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AI전공 밀어주기에 언론이 가담하는 모양새입니다. 한국경제와 서울경제는 며칠간 서울대학교 공대의 변경된 입시요강을 설명하더니 이번엔 서울대 정원 규제 완화를 요구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서울대학교의 AI대학원을 자세히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만일 서울대학교가 아니었다면 지면에 대학원 정보나 변경된 입시요강이 자세히 소개될 수 있었을까요? 언론의 서울대 밀어주기가 얼마나 노골적인지 살펴봤습니다.

서울대 교수 구인광고 낸 조선일보

▲ 지난 11월12일 서울대 AI대학원 사정 자세하게 언급한 조선일보 기사
▲ 지난 11월12일 서울대 AI대학원 사정 자세하게 언급한 조선일보 기사

 

조선일보는 지면에 서울대 AI대학원의 소식을 자세히 전했습니다. <서울대 AI대학원 경쟁률 6대1 교수진은 정원 15명 중 2명 확보>(11월12일 서유근 기자)에서 조선일보는 “내년부터 문을 열고 AI(인공지능) 인재를 양성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의 첫 신입생 모집에 지원자가 대거 몰렸다”라는 말로 기사를 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신입생 모집이 “‘대박’이 난 셈”이라 전했습니다. 지원자 구성도 다양했고, 2018학년도 모집에 비해 경쟁률도 높았다는 것이 그 근거였습니다. 조선일보는 “서류전형을 거쳐 최종 입학 인원의 2배수를 뽑아 지난 8일 구술면접을 시행했고, 오는 28일 최종 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이다”라며 입시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기도 했습니다.

기사 말미에서 목적이 드러났습니다. 조선일보는 “신입생 모집엔 성공했지만, 교수 채용은 갈 길이 멀었다”라며 채용 부진의 이유를 ‘겸직 제한’과 ‘낮은 보수’로 꼽았습니다. 서울대학교 교수 채용 담당자들이 할 만할 고민을 대신 해준 조선일보는 서울대 연구 환경이 아쉬운 수준이라며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 설립준비단장의 코멘트를 인용해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정부가 관련 예산을 확충하고 유연성 있는 제도 개선을 과감히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AI대학원의 문제점을 말하면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 겁니다. 사실상 구인광고를 낸 조선일보는 정부의 관련 예산 확충을 요구하며 기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만일 조선일보가 교수 연구 환경을 문제로 지적하고 싶었다면 다른 대학교들의 실태를 함께 조사해 해당 정보를 적어줄 수 있었을 것이고, AI 교육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4차 산업혁명과 교육에 초점을 맞춰 기사를 쓸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울대학교의 대학원 한 곳만을 다룬 기사로 지면을 할애했습니다. 만일 서울대학교가 아닌 다른 대학교였다면, 교수 채용 부진이 지면에까지 등장할 수 있었을까요?

서울대 지원 이미 최고수준인데… 서울경제의 기승전 규제 탓

서울경제 역시 서울대 연구 환경을 지적했습니다. <사설-AI 산업 키우려면 연구 환경부터 확 바꿔라>(11월13일)에서 서울경제는 “더 심각한 문제는 연구시설과 데이터·수행인력 등 인프라가 터무니없이 열악하다는 데 있다”며 서울대의 어려움을 문제 삼습니다. 미국에서는 인공지능 분야 박사학위를 딴 인재가 5억원 가량의 연봉을 받지만, 한국 대학은 1억 원대에 그친다는 게 그 설명입니다. 조선일보는 두루뭉술하게 속내를 드러냈다면 서울경제는 보다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바를 사설에 담았습니다.

