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숨 가쁘게 바뀌었다. 더불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빠르게 달라졌다. 그러나 이를 기록하는 공간은 찾기 어렵다. 한국의 신문박물관은 과거에 멈춰있고, 방송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은 찾을 수 없다. 군사 독재 시절 보도지침과 언론계 촌지 문화·오보의 역사 등 '언론의 그늘'을 기록해놓은 곳도 없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디지털 미디어로의 변화가 언론계에 끼친 영향을 타임라인과 함께 맥락적으로 설명해주는 공간도 없다. 초 단위의 미디어 소비 속에, 정작 미디어가 궁금한 시민은 갈 곳이 없다.

해외에는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박물관이 존재한다. 이들 박물관의 공통점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전망케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박물관이 있는 국가들은 언론 신뢰도 및 언론 자유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사회도 시민과 소통하는 미디어박물관 건립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다. 미디어오늘은 미디어박물관의 공공성·효용성, 그리고 박물관이 등장할 경우 기대되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취재하고자 해외에 있는 다양한 미디어박물관을 찾아 나섰다. 이번 기획기사는 지면에 10회 연재될 계획이다. (편집자 주)

제롬 부비에(Jérôme Bouvier)는 누구

제롬 부비에(Jérôme Bouvier, 1952)는 프랑스 언론인이다. 1977년 프리랜서로 기자 일을 시작했다. 잡지에 글을 쓰는 기자로 일하다가 1982년 프랑스 국영 채널 라디오 프랑스’(Radio France)에 입사한다. 라디오 프랑스의 문화와 음악분과 정책실장을 지냈다. 불어를 쓰는 다양한 나라에 전송되는 방송을 만들고, 옴부즈맨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2003년 라디오 프랑스를 그만뒀다.

2007저널리즘과 시민협회’(l’association Journalisme et citoyenneté)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시민의 알권리에 초점을 맞춘 저널리즘을 주장하고 있다. ‘저널리즘과 시민협회2007년부터 시작된 저널리즘 총회를 주최하고 있다. 제롬 부비에는 올랑드 정권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의 문화통신부에서 고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빠른 뉴스보다는 수준 있는 뉴스를 제공할 것. 보도마다 적절한 논평으로 그 의미를 전달하려고 할 것. 비평적 저널리즘을 구축해 낼 것. 무엇보다도 정치에 휩쓸려 기자정신을 변질시키거나 정치권력에 유착되지 않을 것.”

프랑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알베르 카뮈(Albert Camus)가 1944년 9월1일 ‘콩바’(Combat, 프랑스어로 전투라는 뜻) 신문 ‘편집자의 말’에 남긴 글이다. 알베르 카뮈는 제2차 세계대전 저항운동에 참가했고, 레지스탕스 조직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이었다.

현재 프랑스에서 알베르 카뮈의 이름을 딴 저널리즘 박물관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다. ‘알베르 카뮈 저널리즘 빌라’(Villa Albert Camus du journalisme)기획이다. 해당 아이디어를 기획한 언론인이자 ‘저널리즘과 시민협회’ 협회장 제롬 부비에(Jérôme Bouvier)를 미디어오늘이 만났다. 미디어오늘은 10월1일 파리 몽파르나스 부근의 한 카페에서 제롬 부비에를 만나 2시간 가량 인터뷰했다.

▲ 미디어오늘은 10월1일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부근의 한 카페에서 제롬 부비에(Jérôme Bouvier) ‘저널리즘과 시민협회’ 협회장을 만나 2시간 가량 인터뷰했다. 사진=정민경 기자.
▲ 미디어오늘은 10월1일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부근의 한 카페에서 제롬 부비에(Jérôme Bouvier) ‘저널리즘과 시민협회’ 협회장을 만나 2시간 가량 인터뷰했다. 사진=정민경 기자.

“프랑스에는 ‘뉴지엄’이 없다”

제롬 부비에가 작성한 7페이지의 ‘알베르 카뮈 저널리즘 빌라’ 기획서에는 왜 그가 저널리즘 박물관 형태의 장소를 만들려고 하는지 설명돼있다. 기획서에서 그는 “저널리즘, 정보를 만드는 일, 표현의 자유와 언론 자유는 프랑스에서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불어를 쓰는 다양한 나라에서도 적용되고 확대돼야 한다. 미디어는 물론이고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학교와 대학, 작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 새로운 형태의 언론 모두에 필요하다”며 “그러나 프랑스에는 ‘뉴지엄’과 같은 미디어 박물관 역할을 하는 장소가 없다”고 썼다. 뉴지엄(Newseum)은 미국 워싱턴에 있는 뉴스와 저널리즘에 관한 세계 최대 규모의 언론 박물관이다.

