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이다. 합정역 근처에서 볼일을 마치고 겸사겸사 평소 가보고 싶었던 식당을 향해 걸어가던 중, 60대쯤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나를 붙잡았다. 손에는 전단지와 미용티슈가 담긴 쇼핑백을 들고, 오피스텔 분양 상담을 받아보라고, 5분이면 된다며 계속 말을 걸어왔다. 약속이 있어서 죄송하다 말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자 “약속이 몇 시야? 할머니 좀 도와줘” 하며 갑자기 팔을 붙잡는데, 순간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당황해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는데 그로부터 100미터도 채 안 되어 같은 쇼핑백을 들고 있는 다른 할머니를 마주쳤다.

그때 만난 할머니는 근로자였을까? 근로자라면 근무한 시간만큼 임금을 지급받게 된다. 안정적이고 고정적으로 말이다. 그 달의 급여를 예상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하는 것은 삶의 모습에서 얼마나 다를까. 근로시간이 아닌 영업 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지급받는, 불안정한 소득에 생계를 의존하는 경우라면 더욱 문제가 된다. ‘2018 서울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이상 서울시민이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계비 마련(74.1%)이라 한다. 할머니가 그토록 무리하게 영업을 했던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근로자성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형식보다 실질을 고려한다. 노무제공자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다면 근로자로 본다. 여기서 종속적인 관계는 ①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②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사용자가 지정하는 지 ③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등 경제적·사회적 여러 조건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부동산 홍보 대행사가 지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대행사가 전해준 판촉물을 가지고, 분양 상담을 받은 사람 수에 따라 대행사로부터 보수를 지급받는 다면 근로자로 봐야하지않을까. 신용카드 카드론 전화상담원(대법 2016다29890), 웨딩플래너(서울행법 2017구합56223) 등 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지급받더라도 근로자성이 인정된 경우도 있지만, 학습지교사(대법 2014두12598, 2014두12604)처럼 아직도 우리는 ‘근로자성’이라는 첫 문턱을 넘지 못해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 지난 7월20일 마석 모란공원의 고(故) 노회찬 국회의원 묘비 앞에 고인이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당시 언급했던 ‘6411번 버스’의 모형이 고인의 사진과 놓여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7월20일 마석 모란공원의 고(故) 노회찬 국회의원 묘비 앞에 고인이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당시 언급했던 ‘6411번 버스’의 모형이 고인의 사진과 놓여 있다. ⓒ 연합뉴스

 

▲ 이지영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무사
▲ 이지영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무사

고(故) 노회찬 의원이 6411 버스를 타고 새벽에 강남 빌딩을 향해 출근하는 청소노동자에 대해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투명인간’이라 표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길을 가로막고 말을 걸며 우리의 소맷귀를 당기는 이들도 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NGO 단체의 후원모집인, 전단지 배포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무리한 영업에 자칫 불쾌할 수 있는 경험을 당사자의 탓으로 돌리는 대신 그가 처한 노동현실과 구조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투명인간처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노동자와 거리를 배회하는 노동자를 둘러싸고 있는 노동 현실과 이를 만든 사회 구조는 너무나 쉽게 가려진다. 이를 들춰내고 계속 들여다봐야만 노동법 사각지대를 조금씩 좁혀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를 다시 꺼내보았다. 50원짜리 갈비탕에 기름덩어리만 나왔다 분개하고,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사에게 반항하는 옹졸한 자신이 부끄러워 고개 숙여 고궁을 나서던 시인의 목소리가 지금도 크게 울리고 있다. 우리가 얼굴 붉히며 화내야 하는 것은 바로 눈앞에 근로자가 아니라, 우리의 노동현실을 만들어내는 구조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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