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쁜 일상’이라는 단어를 많이 씁니다. ‘바꿀래오’ 출연자 얘길 듣다 보면 흘릴 수 없어요. 알고 보면 내 주변의 이야기니까. 택배부터 편의점 알바까지, 우리가 접하는 일상의 90%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만든 서비스죠. 이들의 얘기 속에서 우리 일상이 말도 안되는 강요와 억압으로 만들어졌단 걸 느낍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만드는 팟캐스트 ‘바꿀래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나와 삶과 애환, 부조리한 노동환경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팟캐스트다. 전문가가 현안을 설명해주고, ‘말할래오’ 코너에서 현장 노동자를 초대해 이야길 듣는다. 매달 1일과 15일 업로드해 현재 13편이 올라왔다.

바꿀래오는 무용희망연대 ‘오롯’의 공연기획자 이동민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활동가가 지난 4월 서울 등촌동 콜텍 본사 ‘NO 콜트(Cort)’ 농성장 앞 카페에서 팟캐스트를 처음 제안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명숙·이혜정 활동가, 전국영화산업노조 안병호 위원장,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최은실 노무사가 참여하며 그달 말 첫 방송에 들어갔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팟캐스트 ‘바꿀래오’ 녹음 현장. 사진=바꿀래오 페이스북 페이지
▲‘비정규직 이제그만’ 팟캐스트 ‘바꿀래오’ 녹음 현장. 사진=바꿀래오 페이스북 페이지

바꿀래오 운영진이 ‘비정규직들의 방송’을 결심한 건 답답해서다. “일단 사람들이 잘 몰라요. ‘콜텍’ ‘파인텍’ 농성 얘길 들으면 귀에 익는다곤 하지만 ‘왜 저렇게 힘들게 싸우지?’ 하죠. 비오는 논 바닥에서 오체투지도 많이 했는데, 일각에선 쇼를 한다고도 여겨요. 좀 좋게 생각하는 이들은 ‘답답한 게 있겠지’ 하고 말고요.”

기사를 찾아봐도 노동자 처지는 나오지 않았다. 언론에 노동자들의 주장은 집단 이기주의로 그려진다. “경제발전이 우리 이슈이고, 비정규직 문제는 이슈가 아닌 것처럼. 사실은 한국 전체 노동자의 반이 비정규직인데도요. 혹여 노동자의 목소리가 신문 방송에 나가도 짧게 잘려 속시원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죠.”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 초대하는 방송을 만들기로 했다.

첫 에피소드 주제는 ‘뽀너스’, 상여금이다. 누구나 관심 있고 어떻게 보면 비정규직 사안과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당시 논란이던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뒤 에피소드에선 죽음의 외주화와 불법파견, 특수고용, 장시간노동, 노조파괴 등을 주제로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을 섭외해 진행했다. 발전비정규직, 톨게이트, 쌍용양회, 집배노조, 대리운전, 보험설계사 등 노동자들이 출연했다.

팟캐스트는 말끔하게 축약된 교양·보도 방송이 놓친 뒷이야기를 고스란히 담는다. 겨울철 장기 농성을 한 노동자들은 몇년 뒤에도 공통적으로 몸이 차 여름에 두꺼운 양말을 신어야 하는 레이노이드 증후군에 시달린다. 언론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합심했다’고 보도하지만 실상은 외면받는 업장도 있다. 이동민 활동가는 “사연도 구구절절하지만, 출연자도 녹음을 마치고 ‘그 순간이라도 속시원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이야기할 곳이 없었다는 뜻”이라고 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팟캐스트 ‘바꿀래오’ 운영진인 이동민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활동가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비정규직 이제그만’ 팟캐스트 ‘바꿀래오’ 운영진인 이동민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활동가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너도나도 유튜브에 뛰어드는 요즘 팟캐스트를 택한 데엔 현실적 사정도 있다. 유튜브는 자극적 이슈나 걸출한 캐릭터, 기막힌 편집이 아니면 독자가 10분 이상 보고 있기 힘들다다. 현장 노동자 이야기를 맥락과 함께 담는 매체로 팟캐스트가 적절하기도 했다. “무용공연 기획과정과 본질은 같아요. 내 이야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할지 생각해서 소극장, 거리, 카페, 창고 등 공연장소를 택하니까요.”

이동민 활동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바꿀래오에서 말하는 구조 문제를 언론도 제기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예컨대 인천공항, 한국도로공사, 서부발전까지, 언론은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왜 자회사 전환을 거부하냐’고 다그쳐요. 그러나 직접고용과 자회사의 격차는 임금과 노동시간, 처우, 기업 책임 등 모든 면에서 크죠. 오히려 ‘왜 회사는 굳이 돈들여 자회사를 만들고, 그 산하에 노동자를 두려는 걸까?’ 물어야 한다고 봐요. 언론이 이 문제를 비출 때 정부와 대기업이 비정규직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의지도 없다는 사실을 비출 수 있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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