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를 보지 말고 가해자에 주목해주세요. 재판부도 그렇고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민들도요. ‘성적 수치심을 느끼면 레깅스를 입지 말았어야 한다’며 피해자를 비난하는 댓글이 많은 걸 보고 놀랐죠.” 

‘레깅스 불법촬영 무죄’ 판결한 재판부 생각이 궁금해 판결문을 분석 보도한 유설희 경향신문 사회부 법조팀 기자가 말했다.

▲ 11일자 경향신문 6면 기사.
▲ 11일자 경향신문 6면 기사.

버스에서 레깅스 바지를 입은 피해자의 하반신을 8초간 동영상으로 불법촬영한 사건 관련 2심 판결이 논란이다. 의정부지법 형사1부(오원찬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유설희 기자는 지난 11일 이번 판결을 두고 “‘성적 수치심 어디까지…’ 레깅스 촬영 판결이 던진 또 하나의 사회적 논쟁” “‘재판부가 성범죄 ‘2차 가해’한 셈’ ‘사진 내용이 쟁점…남기는 게 옳아’” 등 판결문 분석 기사를 작성해 보도했다.

유설희 기자는 올해 초부터 법원을 출입했다. 유 기자는 최근 판사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주목해서 봐야 하는 중요한 재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유 기자는 “안희정 전 지사 대법원 판결, 고은 시인 손배소 항소심 패소 판결 등이다. 최근 10세 아동을 성폭행한 남성이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3년으로 감형받아 논란이 됐던 판결도 있다”고 말했다.

유 기자는 재판부의 ‘성인지 감수성’에 따라 판결이 뒤바뀌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판사들은 사회 통념상 일반인의 정서를 기준으로 판결을 내려야 한다. 판사가 판결의 근거로 제시한 법리가 실제로 일반인의 정서와 부합하는지 언론이 보도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 판단은 시민들이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레깅스 불법촬영 사건 관련 2심 재판부가 가해자의 행위를 무죄로 본 이유는 △신체 노출이 적기 때문에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았고 △엉덩이 등 성적 부위를 확대하거나 부각한 촬영이 없었고 △특별한 각도가 아닌 사람 시야에 통상적으로 비치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했고 △불쾌감을 넘어 성적 수치심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유설희 기자는 지난 1년 기준으로 ‘레깅스’ ‘바지’ ‘스키니진’ 등 키워드로 여성을 불법촬영한 사건 판결을 찾아봤다. 유 기자는 “최근 판결을 보면 신체 노출 여부와 무관하게 불법촬영이 이뤄지고 있다. 노출이 심한 여성을 찍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며 “바지 등 일상복을 찍은 불법촬영 사건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많은 법원이 이를 유죄로 판단했다. 이제는 ‘노출 정도’를 기준으로 단순하게 유무죄를 판단하는 걸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2심 재판부 판단과 달리 레깅스 입은 여성들이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는 현실은 뚜렷하게 나타난다고도 했다. 최근 신종 유흥업소로 일명 ‘레깅스바’ ‘레깅스룸’ 등이 유행한다. 레깅스 입은 여성들이 접객원으로 나오는 곳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2심 재판부와 정반대로 판단해 유죄를 결정했다. 1심 재판부는 △레깅스 입어 맨살 노출 없어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충분히 해당하고 △피해자의 엉덩이 부위 및 다리 부위를 촬영했고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고 현장에서 피고인에게 항의해 피고인을 검거했다고 판단했다.

유설희 기자가 항소심 판결에서 가장 문제라고 판단한 부분은 ‘피해자 기준’으로 가해자의 유무죄를 판단했다는 점이다. 그는 “불법 촬영물 속 여성의 신체 부위가 어디인지, 신체 부위가 얼마나 확대·부각 됐는지, 신체가 얼마나 노출됐는지 등을 따졌다”고 지적한 뒤 “이제는 가해자의 행위를 더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가해자는 왜 불법 촬영물을 찍은 건지, 사진·동영상은 몇장·몇초를 찍었는지, 피해자는 몇 명인지, 유포 여부 등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가해자’에 더 집중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번 레깅스 사건에서도 제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동영상 8초였다. 실수로 한 장을 찍은 거면 무죄를 주장할 수 있지만, 8초나 찍었다. 충분히 고의성이 있어 보인다. 사진 프레임 밖에 있는 가해자에 더 주목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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