불편부당하고 객관적이기 위해서는 ‘누구는 이렇게 말했고 다른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는 소위 ‘따옴표 저널리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칭찬받을 수 없다. 이런 이유에서 언론은 정파적이지만 손으로 하늘을 가리듯 정파적이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고 언론에 대한 수용자들의 신뢰는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변화가 필요한 저널리즘 원칙으로 △저널리즘 실천 행위자 범위 확대 △신속성 대신 정확성을 요구 △공정성의 실현 수단인 객관성과 불편부당성(중립성) 요구 제한 △사실의 나열에 머무르지 않는 설명 제공 △엄정한 분석을 전제로 의견을 포함하는 관점보도 허용 △공정성의 실현 수단으로 투명성과 다양성 요구 등을 제시했다. 어떤 과정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해석했는지 투명하게 밝히며, 익명 관계자 인용보다 기자 이름으로 의견을 밝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독보적 플랫폼으로서의 권능을 잃어가는 언론과 정치인이 ‘끼리끼리’ 관습을 버리지 못하면, 지금보다 더 도태될 수 있다는 현장의 위기감도 전해졌다. 권영인 SBS 기자는 “현재 언론사에서 의사 결정 위치에 있는 기자는 50대다. 40대 후반까지 포함하면 그들은 기자 생활을 90년에 시작했다. 이른바 지상파 3사와 5대 일간지가 사실상 전부이던 시절”이라며 “조국 사태 속에 부각된 언론의 문제는 비단 조국 사태에 특이하게 드러난 것이 아니다. 1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언론은 그대로였다. 소비자를 중심에 두지 않았던 기이한 플랫폼 회사인 언론사에서 자라난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IMF 때 기사도, 국정농단 기사도 그리고 조국 사태도 모두 그러한 문화 속에서 생산된 기사들”이라 짚었다. 반면 조국 사태 속에서 주목 받은 ‘대안 언론’은 소비자에게 맞춘 “콘텐츠 제작자형 언론”이었고, “막대한 팬덤을 가진 인플루언서”가 됐다는 것이다.

권 기자는 “이런 관점에서 정치인과 기성 언론은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 정치인 한명 한명이 플랫폼이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정치인은 과거의 영광이 사라졌다. 콘텐츠 제작형 언론처럼 시민들과 유권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왔다. 그러나 아직 여의도 국회를 보면 아직도 그들은 과거 플랫폼 시대에 머물러 있다”며 “과거 여론형성의 거대한 플랫폼이었던 정치인과 기성 언론은 더 이상 플랫폼이 아니라는 것을 진정하게 깨닫지 못하면 이젠 더 떨어질 곳도 없다며 딛고 있는 지금의 바닥이 결코 바닥이 아니라는 것을 곧 실감하게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김여라 국회 입법조사관은 ‘정상화’, ‘개혁’ 요구를 마주한 언론이 스스로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김 조사관은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혼란을 주고 의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디어와 유사한 플랫폼을 통해 전달되는 여러 정보들이 언론이 제작해 전달하는 뉴스와 동일시되고, 특정 매체는 특정 세대와 집단 중심으로 소구되면서 세대 간 미디어 접근과 이용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를 비판하고 감시하는 언론으로서의 본연의 목적을 경시하고 치열한 미디어 경쟁의 환경 하에 상업주의에 편승함으로써 스스로 전문가로서의 품격을 저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치적으로 종속된 채 그냥 침묵하고 수용하는 패배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돌아봐야 한다”고도 꼬집었다.

다만 법률적 규제보다는 언론이 기본적 책무를 회복하고 미디어 윤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조사관은 “책무성이란 ‘사회적 주체가 스스로의 활동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설명할 책임’으로 ‘단순히 사회적 책임의 의미를 넘어서 스스로를 평가하고 개선하며 사회 구성원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의무와 소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책무는 책임보다 더 적극적이며 무거운 요구”라며 “스스로 공적・사회적 책무를 인지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외부로부터의 정치·경제적 압력과 내부 관행 경계 △정치적 이슈 갈등 묘사와 소모적 논쟁 가열 지양 △자극적 영상 이용·편집에 대한 신중함 △사회적 의제 설정 기능 △소외계층을 포함한 전 국민 대변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여야 4당 의원들 “가짜뉴스” “공룡포털” “1인미디어” “정치의 품격”

이날 입법조사처와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4당 의원들은 현재 미디어 지형과 문제에 대해 각기 다른 인식을 드러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신경민 의원은 “비윤리적 보도의 가장 큰 문제는 눈과 귀를 막아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지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때 쏟아진 수많은 기사들과 유튜브로 유통되는 자극적인 가짜뉴스들은 앞서 언급한 미디어의 문제점들을 모두 볼 수 있는 사례였다”고 했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거대 공룡포털 폐단”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주범”이라며 “인터넷 언론환경에 있어 절대적 지위를 구가하는 포털사이트에 대한 언론사로서의 의무 부과를 포함한 전면적 개혁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금을 “미디어 과잉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미디어의 역할 부재의 시대”로 규정한 뒤 “통제받지 않는 수많은 1인 방송에 대한 근본적 해법도 찾아야 할 것”이라 밝혔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혐오의 언어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근거 없는 폭로를 일삼는 정치인들의 책임도 없는 게 아니다”라고 정치인들의 자성을 촉구한 뒤 “다만 정치의 품격을 올리기 위해선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보도 공정성 담보와 사실 타당성 확보를 위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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