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인권 단체들의 우려 속에 ‘데이터 3법’ 핵심인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들 단체들은 이 개정안을 ‘개인정보보호 포기법’이라 칭하며 “80% 넘는 국민들이 개인정보보호법이 개정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충분한 공론화 없이 개인정보보호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법을 통과시켜서는 안된다. 국회는 행안위 전체회의, 법사위, 국회 본회의 등 입법 절차를 일단 중단하고 사회적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상의료본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민주노총,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는 이날 공동 성명을 냈다.

정보인권 단체들은 이 법을 통해 국회가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각종 민감한 의료 정보에 온갖 영리기업들이 접근하게 되고, 기업의 데이터 수집·이용·결합·기업 간 제공 및 판매 등이 지금보다 더 무분별하게 이뤄질 거라 우려했다. “이 법이 이대로 통과되어 시행되면 국민일반의 개인정보는 실체도 불분명한 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한 한낱 부속품 취급을 받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중앙행정기관으로 격상한다 해도 감독 기구로서 역할을 다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됐다. 단체들은 “개인정보 감독기구는 그 독립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국무총리의 지휘, 감독을 받도록 하였다. 정책 기조에 따라 개인정보 남용을 합리화하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된다면 없느니만 못하다”며 “무엇보다 개정안을 주도한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표방하면서도 국민의 권리보다 기업의 이익에 앞장섰으며 정작 국민의 의견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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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들은 “한번 법률이 개정되면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정작 정보주체인 국민은 80%이상이 개인정보보호법이 개정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가명정보라고 해도 기업이 동의없이 이용, 제공하는데 반대하고 있다. 국회는 공청회도 개최하지 않았고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나아가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개인정보보호법의 목적은 훼손되고 개인정보보호포기법, 개인정보활용법이라고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니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와 국회의 역할은 빅데이터산업이 야기하는 다양한 권리 침해의 가능성, 더 나아가 민주주의 위협 가능성을 대비하여 수혜자인 기업에게 더 강한 책임을 부과하고 규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 다수가 법개정이 진행되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정부는 기업들의 탐욕스런 개인정보악용의 가능성을 보장하기에만 급급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개인정보는 기업들의 이윤추구 대상으로 전락하였다”며 “개인정보보호법안이 비록 오늘 행안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였지만 앞으로 행안위 전체회의와 본회의 절차가 남아있다. 국회가 지금이라도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절차를 중단하고, 사회적 논의를 다시 시작할 것을 엄중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도 13일 성명을 통해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같은 차세대 신기술을 활용한 경제 가치 창출의 중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도 개인정보를 상업적으로 활용 가능하도록 폭넓게 허용하는 법률 개정을 하면, 이후 정보주체 권리침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다시 되돌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국회가 ‘데이터 3법’에 대해 보다 신중히 논의하여 차세대 신기술의 활용을 촉진하면서도 또한 정보주체의 개인정보 권리를 엄격히 보호할 수 있는 현명한 입법적 대안을 마련할 것을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인권위는 지난 7월에도 개인정보보호법 관련 의견표명 결정문에서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정보주체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가명 개인정보의 활용범위를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개인정보 보호위원회의 구성과 운영도 독립성과 다원성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누군가의 개인정보 일부를 ‘홍길동’ 식으로 가명처리한 ‘가명정보’를 연구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행안위 법안소위 심사 과정에서 ‘산업적 연구’라는 문구는 빠졌으나 상업·산업 용도 활용을 금지하는 조항은 없다. 국회도 이날 보도자료에서 “산업계 요구사항이던 가명정보의 산업적 목적 활용을 명시하진 않았으나 통계 작성·과학적 연구·공익적 기록보존 등을 명시하기로 함에 따라 관련 기업의 데이터산업 진출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13일 일반 국민 약 80%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내용을 모르고, 입법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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