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재벌들은 정말 변함이 없다. 특혜와 정경유착 속에서 음습하게 성장하고, 탐욕과 독식의 대명사로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불평등‧불공정의 주범인 재벌들이 또 다시 사회공공성을 파괴하면서까지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재계 순위 3위인 SK그룹의 SK텔레콤이 티브로드(케이블방송 2위, 300만 가입자)를 합병하고, 재계 순위 4위인 LG그룹의 유플러스는 CJ헬로(케이블방송 1위, 400만 가입자)를 인수하기로 한 것이다. 재계 순위 12위 KT도 딜라이브(케이블방송 3위, 200만 가입자)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통신재벌 3사 모두가 중견 케이블방송을 인수·합병함으로써 지금보다 더 심각한 양극화와 탐욕·독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래 2가지 조사 결과만 봐도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2018년 8월, 민간 싱크탱크인 <경제개혁연구소>가 1998년부터 2017년까지 20년간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경제력을 분석한 결과, 상위 500대 기업의 매출은 2017년 기준으로 GDP의 118.1%로, 2016년 113.4%보다 높아졌는데, 이는 미국 500대 기업의 매출액이 미국 GDP의 약 62.7% 수준인 것과 비교해서 무려 2배 수준에 달함을 알 수 있다.

또한, 500대 기업 중 5대 재벌 계열사 추이는 2007년 79개(15.8%)에서 2017년 93개(18.6%)로 증가했고, 이를 포함한 20대 재벌계열사는 같은 기간 146개(29.2%)에서 182개(36.4%)로 증가했으며, 500대 기업 총매출 가운데 5대 재벌 계열사의 매출액 비중은 같은 기간 33.92%에서 39.32%로 증가했으며, 나아가 20대 재벌 계열사의 그것은 51.94%에서 59.70%로 증가했다. 재벌‧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매우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또, 2019년 5월 공정위의 발표를 보면, 공시대상·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59곳(공정거래법 상의 대기업집단)의 자산 총액은 2039조7000억원이었는데, 이 중에서 5대 재벌이 54%를 차지했다. 또, 59개 대기업집단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92조5000억원을 올렸는데, 그 중 5대 재벌이 차지한 비중이 72.2%에 달했다. 매출액의 경우 1422조원 중 57.1%를 5대 재벌이 올렸다. 59개 대기업집단의 자산과 매출 중 5대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어 매년 늘어나 60%까지 향해가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전체 대기업집단의 계열회사 수도 총 2103개로 2018년 대비 20개가 늘었다. 역시 한국경제의 양극화와 불균형, 그리고 재벌대기업으로의 쏠림 현상이 나날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3,4위 재벌기업의 지역 중견방송 인수·합병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통신재벌들이 운용하는 전국 인터넷 기반 방송인 IPTV의 1인당 월 수익률(ARPU)이 더 좋기 때문에(가입자 1인당 월 평균 수익금을 보면 SKB 19,280원, LGU+ 18,953원, KT 16,440원으로, HCN 13,022원, 개별SO 10,979원보다 2배 가까이 높음) 통신재벌들은 분명히 지역 케이블방송 가입자를 자사의 IPTV로 현금마켓팅 등을 통해 빼내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인수·합병 이후 통신재벌 3사의 IPTV 점유율이 80% 수준으로, 통신재벌 중심으로 유료방송 시장이 급격히 재편되기에 남아 있는 지역 케이블방송들의 생존도 매우 위태롭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역 케이블방송은 아예 망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는데, 그동안 IPTV는 하지 못하고 있는 지역 방송의 기능과 역할을 톡톡히 해온 지역케이블 방송의 지역성, 주민친화성, 공공적 성격이 고사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또한, 지역케이블 방송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임직원들의 고용도 몹시 불안해질 것이라는 점이 불을 보듯 뻔하다.

실제로, 방통위에서 발간한 2018년도 방송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케이블방송 고용인력은 현재 4,578명에 달하는 반면, IPTV 고용인력은 726명에 불과하고, 이번에 인수·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SK브로드밴드나 LG유플러스는 간접고용·비정규직 남용으로 수차례 사회문제를 일으킨 바 있다.

