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의 음악 전문 채널 ‘엠넷’(Mnet)에서 불거진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X 101’에 대한 조작 논란이 시간이 흐르면서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다. ‘프로듀스 X 101’의 마지막회에서 최종적으로 아이돌 그룹 ‘X1’으로 데뷔할 영광을 맛 볼 수 있는 연습생들의 명단이 확정될 때에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연속이다. 심지어는 마지막회 방송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프로듀스 X 101 갤러리’에 투표 조작을 올린 익명의 누리꾼도 이 정도로 상황이 심각할 줄은 결코 몰랐을 것이다.

11월15일 기준으로 ‘프로듀스 X 101’의 안준영 PD가 경찰에 자백하거나, 언론 보도와 경찰의 수사로 드러난 사안만 해도 충격의 연속이다. 안 PD는 자신이 총연출로 참여한 ‘프로듀스 101’의 모든 시즌에 투표 조작이 있었음을 고백했다. SBS는 안PD가 카카오 음악 부문 자회사 카카오M(구, 로엔엔터테인먼트) 산하 연예 기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여러 연예 기획사에 약 40차례에 거쳐 1억원 가량의 유흥업소 접대를 받았음을 보도했다. ‘프로듀스 101’과 같은 방송국의 ‘아이돌학교’에 참여했던 아이돌 연습생 이해인은 ‘아이돌학교’에는 예선 과정부터 최종회까지 계속 제작진의 개입과 무수한 부정행위가 있었으며, 촬영 환경이 무척이나 열악하고 휴식권, 안전권을 비롯한 기본적 노동 권리도 지켜지지 않았음을 폭로했다.

‘프로듀스 X 101’에서 시작한 논란은 ‘프로듀스 101’ 시리즈 전체를 휘감고, ‘아이돌학교’나 ‘소년24’를 비롯한 엠넷의 또 다른 아이돌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도 의혹의 시선이 돌아가고 있다. 아이돌이 출연하지는 않았지만, 2010년대 이후 한국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기준을 만든 ‘슈퍼스타 K’ 시리즈는 물론 래퍼 대상의 경연 프로그램이었던 ‘쇼미더머니’ 시리즈, ‘언프리티 랩스타’ 시리즈 등에도 의심의 눈초리가 가해지는 상황이다. 애시당초 2010년대 이후 한국 음악 예능에서 ‘서바이벌’이나 ‘경연’ 장르를 적극적으로 제작했던 방송사가 엠넷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오랜 기간 해당 장르들을 밀어왔던 공력 만큼 다시 역풍에 시달리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자사가 기획, 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문제가 속속 드러나고 있음에도 엠넷은 서바이벌 오디션과 경연 프로그램의 제작을 멈추지 않았다. 처음으로 ‘프로듀스 X 101’의 조작 의혹이 인터넷에서 제기되었던 8월부터 10월 말까지는 ‘6팀의 여성 아이돌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동시에 디지털 싱글 음원을 발매해 순위를 겨룬다’는 컨셉을 지닌 경연 프로그램인 ‘컴백전쟁 퀸덤’을 방송했다. ‘퀸덤’이 아직 끝나기도 전인 10월 초에는 ‘글로벌 K-POP아이돌 성장 일기’를 슬로건으로 내건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TO BE WORLD KLASS’를 런칭해 현재 방송 중이다. 여기에 2020년에는 10대 대상 래퍼 경연 프로그램 ‘고등래퍼’를 변형한 10대 한정 노래 공연 프로그램 ‘십대가수’와 방탄소년단(BTS)의 기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합작하는 글로벌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방송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엠넷 안준영PD가 지난 5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엠넷 안준영PD가 지난 5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왜 엠넷은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적지 않은 고초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서바이벌’이나 ‘경연’ 장르의 프로그램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1995년, 한국에서 케이블TV가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과 함께 개국한 엠넷은 철저하게 미국 MTV를 모방한 채널이었다. 세계 최초로 뮤직 비디오를 전문적으로 방송하는 채널로 1981년 선보였던 MTV는 ‘음악을 보는 것에서 듣는 것으로 바꾸었다’는 말을 낳을 정도로 충격 그 자체였다. MTV가 개국하면서 처음으로 방송한 뮤직비디오가 한국에서도 영화 ‘라디오스타’의 삽입곡으로 활용되며 널리 알려진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는 노래처럼 이제 가수 활동을 준비하는 이들은 비주얼적 요소도 함께 신경을 써야만 해다. 자신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서는 앨범뿐만 아니라 뮤직 비디오도 충실하게 제작하는 것이 필수가 되었다.

