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다문화 사회를 다루면서 ‘서열에 따른 인종주의’를 실행하고 차별구조를 재생산하는 등 이주민을 향한 차별과 혐오를 확대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언론이 ‘불법 체류자’라는 단어를 쓰거나 이주민에 대한 잘못된 발언 등을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내는 것이 지적사항으로 꼽혔다. 언론이 현실을 핑계로 차별과 혐오를 방치할 것이 아니라 변화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사에서 열린 ‘다문화 인권 향상을 위해 미디어는 어떻게 변화해야하나’ 토론회(한국건강가정진흥원 주최, 민주언론시민연합 주관)에서 채영길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한국적’, ‘우리 사람’ 등을 강조하면서 이주민을 그 안에 가두려고 하는 억압을 자주 보인다”며 “특히 ‘서구-동북아-동남아’ 순으로 인종의 서열을 매기고, 차별적 언행을 하는 경우가 보였다”고 지적했다.

채 교수는 “유럽이나 북미에서 온 외국인들에게는 ‘한국’ 것으로 인식되는 문화를 인정받고 싶어 하고 백인의 서열 속으로 들어가려는 모습이 보였다”며 “반면 비서구 아시아 남성이나 여성에게는 ‘다문화’로 통칭하면서 낙인을 찍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주 여성에게는 일반적 이주민과는 상이한 방식으로 차별과 배제가 이뤄지고 있으며 예능 등에 출연하는 이주여성에 대해 유희적 성적 대상화를 하고 가부장적 성역할을 강요하며 외모지상주의의 잣대로 평가한다”고 지적했다.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사에서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이 주최하고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관한 '다문화 인권 향상을 위해 미디어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나'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사에서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이 주최하고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관한 '다문화 인권 향상을 위해 미디어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나'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이 토론회에서 5월1일부터 9월30일까지 5개 종합일간지(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와 8개 방송사 저녁종합뉴스(KBS, MBC, SBS, JTBC, TV조선, 채널A, MBN, YTN)와 4개 종합편성채널의 13개 시사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 결과를 발표했다.

김 사무처장은 이들 미디어를 △모든 사람의 인권을 존중했는지 △특정 국가나 민족, 인종을 차별하거나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했는지(‘불법 체류자’ 용어 사용 유무) △이주민에 대한 부정확한 추측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조장했는지 △한국 문화와 가치를 강요하고 있는지 △이주민을 구경거리로 만들거나 동정 받아야할 대상으로 묘사하는지의 기준으로 모니터링했다고 밝혔다.

민언련의 모니터링 결과, 5가지 기준 가운데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비하 표현을 사용하는 횟수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특히 불법체류자·불체자·불법체류이주민이라는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했고 ‘블랙 아프리카’, ‘파란눈 도우미’, ‘파란눈 리틀 이미자’ 등 불필요하게 인종을 나누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불법 체류자’라는 표현은 국가인권위와 국제기구 등에서 해당 단어를 지양할 것을 촉구했는데도 언론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이런 표현은 해당 이민자를 제도적 보호에서 제외하여 인권침해에 취약한 집단으로 만들고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국제기구들은 이런 이유로 ‘미등록’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라고 권고해왔다. (관련기사: 불법체류자는 세계언론이 퇴출한 용어)

또한 김 사무처장은 “이주민을 비하하거나 차별하려는 의도의 단어는 아니지만 ‘다문화’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많이 붙이거나, 서구 유럽 출신의 국제 결혼을 향해서는 ‘글로벌’이라고 수식하고 아시아계 국제결혼에는 ‘다문화’라고 붙이는 양상은 차별적”이라고 지적했다.

▲2013년 AP통신의 공지사항.  AP는 “‘불법’이라는 묘사를 사람에게 하지 말고, 행동에만 하라”는 규칙을 추가했다.
▲2013년 AP통신의 공지사항. AP는 “‘불법’이라는 묘사를 사람에게 하지 말고, 행동에만 하라”는 규칙을 추가했다.

이희용 연합뉴스 고문은 미디어 속 이주민 차별과 혐오 표현 실태를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동시에 언론의 ‘현실’을 전했다. 이희용 고문은 발제자가 ‘경찰관을 흉기로 찌른 30대 남성’이 중국 국적 동포라는 것을 적시한 점을 지적한 일에 대해 “언론에서는 수습기자 시절부터 나이, 성별, 예전에는 주소까지 확인을 해 표기하도록 훈련을 시켰다”라며 “가공의 인물을 대거나 적당히 취재하려는 것을 경계하려는 의미로 관행이 생긴 것도 있고, 독자들이 팩트 하나하나를 궁금해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고문은 “특히 지난해 10월 고양 저유소에서 화재가 났을 때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가 날린 풍등이 불씨가 됐다는 보도 때문에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들이 전전긍긍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며 “그러나 언론계에서는 범죄 용의자가 이주노동자였다는 사실이 중요한 정보이고 독자가 국적을 궁금해 하는 게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어떤 때는 국적을 밝히고, 어떤 때는 국적을 안 빍히는 게 좋을지 기계적으로 정할 수 없지만 국적을 밝힐 경우 출신의 이주민이 두려움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면 밝히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언론사 내부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언론이 ‘불법 체류자’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는 지적에 이 고문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불법체류’란 용어의 사용을 지양하자고 촉구했다지만 주무부처인 법무부가 여전히 불법 체류라는 용어를 쓰고 있기에 공식용어로 쓰이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정혜실 이주민 방송국 MWTV 대표는 “언론이 정부가 쓰는 용어를 그대로 쓸 필요가 없다”라며 “언론은 정부부처가 쓰는 용어가 잘못됐다면 이것을 지적하고 바꾸려고 해야지, 그것을 두고 ‘정부가 쓰니 어쩔 수 없다’고 핑계를 대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정혜실 대표는 “특히 ‘불법 체류자’와 같은 용어는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 사용하지 않을 언어로 정했는데도 정부가 쓰고 있다면, 언론은 이를 지적하는 데 앞장 서야 한다”며 “언론이 정부부처 등의 핑계를 대기보다는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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