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는 정보를 활용해 실손보험 가입이나 지불을 거절할 근거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병원에서 숨기고 싶어하는 성병, 자살 시도 여부, 상해, 폭력, 유전병 등 기록이 공개될 수 있다. 공단과 심평원 자료에는 언제 이혼했는지 출산·유산했는지도 다 공개된다. 이 모든 게 가명정보라는 미명 하에 공개될 수 있는 데이터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의료·인권·노동단체들이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데이터 3법’에 대한 국회 입법 논의 중단을 촉구했다. 문재인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과제로 내걸고 추진 중인 ‘데이터 3법’은 개인정보호보법·신용정보호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일컫는다. 이 법안들을 소관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오는 14일부터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관련 법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19일 본회의에서 법안을 통과시킬 가능성도 점쳐진다.

데이터 3법의 핵심은 누군가의 개인정보를 ‘홍길동’ 식으로 가명처리한 ‘가명정보’ 활용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개인정보 개념을 개인정보·가명정보·익명정보로 분류하고, 통계작성(시장조사 등 상업적 목적 포함)·연구(산업적 연구 포함)·공익적 기록보존 등을 위해 당사자 동의 없이 가명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분산된 개인정보 보호 기관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통합하고, 정보주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끔 가명정보를 결합하는 경우에 대한 처벌조항도 개정안에 담겼다.

▲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의료, 인권, 노동단체들이 모여 국회의 '데이터 3법' 입법 논의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의료, 인권, 노동단체들이 모여 국회의 '데이터 3법' 입법 논의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데이터 3법 통과가 숙원인 산업계와 달리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법 통과가 정보인권 측면에서 ‘재앙’에 가깝다고 우려한다. 참여연대 정보인권사업단장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개인정보를 ‘빅데이터’, ‘산업육성’, ‘경제성장’ 이름으로 상품화하고 가공해 판매하도록 하는 건 우리 국민의 생활을 모든 사람에게 노출 시키고 나아가 이윤 수탈 대상으로 삼겠다는 말”이라며 “가장 대표적 사례가 개인정보를 연구를 위해서 수집해서 처리하도록 가명정보를 처리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명색은 ‘과학적 연구’라고 하지만 산업적 또는 이윤 추구를 위한 연구를 허용하는 게 현재 검토 중인 법안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유럽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들어 법안 처리를 주장하는 것은 ‘거짓뉴스’라고 비판했다. “GDPR은 산업적 연구는 배제하고 순수하게 과학적·공익적 목적에 개인정보를 활용하도록 한다. 사익 추구가 아니라 전인류의 복지 증진을 위해서만 개인정보를, 그것도 가공처리해서 활용하도록 허용하는 게 유럽 기준이고 세계적 방향성”이라는 것이다.

서채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간사는 “데이터 3법은 가명정보 활용을 정보주체 동의 없이 상업적으로 활용한다는 데 큰 방점이 있다. 신용정보법은 SNS 정보 무제한 수집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이외 법안들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봤을 때 이 법을 충분히 논의하고 국민에게 폐해를 알려야 한다”며 “정부는 해커톤이라는 데이터활용 찬성 전문가 일색의 기울어진 논의의 장에서 가명정보 활용에 합의가 된 것처럼 꾸미고 있다. 제3자 제공, 세계 유례 없는 데이터 결합을 허용하겠다고 한다. 반면 유럽표준 정보주체 권리는 데이터3법 어디에도 포함돼 있지 않다. 이런 법이 아무 논의 없이 졸속적으로 통과된다면 국민 개인정보자기결정권 프라이버시권까지 침해될 수 있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직 의사인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정부가 5월 발표한 바이오헬스산업혁신전략을 보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모든 자료를 바이오 빅데이터로 가공해 공개한다고 돼 있다. 개인의료정보를 가명정보로 처리한 데이터는 한 사람의 모든 것을 담은 데이터”라며 “보험사는 정보를 활용해 실손보험 가입이나 지불을 거절할 근거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병원에서 숨기고 싶어하는 성병, 자살 시도 여부, 상해, 폭력, 유전병 등 기록이 공개될 수 있다. 공단과 심평원 자료에는 언제 이혼했는지 출산·유산했는지도 다 공개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공단과 심평원에 가장 많이 요구되는 자료가 장관 후보자 청문회 때 그 가족에 대한 자료다. 국회의원에 대한 자료도 많이 올라온다. 그런 것들을 지금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거절하지만 앞으로는 가명정보라는 미명하에 풀려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의료, 인권, 노동단체들이 모여 국회의 '데이터 3법' 입법 논의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의료, 인권, 노동단체들이 모여 국회의 '데이터 3법' 입법 논의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서울아산병원 등이 카카오와 함께 전자의무기록과 임상시험 정보, 예약기록 등을 활용해 추진하고 있는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 사업, 분당서울대병원이 네이버 및 대웅제약 등과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하기로 한 업무협약 체결 등 사업에 빗장이 풀릴 거란 우려도 제기됐다.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개인 정보와 인권은 연결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혁신경제를 이야기하는데 개인정보를 기업에 제한 없이 또는 활용해서 자신들 이윤 늘리게 만들어주는 게 혁신경제는 아닐 거다. 민감한 개인정보를 활용하게 해줌으로써 각종 기업이 의료민영화 등 길을 터줘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을 주재한 박원석 정의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번 행안위 법안소위에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목적인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표현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산업적·상업적 목적을 명시하자는 의견이 여야를 막론하고 터져나왔다”고 지적한 뒤 “대한민국은 개인정보식별 키(key)가 되는 주민등록번호제도를 시행 중이고 이미 주민번호가 대량 유출된 적도 있어 가명정보 재식별 위험성이 크다. 중다하고 진지하게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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