MTV의 위세는 전 세계를 집어 삼켰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5년 함께 개국한 ‘엠넷’은 물론 2004년 CJ에 인수되어 2015년 사라진 ‘KMTV’ 역시 MTV가 초창기에 걸었던 ‘뮤직 비디오’ 위주 송출과 음악 소개 프로그램의 틀을 충실하게 유지했다. 그러나 2000년대로 넘어오며 상황은 빠르게 변하게 되었다. 케이블 채널이나 CD, 비디오 테이프가 아니면 보기 어려웠던 뮤직 비디오는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집에서도 볼 수 있는 매체가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뮤직 비디오를 보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맞추거나, 음악 채널에 뮤직 비디오 신청곡을 접수해야 할 필요성도 함께 사라졌다. 게다가 한국의 경우 현재는 음원 시장이 감소한 실물 음반 매출을 메꾸는 것에 성공했지만, 2000년 초중반 당시에는 급격히 추락하는 음반 시장을 음원 시장이 메꾸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웠다. ‘음악’만을 자신들의 강점으로 내세우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세상이 도래하고 말았다.

결국 2005년 CJ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엠넷을 음악만 방송하는 채널이 아니라, 예능이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도 함께 방송하는 채널로 변신시킨 것이다. 음악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팬들의 원성이 높았지만, 한동안은 CJ의 변신은 꽤 쏠쏠한 성과를 낳았다. 지금도 간간히 회자되는 프로그램이자 케이블 채널의 B급 컨셉 차트쇼의 원조격인 프로그램 ‘재용이의 순결한 19’,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오랫동안 방송되었던 장수 패션 정보 프로그램 ‘트렌드 리포트 필’ 등의 프로그램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의 비중을 최대한 줄이고 그 빈틈을 토크쇼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채우는 노선은 엠넷이 개국하고 약 1년 뒤 1996년 MTV가 진행한 개편 방식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약 10년의 기간을 두고, MTV의 본래 노선을 충실하게 벤치마킹했던 엠넷은 다시 MTV가 변한 길을 그대로 따라간 셈이 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비교적 자본이 충실했던 MTV는 별도 채널 ‘MTV2’(구, M2)를 만들어 이전 MTV가 지녔던 음악과 뮤직 비디오 중심 노선을 이식시켰다면 엠넷은 그러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특단의 개편을 진행하고 몇몇 프로그램은 인지도 개선에 큰 효과를 보았지만 여전히 상황은 미묘했다. 젊은 세대나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아닌 이상 여전히 많은 이들은 ‘엠넷’을 잘 모르거나, 굳이 찾아서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CJ는 2009년 지금의 ‘엠넷’이 놓인 상황을 결정하는 중대한 프로그램을 하나 신설하게 되었다. 2010년대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상징이 된 오디션 서바이벌 시리즈, ‘슈퍼스타 K’의 방송이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전에도 한국 방송가에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가수 데뷔를 전제로 경쟁하는 컨셉의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09년 당시로서는 2005년 방송한 엠넷의 ‘배틀신화’ 이후로 이러한 컨셉의 프로그램은 사실상 맥이 끊긴 상황이었다. 게다가 ‘배틀신화’를 통해 데뷔한 아이돌 그룹 ‘배틀’ 역시 코카콜라를 메인 스폰서로 부르면서 까지 오디션 프로그램을 홍보한 것에 비해 대중적인 인지도는 호응은 너무나도 낮았다. 이미 실패 사례가 너무나도 많은 상황에서 아무도 쉽게 ‘슈퍼스타 K’가 잘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슈퍼스타 K’는 시즌을 거듭하며 화제 몰이에 성공하였다. 2010년에 방송한 ‘슈퍼스타 K 2’에서는 본선에 진출한 허각-존박-장재인-강승윤-김지수 등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아 화제가 되었다. 이후로도 ‘슈퍼스타 K 3’에서는 버스커버스커-울랄라세션-투개월(김예림, 도대윤), ‘슈퍼스타 K 4’에서는 딕펑스-유승우-홍대광, ‘슈퍼스타 K 6’에서는 곽진언-김필-임도혁 등이 화제가 되는 등 지속적으로 화제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동시에 엠넷은 슈퍼스타 K 시리즈의 성공을 토대로 끊임없이 새로운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골몰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방송한 ‘보이스 코리아’ 시리즈, 2012년부터 현재까지도 꾸준히 방송 중인 ‘쇼미더머니’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심지어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방송한 ‘댄싱 9’ 시리즈 같이, 음악과 큰 연관성이 없어도 다양한 분야로 폭을 넓히기 까지 했다. 엠넷이 아니더라도 tvN에서는 ‘코리아 갓 탤런트’나 ‘오페라 스타’, 온스타일에서는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나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올리브에서는 ‘마스터셰프 코리아’, ‘한식대첩’ 등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만들며 CJ ENM이 소유한 모든 채널이 서바이벌이나 경연 프로그램에 손을 대게 하였다.