그렇기에 이런 이슈일수록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공정위의 인수‧합병 절차는 끝이 났고, 방통위와 과기부의 심사 절차를 앞두고 있는 시점인데 방통위와 과기부는 비상한 자세로 매우 치밀한 심사에 나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용자 권리 보장, 방송의 지역성‧공공성 강화, 종사자들의 노동기본권을 확대라는 원칙과 기준 하에 인수·합병심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예를 들면, CJ헬로는 매일·매시간 고객과 통화하고 대면하며 CJ헬로 케이블방송과 인터넷을 설치하고 AS하는 노동자 1200여명을 34개 하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하고 있는데, 훨씬 더 규모가 크고 그만큼 사회적 책임과 국민들의 기대도 큰 LG그룹이 CJ헬로를 인수한다면, CJ헬로의 간접고용과 노동에 대한 무책임한 행태를 근절하고 직접 고용하는 모범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CJ헬로는 매년마다 업체를 교체해 노동자들은 십년을 일해도 매년 강제로 신입사원으로 내몰리고 있고,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산업안전보건법 등의 사각지대에서 위험하고 불안한 노동을 하고 있다. 어디 그뿐일까? 위탁업체가 낀 중간착취와 상시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해 지난 3년간 1,000여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불법적인 개인도급도 횡행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회사 측에 의한 온갖 실적 압박으로 이용자들의 권리까지 위협받고 있는데, 이를 그대로 방치한 채 CJ헬로를 인수한다는 것은 LG그룹이 표방하는 정도 경영과 인간존중 경영과는 정 반대의 행보라는 점을 강력하게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최근 인수추진 기업인 LG유플러스는 CJ헬로 이용자를 LG유플러스로 전환시켜 돈을 버는 것에만 혈안일 뿐, 이용자 권리, 지역채널 활성화,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어 보인다. 피인수기업 CJ헬로에 책임을 미루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회적 책임이 실로 막대한 재벌기업의 모습이 전혀 아닐 것이다. 이미 LG유플러스는 홈서비스센터 노동자들을 단계적으로 자회사로 직접 고용하기로 선언한 바 있는데, 인수하기로 한 케이블방송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래야 기존의 CJ헬로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도 지금보다 더 만족도가 커질 수 있다. 이는 SK텔레콤의 티브로드 합병 과정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어야할 절대적인 원칙과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지금 통신재벌들은 5g 서비스의 불완전 판매와 소비자 피해로도 국민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문제에 해결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문어발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경제력 집중을 야기하고 지역 케이블방송의 지역성‧공공성 및 이용자 권익을 위협하고, 관련 종사자 모두의 고용문제도 악화시킬 우려가 매우 큰 데, 정부가 인수‧합병을 아무런 조치도 없이 무기력하게 승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SK텔레콤 및 LG유플러스는 CJ헬로와 티브로드의 알뜰폰 사업도 함께 인수나 합병하기 때문에, 알뜰폰 사업에 뛰어든 많은 중소기업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기존 알뜰폰 가입자들에게도 피해를 줄 우려가 있어 더더욱 신중한 심사가 요망된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 당국이 여러 상황 상 최종적으로 인수·합병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다면, 반드시 강력한 조건과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관철시켜야 할 것이다. 자금력이 충분하고 사회적 책임이 훨씬 큰 재벌기업으로서, 종사자들의 처우개선과 고용확대, 지역 케이블방송의 확고한 유지 및 지역성·공공성 강화를 인수·합병의 승인조건으로 내걸어야 한다. 즉, 재벌기업들이 오히려 정규직화를 주도하고, 노동자들의 처우와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처우와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직원을 더 뽑고, 지역케이블 방송의 지역성·공공성을 더욱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정과 콘텐츠 투자를 확대하게 하는 것을 그 조건과 기준으로 확고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재벌·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확대라는 시대적 과제에 비추어 보면, 최소한의 원칙과 기준에 불과할 것이다. 이제는 재벌들도 기존의 재벌들이 보여주었던 ‘온갖 폐해’들과는 완벽히 결별해야할 때이다. 정부 당국도 기존의 정부들이 재벌들과 결탁했던 ‘오랜 적폐’들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할 때이다. 대다수 국민들도 이를 강력히 촉구하고 당부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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