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30년간, 뜻밖의 이야기를 사랑했던 편집장 
30년간, 뜻밖의 이야기를 사랑했던 편집장 
[서평] 언론인 고경태의 신간 ‘굿바이 편집장’…한겨레21·한겨레 토요판 혁신 이끌었던 순간들 기록…“매체마다 CTO 위상 증대할 것”

“내가 언론사에서 일했던 초기 10년(1991~2000년)은 압도적인 종이의 성시였다. 중간 10년(2001~2010년)은 인터넷의 주류 진출기이자 종이의 혼란기였다. 마지막 기간(2011~2019년)은 모바일과 SNS가 지배하던 종이의 파시였다. 종이는 장례식을 준비해야 하는 위기에 놓여 있다.”

30년간 프린트 미디어와 함께해온 언론인 고경태가 자신의 편집 인생을 담은 신간을 냈다. 그는 1994년 3월 한겨레21 창간팀 막내 편집기자로 한겨레와 인연을 맺은 뒤 2005년 한겨레21 편집장을 맡으며 한겨레21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2011년 12월 한겨레 토요판 초대 편집장을 맡아 4년 4개월간 주말 지면의 진화를 주도했다. 이후 한겨레를 따라 적지 않은 일간지가 토요일자 지면을 뜯어고쳤다. 2016년 한겨레 신문부문장을 거쳐 현재 ‘22세기미디어’ 대표로 ‘코인데스크코리아’를 세웠다. 

▲'굿바이 편집장'/고경태 지음/한겨레출판/2만원.
▲'굿바이 편집장'/고경태 지음/한겨레출판/2만원.

그는 이 책에서 지난 30년의 편집 생활을 회상하며 “편집장은 남들이 따라오게 해야 한다. 여러 갈림길에서 마지막 결단을 해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편집장은 온전한 능동체를 지향하는 존재”라고 정의했으며, ‘편집장 고경태’에 대해선 “소심하여 결정 공포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적이 많았다. 독하게 하려는 시늉만 내려다 말았다”고 자평했다. 그는 “내가 신봉한 것은 재미와 새로움이었다. 편집장으로서 늘 재미를 강조했고, 무엇인가 처음 해보려고 했다. 뜻밖의 이야기를 사랑했다”고 적었다.

고경태는 언론계에선 꽤 유명한, 성공한 편집기획자다. 그가 쓴 ‘유혹하는 에디터’는 언론계 지망생이나 언론사 관계자라면 대부분 들춰봤을 ‘전공 서적’이다. 그는 1999년 한겨레21에서 김어준과 김규항을 섭외해 ‘쾌도난담’을 기획했다. 프린트미디어의 ‘엄근진’ 문화를 탈피하며 코너가 인기를 모았다. 한겨레 토요판도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그의 작품이다. 그는 “느림보”가 된다는 사내 우려를 넘어, “그놈의 스트레이트”를 주요 면에서 밀어냈다. 캐치프레이즈는 ‘스토리가 있는 주말’이었다. 사람이 1면에 섰다. ‘문유석 판사의 미스 함무라비’, ‘정희진의 어떤 메모’와 같은 인기 코너가 그의 손을 거쳤다. 

“내 기획 기법은 단 한 가지다. 일단 해본다. 전화한다. 되도록 만나서 이야기한다.” 그의 기획 기법은 단순하지만 정확하다. “여러 매체의 기획을 책임지면서 늘 던졌던 질문이 ‘한마디로 뭐냐’였다. ‘한마디’가 멋지고 새롭게 잘 빠져야 기획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는 기획 기법과 함께 편집장에게 필요한 자질로 ‘촉’을 꼽았다. “(촉의) 근원은 나의 역사이자 나의 관계다. 내 삶의 역사적 결론이며, 나의 애착과 나의 지향”이라고 했다. 

▲언론인 고경태. ⓒ이치열 기자.
▲언론인 고경태. ⓒ이치열 기자.

그가 꼽은 편집장의 가장 중대한 책무는 ‘인사’다. “인사가 만사다. 잘못하면 망한다. 인사는 망사다. 편집장이 모든 기사를 쓰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매체를 만들어 줄 사람들, 그 진용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조직의 안정성과 콘텐츠의 창의성이 판가름 된다”고 했다. 그는 “기자들은 (부서) 희망 사항을 적어낸다. 여기엔 누구와는 꼭 일하기 싫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어긋난 만남은 때로는 서로에게 재앙”이라며 미래의 편집장이 될 후배들에게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편집장의 스트레스도 이 책의 한 대목에 자리잡고 있다. 하나는 마감이다. “‘언제 다 되는데?’ A는 씩 웃기만 한다. ‘금방이면 돼요.’ ‘정확히 몇 시?’ ‘5시요.’ 5시가 지났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 왜 늦냐는 말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늘!” 매 순간 중요한 결정을 반복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여러 의견을 폭넓게 듣되, 편집장 맘대로 하면 된다. 다만 그 책임은 때로 가혹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가 바라본 언론은 여러 방향에서 위기다. 그중에는 “공포의 독자 군단”도 있다. “DJ유훈통치와 ‘놈현’ 관 장사를 넘어라”라는 제목이 불러온 2010년 6월 직설 사태의 당사자인 그는 2017년 ‘덤벼라 문빠’ 사태로 한겨레21이 3개월 만에 정기 구독자가 2000여명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해 11월에는 한겨레21 편집권 침해 논란이 벌어졌다. “간부로서 고단한 감정노동의 시간”들이었다. 

‘22세기 편집장’에 대한 그의 전망은 이러하다. “미디어가 콘텐츠를 유통하는 방식과 독자와 관계를 맺는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매체마다 CTO(최고기술경영자)가 반드시 필요해지고 그 위상이 증대할 것이다. 아니, 이런 허튼소리를 해서 무얼 하나. 22세기는 아직 80년도 넘게 남았다.”

외부 필자 원고료에 대한 작심 비판도 인상적이다. “2019년 현재 물가수준을 고려해 웬만한 종이 매체라면, 200자 원고지 기준 한 장당 최소 2만 원은 줘야 상식적이다. 원고료는 원고 마감 또는 매체 발행 즉시 입금해줘야 합리적이다. 세상의 필자들은 원고료와 관련해 더 많은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 100%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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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11-19 13:22:43
그가 꼽은 편집장의 가장 중대한 책무는 ‘인사’다. <<<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