▲CJ ENM. ⓒ연합뉴스
▲CJ ENM. ⓒ연합뉴스

CJ 계열이 아닌 다른 방송사들도 오디션 서바이벌의 인기에 어떤 식으로든 편승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MBC의 ‘나는 가수다’ 시리즈 ‘복면가왕’, SBS의 ‘신의 목소리’, ‘다이나믹 듀오’, KBS의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노래싸움 승부’ 등은 경연의 대상을 가수 지망생에서 기존 데뷔 가수로 바꿔 끊임없이 대결을 하는 경연 프로그램을 도입하였다. MBC의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과, KBS의 ‘TOP밴드’ 시리즈와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 SBS의 ‘K팝 스타’ 시리즈는 직접적으로 ‘슈퍼스타 K’의 영향을 드러낸 프로그램들이었다. 

동시에 방송사들은 CJ ENM 소속 채널이 그랬던 것처럼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에도 오디션 서바이벌의 포맷을 적용하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 서바이벌 프로그램 ‘서바이버’ 등에서 컨셉을 차용해 ‘인재 선발 서바이벌’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KBS의 ‘휴먼 서바이벌 도전자’를 런칭했다. MBC는 무려 우승자 특전으로 자사 신입 아나운서 선발을 내건 ‘신입사원’, 우승 선물로 집을 준다는 퀴즈 형식의 서바이벌 ‘집드림’은 컨셉 자체의 선정적 측면으로 방송 기간 내내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SBS는 다이어트 서바이벌을 표방한 ‘빅토리’, 연예인들 대상으로 피겨 스케이팅 서바이벌을 진행한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 등으로 이러한 붐에 편승했다. JTBC도 개국 초창기에 서바이벌 프로그램 ‘메이드 인 유’를 진행할 정도였다.