그는 ‘알베르 카뮈 저널리즘 빌라’가 뉴지엄과 같은 역할을 하는 동시에 △언론활동을 위한 상설공간 △언론과 관련된 학회 세미나와 전시 등이 가능한 공간 △언론인들의 정보생산과 관련해 ‘싱크탱크’가 될 수 있는 공간 △연수나 숙박도 가능한 공간 △프리랜서 언론인들도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공간 △미디어 교육을 받는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는 공간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독립성, 민주주의의 중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길 바라고 있다.

제롬 부비에는 “워싱턴의 ‘뉴지엄’에 방문했는데 전시 내용이 ‘언론의 자유’ 정신에 초점을 맞춰서 탄탄하게 구성됐다고 생각했다”며 “프랑스에는 신문사와 언론기관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뉴지엄과 같은 저널리즘에 대한 공간이 없다”고 말했다.

“고민하고 투쟁하는 기자로서의 알베르 카뮈, 기자들에게 모델 된다고 생각”

왜 프로젝트의 주인공이 ‘알베르 카뮈’냐고 물었다. 그는 “카뮈는 지적으로도 뛰어났지만 깐깐하고 고집스럽고 신념이 있었던 인물이다. 특히 민주주의에 대해 윤리의식이 있었다”며 “기자 정신 가운데 윤리 측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디어를 통해 비친 카뮈의 모습일수도 있겠지만 그는 진지했고 고민했고 투쟁하는 기자로서의 이미지가 있다. 때문에 기자들에게 모델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알베르 카뮈 외 프랑스에서 유명한 기자를 꼽자면 르포 기자 알베르 롱드르(Albert Londres)가 있다. 알베르 롱드르는 자신이 겪은 현장을 뛰어난 묘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면, 카뮈는 비판하고 성찰하는 글을 쓴다. 카뮈는 적극적으로 투쟁하고 사안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물론 저널리스트로서 두 모습 모두 굉장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알베르 카뮈.
▲알베르 카뮈의 모습.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지 1년 반 정도 됐다.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미디어와 관련된 교수나 연구인들의 지지층이 꽤 모여 있다. 다들 지지가 두터우나, 자금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 자금은 300만~400만 유로(한화 약 40억~50억원)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미디어와 관련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에서 자금을 얻게 되면 독립성 등을 해치진 않을까 질문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공공부문에 대한 신뢰를 강조했다.

부비에는 “현재 몇몇 언론이 정부의 지원금을 받고 있는데 독립성을 지키고 있다. 예를 들어 ‘위마니떼’(humanité, 프랑스의 좌파 신문)나 ‘리베라시옹’(Liberation, 장 폴 사르트르가 만든 좌파 신문)도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다. 정부 비판도 자유롭다”며 “오히려 기업 등의 자금을 받으면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에는 아직 공공 부문에 대한 신뢰가 강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위기의 저널리스트, 시민과 소통하고 ‘수익 모델’ 찾아야”

그는 프랑스 언론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그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신문의 위기’가 있고 프랑스에서도 역시 주요 언론사들, 종이신문들은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해있다”며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자가 되려고 하는 학생들은 매우 많다. 때문에 어떤 언론인이 되어야 하는지 교육의 차원에서도 저널리즘을 다루는 박물관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론의 수준이 높아지려면 세가지의 요소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인과 매체, 시민이 그 요소다. 그는 “세계대전 이후 언론사들이 부를 많이 축적했는데 당시 언론사는 90%가 광고로 먹고살았다. 현재는 그런 상황이 되지 못한다. 독자가 중요해졌다. 광고가 아니라 독자, 즉 시민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시민과 함께하려면 언론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고 전했다.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제롬 부비에. 사진=정민경 기자.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제롬 부비에. 사진=정민경 기자.

“언론인으로 일한 지 40년 가까이 됐다. 30대 때의 나는, 기자로서의 환상이 있었다. 내가 얻은 정보를 주관적으로 이용하면서 마치 ‘어미 새가 아기 새에게 모이를 주듯’ 독자에게 주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당시엔 언론 매체가 신문에 국한돼있었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누구라도, 아주 어린 아이도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전 세계로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 언론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시민과 소통을 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로 대두됐다. 이는 유튜버의 역할과는 다른 거다. 그래서 이런 면에서 시민과 소통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다.”

그는 언론이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모델이 되기 위해서도 시민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통적 방식의 언론 활동이 경제적 이득을 얻는 일에 실패했다. 사실 질 좋은 정보, 깊이 있는 정보, 통찰이 담긴 기사를 읽는 것, 좋은 글을 읽기 위해서는 비용이 드는데 지금까지는 비용을 지급하지 않았다. 때문에 시민을 설득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기자의 글은 무상으로 쓰인 글과는 차별화돼야 한다. 시민이 기자의 글을 유상으로 얻는다는 것에 이해할 수 있고 동의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론의 수익 모델을 찾아내는 일이 굉장히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 현지 통역: 당현선 (Léa Dang)
※ 본 기사는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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