 

신산업 육성에 필수적인 데이터 활용도 여의치 않다. 데이터 3법이 1년 넘게 국회에서 잠자는 동안 경쟁국인 중국은 과감한 규제혁파로 4차 산업혁명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AI등을 가르치는 서울대 컴퓨터공학부는 최근 몇 년 새 수요가 급증했지만 정원은 15년째 55명에 묶여 있다. 1982년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이 막고 있어서다. (중략) 지금이라도 미래 먹거리 산업을 키우려면 인재 육성을 가로막는 낡은 제도를 싹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서울경제의 사설을 보면, ‘서울대 AI대학원이 교수를 2명밖에 확보하지 못한 것은 정부 때문이다’라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서울대 AI대학원이 흥해야 하는데, 정부가 “낡은 제도”를 고집하고 있느라 일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서울경제가 말하고자 하는 ‘과감한 규제혁파’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서울대 대학원의 교수진들까지 걱정하는 서울경제는 서울대학교의 흥망성쇠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처럼 과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올해 나온 대학알리미 공시자료의 <재정지원사업 수혜 실적>에 따르면 2018년 재정지원을 가장 많이 받은 대학은 서울대학교입니다. 서울대학교는 총 5403억685만16원을 지원받았고, 그 뒤를 잇는 대학들은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그리고 성균관대학교입니다. 수혜액도 가장 많은 서울대학교가 입학 정원까지 늘리게 된다면 서울대의 독주는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서울경제는 수도권 중심 대학을 배불리면 배불릴수록 지역 격차가 더 커질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경제 “서울대 정원부터 늘려라”

최근 정부가 AI 등의 첨단학과에 8000명을 증원하고, 10년간 8만명을 추가 양성하겠다고 발표하자, 한국경제는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를 먼저 풀어서 서울대학교의 입학 정원을 늘리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습니다. 정부가 첨단학과를 지원하겠다고 말한 방침은 수도권 쏠림 현상 완화와 지역별 불균형 해소에 방점이 있습니다. 4차 산업 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전국적으로 대학 융합학과 신설 기준을 완화해 관련 학과를 신설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사설-정부가 찰나의 박수 아닌 욕먹을 각오해야 ‘AI 인재’ 풀린다>(11월12일)에서 이 방침이 “속 빈 강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학 ‘정원 규제’에 막힌 AI인재 육성>(11월12일 정의진·김동윤 기자)에서 한국경제는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를 그대로 둔 채 지역에 분산시키는 정부의 방침이 서울대학교에는 어려움을 준다며 자세히 그 내용을 썼습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는 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과목을 가르치는 전공으로 최근 이 분야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급격히 커졌다. 하지만 정원(55명)은 15년째 그대로다. 1982년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이 대학 정원 확대를 막고 있어서다. 정원을 늘리려면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교육부는 학령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대 정원을 늘리면 지방대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허가해주지 않고 있다.

 

물론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규제하는 것이 지역 격차를 해소하는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 대학들은 이미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한번 위기를 겪은 바 있습니다. 신입생 모집도 ‘미달’이 나고 교육 인프라도 제대로 구축을 하지 못한 지역 대학교들은 부실대학교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대학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2013년, 한국대학신문은 <대학 구조조정, 지역 불균형만 초래>(2013년 5월13일 이재 기자)에서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 수가 아닌 입학정원 감축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입학 신입생이 점점 줄어드는 지방에 비해 수도권 대학은 입학 신입생을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라는 겁니다. 이렇듯 수도권 입학 정원 규제 방침은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 위기를 맞은 지역 대학들을 위한 대안으로 작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학별 지역 격차 담론이 형성됐을 때는 입학 정원 규제 방침이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다가 4차 산업 혁명 이야기가 나오니 언론이 나서서 위기감을 조성해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의 이와 같은 주장은 서울대 AI 학과에 자원 몰아주기를 하자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역 대학교들을 활성화시키는데 분산적 에너지를 쏟지 말고, 믿을 만한 서울대학교에 집중하는 것이 국익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언론의 이런 주장은 대한민국 교육의 불평등을 심화시킵니다. AI 인재 육성을 위해서는 서울대학교가 꼭 필요하다는 언론은 오늘도 기승전 서울대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11월12~13일 조선일보, 서울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에 한함)
※ 문의 공시형 활동가 (02) 392-0181 / 정리 : 주영은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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