하지만 서바이벌 프로그램 붐조차도 수명이 길지는 않았다. 엠넷을 제외하면 다른 방송국들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엠넷의 인지도를 대폭 올린 주역이자 2010년대의 엠넷을 상징하던 간판 오디션 서바이벌 ‘슈퍼스타 K’ 시리즈도 내리막길을 걸어갔다. 우후죽순 등장하는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느꼈고, 매 시리즈마다 반복되는 소위 ‘악마의 편집’ 문제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동시에 본선 진출자 선발, 본선 단계의 심사위원 평가 등에 있어서도 점차 시간이 지나며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는 등 시청자들은 오디션 서바이벌에 대한 불신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점차 시청자들이 오디션 서바이벌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엠넷은 빠르게 오디션 프로그램을 재편했다. 최대한 폭넓은 대중의 인기를 지향하는 프로그램은 모두 없앴다. 대신 특화된 팬덤이 형성된 오디션 프로그램을 꾸준히 유지하거나 새롭게 만들었다. 한동안 고전을 면치못했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시리즈가 실력이 훌륭한 래퍼들의 출연으로 점차 화제가 되자 엠넷은 빠르게 자신들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밀어주었다. 동시에 JYP, YG 등의 연예 기획사와 협력하며 새롭게 데뷔할 아이돌의 멤버로 결정될 연습생을 뽑는 컨셉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연이어 선보였다. ‘슈퍼스타 K’ 시리즈와 비교하면 시청률이나 관심도는 낮은 편이었지만, 과거의 영광을 모두 잃어버린 채 쓸쓸히 시리즈를 마감한 ‘슈퍼스타 K 2016’ 등과 비교하면 유의미한 생존 기록이었다.

‘아이돌 데뷔 전제 오디션’ 프로그램이 트와이스, 위너, 아이콘 등 인기 아이돌을 속속 배출하며 인기를 얻자 CJ ENM은 다시 한번 오디션 프로그램에 손을 대게됐다. 기존 ‘아이돌 데뷔 오디션’ 프로그램은 기획사와 협력해 일정한 권한을 무조건 타사에 넘겨야 했던, 특정 소속사에 속한 연습생으로만 한정됐다. CJ ENM은 기존 포맷에서 자신들의 권한을 대폭 늘리고, 다른 소속사와 계약을 맺었음에도 다시 일정 기간 동안 CJ ENM과의 전속 계약을 맺어 CJ ENM의 프로젝트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컨셉을 고쳤다. 강고한 입지를 지닌 SM-JYP 등의 대형 기획사는 시큰둥했지만 아무런 기반이 없는 중소규모 기획사나 몇몇 유명한 가수나 아이돌을 보유하고 있어도 아이돌 시장이 치열한 ‘레드오션’이 된 마당에서 새로운 아이돌을 데뷔하는 것이 버거웠던 중견 기획사들도 속속 관심을 드러냈다. ‘프로듀스 101’이 2016년 처음 등장했고, 프로그램은 화제가 되었다. 여전히 ‘팬덤 중심’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었지만, 여기저기에서 ‘국민 프로듀서’라는 말이 유행이 될 정도로 엠넷은 ‘팬덤’의 크기를 한국 사회 전체로 넓히는 것에 성공했다. ‘슈퍼스타 K’ 시리즈로 불이 타오른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침체기를 견디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Mnet '프로듀스X101' 홍보이미지.
▲Mnet '프로듀스X101' 홍보이미지.

