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리영희상 수상자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 신문 기자가 선정됐다. 우에무라 기자는 1991년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씨의 육성녹음을 확보해 위안부 실태를 최초 보도했다. 우메무라 기자는 일본 우익의 계속되는 공격에도 최근까지 진보 주간지 ‘주간 금요일’의 발행인을 맡으며 일본의 우경화된 인식을 비판해왔다. (관련기사: 위안부 첫보도 우에무라 기자 “전문기자 왜 없나”)

리영희 재단은 상을 수여하며 “우에무라씨의 투쟁은 단순히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언론 자유를 지켜내는 노력”이라며 “일본 양심세력과 연대하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리영희상은 언론인 리영희를 기리며 해마다 상을 시상한다. 제7회 심사위원장은 신인령 이화여대 명예교수고 심사위원은 법인스님, 김민아 경향신문 선임기자, 신형철 조선대학교 교수, 김선주 리영희재단 이사,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김영환 리영희재단 감사다.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61)가 6월1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공개 강연하고 있다. 우에무라 기자는 1991년 8월11일 아사히신문 오사카 사회부에서 김학순 일본군 ‘위안부’ 증언자 기사를 처음으로 보도했다. 사흘 뒤 서울에서 김학순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열렸고, 한국 언론의 대대적 보도가 이어졌다. 사진=김예리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61)가 6월1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공개 강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들은 “우에무라 기자의 보도는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국내외 운동을 촉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며 “그 자신은 우익의 공격대상이 됐다. 일본 우익은 아사히 신문을 그만둔 그를 전임교수로 선발한 고베 쇼인여자학원대학을 협박해 그의 취업을 무산시키고, 강사로 강의하고 있던 호쿠세이 대학에까지 압력을 넣었다. 우에무라의 가족까지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우메무라 기자는 위협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본격적 싸움에 나섰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라는 책을 발간해 우익의 부당한 공격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그를 비방하는 인사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도 제기했다”며 “또 부당한 비방에 앞장서고있는 우익언론 ‘산케이 신문’과 ‘요미우리 신문’에 대한 싸움도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이러한 투쟁과 노력이 단순히 그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진실을 수호하고 그 진실 수호에 불가결한 언론의 자유를 지켜내려는 노력”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이번 시상은 일본의 어두운 과거를 직시하고, 평화헌법과 동아시아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일본의 양심세력과 연대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밝혔다.

우에무라 기자는 수상소감에서 “일본에서는 역사수정주의자들이 마음대로 날뛰고 행동하고 있으며 위안부 문제를 직시하려는 여러 가지 움직임에 공격을 하고 있다”며 “‘우에무라에 대한 공격’은 저의 문제만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2017년 ‘저널리스트를 지망하는 일한 학생포럼’을 시작했는데 전쟁을 다시 일으키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일본의 젊은 저널리스트를 키우고 싶다”라며 “리영희 상을 받게 된 것은 ‘지지 말고 힘내라’라는 큰 격려하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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