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을 공개하는 웹사이트 ‘배드파더스’ 관련 명예훼손 재판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다. 수원지방법원 제11형사부(부장판사 이창열)는 15일 공판준비기일에서 배드파더스 자원봉사자 구본창씨와 피해를 제보한 양육자 전아무개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을 내년 1월14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검찰과 변호인 측이 신청한 증인 5명은 모두 채택됐다. 검찰은 배드파더스에 신상이 공개된 비양육자 세 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변호인단은 양육비를 주지 않은 전 배우자를 제보한 양육자와,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증인 신문은 1월14일 오후부터 진행될 예정이다. 재판부는 당일 오전 배심원 선정기일에 이어 공판기일을 열고 증거조사를 먼저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배심원들은 모든 과정을 지켜본 뒤 논의를 통해 유·무죄를 평결하고 양형의견을 밝히게 된다.

수원지방검찰청은 지난 5월 양육비 미지급자들이 고소한 구씨와 전씨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앞서 제기된 유사한 소송 10여건이 모두 불기소처분된 것과 달리 혐의점이 있다고 본 것이다. 구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공개한 본인 연락처로 제보를 받아 이를 사이트 운영진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전씨는 배드파더스에 양육비를 주지 않는 양육자를 제보한 뒤, 관련 게시물을 본인 SNS에 재공유한 혐의다. 보통 약식기소 건은 서면으로만 심리를 진행해 벌금형 이하로 이어지는데, 재판부는 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정식 재판을 열었다.

▲ 15일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운영진이 기자회견 및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양육비해결총연합회
▲ 15일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운영진이 기자회견 및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양육비해결총연합회

두 피고인의 변호를 맡은 9명의 공동변호인단은 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 공개는 ‘비방’이 아닌 ‘아동의 생존권 보장’이라는 공익 목적으로 행해졌으므로 ‘무죄’라는 취지의 변론을 펼칠 예정이다. 법무법인 숭인 측은 “배드파더스를 통해 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을 공개하는 행위는 단순히 생존권을 위협받는 한부모 가정에 필요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닌, 양육비 미지급 시태를 알림으로써 법률적 제재 조치 미비점을 드러내 근본적 제도 개선을 이끌기 위한 일종의 ‘사회운동’ 임을 강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15일을 기준으로 배드파더스에 게재된 약 400건의 양육비 미지급 문제 가운데 27.5%에 달하는 110건이 해결된 것으로 집계됐다.

변호인단 소속의 양소영 변호사(법무법인 숭인)는 “양육비 문제는 사회적·국가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이미 1800년대부터 형사범죄로 규정해 온 미국처럼 우리도 양육비 미지급은 범죄이며 아동학대와 동일시해야 한다”며 “결국 한부모 가족의 빈곤은 사회 문제와도 직결되므로 국가가 먼저 나서 양육비 대지급제 등 강력한 법 도입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이날 공판을 앞두고 수원지방법원 앞에서는 양육비해결총연합회 회원 20명이 모여 ‘자녀의 생존권 지키기’ 캠페인 및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양해연은 “한부모 가정의 약 80%가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홀로 아동을 부양하고 있다. 이혼 후 판결문에 대한 집행권이 유명무실하다보니 비양육자 양육비 미지급으로 아동 생존이 위험한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며 “이에 국회도 문제를 체감하고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 ‘아동복지법’ 등 여러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법안은 계류 중이고 각 정부부처의 협조적이지 못한 분위기로 통과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비판했다.

▲ 15일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운영진이 기자회견 및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양육비해결총연합회
▲ 15일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운영진이 기자회견 및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양육비해결총연합회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 중인 배드파더스 운영진도 지난달 21일 유튜브를 통해 “양육비 미지급으로 고통 받는 피해 아동이 100만명이 넘는다. 현재 양육비법으로는 수많은 피해자들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음에도 법이 바뀌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신상이 공개된 분들의 해코지가 두려웠고 명예훼손으로 받게 될 벌금형과 손해배상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가난한 싱글맘이어서 꽁꽁 숨을 수밖에 없었다. 아동 생존권을 지키자는 취지는 좋지만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게 옳은 일이냐는 비난에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양육비 미지급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생존권,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무책임한 부모의 명의 둘 중 어느 것을 더 보호하는 게 옳은가”라고 주장했다. 이어 “배드파더 사이트 변론을 맡은 변호사, 자원봉사자, 양해연 회원님들에게 우리는 숨어서 싸우기에 늘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하지만 양육비 법안이 통과돼 배드파더 사이트가 더 이상 운영될 필요가 없는 날까지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지난해 7월 개설된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안 주는 무책임한 아빠, 엄마’들과 ‘양육비를 주지 않는 코피노 아빠들’ 신상정보를 사진과 함께 공개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2월 양육비 미지급자들이 사이트를 차단해달라며 제기한 민원에 당사자 개인 명예도 중요하지만 이들 신상 공개로 인한 공익성이 더 크다고 판단해 사이트를 차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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