이상의 움직임은 ‘엠넷’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명가가 된 이유가 철저히 ‘시장’과 자신들의 ‘이해 관계’에 충실한 움직이었음을 드러낸다. 이미 시장과 산업으로서의 음악은 ‘아이돌 (그룹)’이 아니면 유의미한 성과를 창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음악 시장의 침체와 함께 채널 컨셉을 바꿨던 엠넷은 2009년에는 ‘슈퍼스타 K’를 비롯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시장 동력’을 발견했다. 치열한 경쟁과 ‘악마의 편집’으로 말미암은 자극적 장면들, 그리고 합격과 탈락의 갈림길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감동적 순간들은 시청자들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포맷을 만든 CJ ENM은 프로그램에 몰려드는 광고 스폰서와 ‘시청자 문자 투표’ 수익으로 상상도 못한 매출을 만들 수 있었다. 최대한 더욱 많은 이들이 ‘슈퍼스타 K’를 알게 하고, 호감을 가지도록 엄정화-황정민을 주연으로 내세운 사실상 ‘슈퍼스타 K’ 홍보 영화 ‘댄싱퀸’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상의 움직임은 동시에 매우 제한적으로 ‘음악’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전부터 엠넷은 시장에서 선호하는 음악이 아니면, 대중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면 소외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엠넷이 한동안 모델로 삼았던 미국 MTV 역시 ‘문화 제국주의’의 첨병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형식적으로라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개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는 했었다. 허나 엠넷은 그러한 노력도 무척이나 불충분했다. 가끔씩 록밴드가 중심이었던 ‘밴드의 시대’나 일렉트로니카 뮤직 DJ를 전면에 내세운 ‘헤드라이너’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기는 했지만 무척이나 단발적인데다가, 결정적으로 이들 프로그램의 장르는 모두 ‘오디션 서바이벌’이었다. ‘쇼미더머니’에 ‘고등래퍼’ 시리즈 같은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기를 끌어도 정작 상시적으로 힙합이나 흑인음악을 듣거나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엠넷에 단 하나도 없는 것처럼. 엠넷은 철저히 자신들의 이해관계나 시장의 논리에 충실한 음악의 코드를 빠르게 포섭했지만, ‘음악’ 자체를 고민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대안도 발견할 수 없다.

엠넷이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연이은 조작과 비행 문제로 질타를 받고 있으면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역시 그러한 지점과 맞닿아 있다. 여전히 엠넷에게는 ‘오디션 서바이벌’이나 경연 프로그램만이 자신들의 이익이 된다. 뮤직비디오나 일반적 음악 소개는 일찌감치 엠넷의 관심사에서 밀려난지 오래고, 2005년 이후 엠넷의 새로운 기반이 되었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도 이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오디션 서바이벌에 결부된 연예 기획사를 비롯한 시장의 이해관계에서 엠넷은 계속 우위에 있고 싶어하고, 마치 ‘프로듀스 101’에 중소규모 연예 기획사가 사활을 걸었듯 여전히 작은 기획사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소중한 동아줄이 된다. 대중들의 신뢰를 잃어도,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몸소 자신을 희생하며 인기와 애정을 바치는 팬덤이 존재한다. 팬덤들이 고정적 시청률과 인지도를 책임지는 상황에서 크고 작은 스폰서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결합한다. ‘슈퍼스타 K’ 시리즈가 ‘세븐틴’ 같은 기획사 연계 오디션 서바이벌로, 다시 ‘프로듀스 101’과 ‘쇼미더머니’ 시리즈로 이어져오며 엠넷은 철저하게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포맷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결국 관건은 ‘음악을 즐기는 방식’과 ‘폭’이다. 이미 CJ ENM이 음악 시장에서도 공고한 위치에 오른지 오랜 시간이 흐른 상황에서, 이번 조작 논란과 같은 큰 사태가 발생해도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는 이상 CJ ENM의 지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CJ ENM이 가꿔 놓은 틀 위에서 음악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음악의 폭이 매체에서 접하는 이상으로 넓고 광대하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마치 영국 학교에서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어렸을 때부터 문화의 다양한 폭을 경험하게 하는 것처럼, 프랑스가 철저하게 음악 프로그램의 장르/국적 쿼터를 마련하여 의무적으로 다양한 비율로 음악이 방송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한 것처럼 한국 역시 ‘문화 다양성’이라는 측면을 장기 계획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시장과 자본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길이 아니라, 다채로운 음색이 모여 화음을 이루는 것처럼 다양한 취향과 장르가 널리 퍼지고 존중을 받을 때- 정말 한국 음악이 한 단계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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