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지난 2015~2017년 신사업을 추진하며 자회사 소속 직원을 조직적으로 전출 받아 사용한 데에 법원이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38부(부장판사 박영재)는 12일 SKT 자회사 SK플래닛 직원 김아무개씨 등 2명이 SKT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피고는 원고들에게 고용의 의사표시를 하라”고 선고했다. 1심은 지난해 11월 김씨 등에 대해 정당한 전출이라며 원고 패소판결한 바 있다.

김씨 등은 2017년 SKT와 사실상 근로계약관계에 있다며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SKT가 2015~2017년 O2O 플랫폼사업인 ‘티밸리’를 추진하며 고용부담과 비용을 피해가기 위해 자회사 전출 형식을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SKT 사업인 티밸리 사업 업무를 수행했고, SKT가 이 과정을 지휘·감독하고 근무시간과 장소를 구속하며, 근태관리와 인사평가·이동 결정했으며 임금도 사실상 SKT가 지급했다고 했다. 이같은 전출이 근로자 동의나 협의 절차 없이 이뤄졌다고도 했다.

SKT는 “자회사인 SK플래닛은 독자적 사업 실체가 있는 데다 전출로 영리를 취하지 않았기에 파견을 업으로 한다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기사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
▲기사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는 티밸리 사업을 SK플래닛과 SKT의 공동사업으로 보고 정상 전출이라고 판단했다. 1심은 “SKT가 김씨 등을 근로자로 사용하기 위해 SK플래닛과 SK테크엑스 법인격을 이용했다거나, SK플래닛과 SK테크엑스가 사업주로 독자성이 없거나 독립성을 결해 제3자의 노무대행기관과 동일시할 수 있는 등 그 존재가 형식·명목에 지나지 않는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2심은 이같은 전출이 근로자를 공급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한 행위로, 파견법 위반이라는 김씨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우선 “티밸리 사업은 기본적으로 SKT가 주도한 SKT의 사업”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SK플래닛 등이 김씨 등을 비롯한 근로자를 전출시키는 외에 티밸리 사업 운영에 구체적으로 관여했다거나, SKT와 에스케이플래닛 등이 수익원의 분배에 어떠한 약정을 체결하였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봤다.

또 2심 재판부는 SKT가 이들 전출 인력의 채용과정을 총괄 진행하고, SK플래닛은 김씨를 비롯한 정규직은 물론 계약직·파견근로자까지 상당한 규모로 전출시킨 점을 지적하며 “인력 교류, 경력 개발 등을 목적으로 하는 계열회사 간의 통상적인 전출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SK플래닛 등은 2015년 1월께부터 2017년 6월께까지 매달 8~121명을 SKT 티밸리 조직으로 전출했다.

재판부는 “결국 SK플래닛 등이 김씨 등을 전출시킨 것은 실질적으로 근로자파견에 해당하고, (파견사업 허가가 없는) SK플래닛 등은 근로자파견을 업으로 했다고 인정되므로, 그에 대해 파견법이 적용된다”며 SKT가 김씨 등에 고용의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원고를 대리한 이어령 변호사(법무법인 태인)는 미디어오늘에 “대기업들은 계열사를 이용한 위장전출로 파견법과 고용책임을 우회해왔다. 이번 판결은 적법한 전출과 탈법적 파견 사이 기준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SKT 측은 미디어오늘에 “계열사 간 협업을 위한 전출 정당성이 2심에선 인정받지 못해 유감”이라며 상고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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