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 기사 제목에 남성보다 여성을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7일 기사제목 성별·이름표기 모니터링 결과를 통해 일부 언론의 상업주의로 사건 관련자들의 이름·성별 등 불필요한 정보가 제공되고 있다며, 각 언론사별 가이드라인을 넘어 사회적 합의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1월1일~6월30일 ‘네이버’ 사회분야 많이 본 뉴스 중에서 제목에 성별이나 이름이 표기된 기사는 총 1501건이다. 제목에 성별이 표기된 경우는 33.6%(505건), 이름표기는 66.4%(996건)로 집계됐다. ‘고유정 사건’, ‘버닝썬 사건’, ‘김학의 사건’ 등 피의자(가해자) 이름이 드러나는 사회적 이슈가 많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사건·사고 기사제목에 가장 많이 등장한 이름은 ‘고유정’(196건)이다. 다음은 승리(141건), 정준영(109건), 김학의(74건) 순으로 나타났는데, 교통사고로 사망한 여성 연예인 한아무개씨 이름을 단 제목도 50건으로 뒤를 이었다. 민우회는 “고유정 사건은 여성 살인 피의자라는 점에서 언론과 대중의 집중적 관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승리, 정준영 관련 사건에 비해 고유정 사건이 포털 랭킹뉴스에 더욱 많이 노출됐다는 점은 주목해봐야 하는 지점”이라며 “교통사고로 사망한 한씨 사건의 경우 여성 배우 사망 사건이라는 점 때문에 이름을 공개할 만큼의 사안이 아니었음에도 과도하게 기사화되고 소비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한지성 교통사고, 사망 확인 전부터 실명 어뷰징]

▲ 한국여성민우회가 7일 공개한 성별표기 기사제목 분석 결과.
▲ 한국여성민우회가 7일 공개한 사건·사고 기사제목 모니터링 결과 중 성별 표기 비율.

성폭력 기사의 39.8%는 여성 피해자가 제목에 부각됐다. 피해자가 남성이라고 명시한 경우(6.5%)의 약 6배다. 피의자(가해자)를 쓴 제목의 경우 남성 표기가 6.3%로 여성 표기(4.0%)보다 2.3%p 많았다. 사건·사고 기사는 대부분 단신(스트레이트) 기사로 범죄행위의 기본적 사실관계를 다룬다. 민우회는 “피해자 견해나 정신적 피해 등은 모두 배제된 채 단지 경찰조서에만 의존해서 쓰는 보도는 가해자 입장에서 서술한 범죄 사실을 그대로 나열하게 된다. 이런 취재 관습이 기사제목에도 반영돼 피해자가 강조되는 방식의 기사제목이 작성되는 것”이라 봤다.

실제로 여성 피해자의 상태를 드러내거나 가해자 말을 인용하는 제목들이 두드러졌다.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선정적인 제목을 뽑고 불필요하게 자극적·충격적 내용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민우회는 “여성 피해자를 부각하는 기사제목은 여성 인권에 대한 무관심과 함께 가부장주의적이고 선정적인 여성묘사를 반복하는 견고한 프레임을 형성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아래는 많이 본 뉴스 30위권 안에 포함된 기사제목들이다.

“죽어서라도 복수”…친구 아내 성폭행 30대 결국 ‘징역형’ (뉴스1, 1월7일)
“죽었으면 버려” 여고생 집단 성폭행 후 의문의 문자?…끝내 숨져 (국민일보, 2월20일)
프로포폴 꽂힌 채 숨진 20대 여성 발견…동거인 의사 구속영장 (서울신문, 4월19일)
“유산돼라, 이혼하게ㅋㅋ” 죽어서도 이혼 못 안 언니(인터뷰) (국민일보, 5월23일)

제목에 피해자와 피의자(가해자)를 모두 언급하면서 성별은 여성만 쓴 경우도 다수다. △“벗고 있어 가려준 것” 女직원 ‘신체 접촉’ 영상에 외교관 해명(국민일보, 1월12일) △찜질방 女손님들 음료에 최면진정제 탄 60대 징역 3년(뉴스1, 1월20일) △만취 승객, 여성 택시기사 무차별 폭행 후 도주(연합뉴스, 2월10일) △“성추행 문제로 말타툼”…중학생 의붓딸 살해한 30대 긴급체포(KBS, 4월29일) △숨진 채 발견된 예비 신부…용의자는 ‘약혼자 후배’(SBS, 5월28일) 등이다. 민우회는 “이는 여성을 ‘예외’, 남성을 ‘보편’으로 간주하는 언론의 성차별적 관행과 더불어 ‘피해자로서의 여성’을 소비하는 문화, 가해자 대다수가 남성임을 가리는 효과로도 이어진다”고 밝혔다.

▲ 한국여성민우회가 7일 공개한 사건·사고 기사제목 분석 결과.
▲ 한국여성민우회가 7일 공개한 사건·사고 기사제목 모니터링 결과 중 매체별 분류 결과.

다만 ‘미투’(#MeToo) 사건은 가해자 이름을 제목에 쓰는 경우가 더 많았다. 모니터링 기간 조재범 사건은 21건, 안희정 사건은 17건의 기사제목에 가해자 이름이 등장했다. 피해자와 가해자 이름을 모두 표기한 경우는 조재범 사건 4건, 안희정 사건 3건이다. 피해자 이름을 쓴 경우는 안희정 사건이 1건인 데 반해 조재범 사건은 8건이었다.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 이름으로 불렀던 과거 관행이 ‘반(反)성폭력 운동’을 계기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신교수 사건’, ‘조두순 사건’은 과거 사건에 붙었던 피해자 이름을 가해자 이름으로 대체한 사례다. 다만 가해자 이름으로만 성폭력 사건을 명명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지에 대해서도 여러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모니터링 기간 동안 기사제목에 성별·이름을 가장 많이 표기한 매체는 국민일보(205건, 13.7%), 중앙일보(185건, 12.3%), 연합뉴스(179건, 11.9%) 순이다. 지난해 10월 기사 작성 시 성별표시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밝힌 연합뉴스의 경우 179건 기사 중 성별표기 63건, 여성 피해자 표기는 19건이다. 이는 연합뉴스가 생산한 기사 중 30.2%로, 전 매체에서 여성 피해자를 특정한 비율(39.8%)보다 낮았는데, 일정 부분 개선 노력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자 성별을 표기하는 비율이 높고, 피해자와 피의자(가해자)를 함께 표기한 비율은 낮았다. 민우회는 “연합뉴스는 국가기간 뉴스통신사로 연합뉴스 기사를 다른 언론사에서 구매해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연합뉴스 기사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라고 했다.

성차별성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성별을 표기하지 않고 기사 내용이 전달될 수 있는지 판단 △피해자를 선정적으로 호명하는 방식 지양 △기사 내용과 무관하게 전문직 여성을 ‘여교사’·‘여검사’ 등으로 지칭하거나 ‘내연녀’·‘동거녀’ 등 피해자에 비난을 부르는 단어 사용 지양 △특정 성별의 이름표기가 유독 많은지에 대한 언론사 스스로의 비판적 논의 등을 제안했다. 2015년 이래 SNS에서 ‘#뉴스기사_남성성별_표기운동’ 해시태그 운동이 이어지는 것처럼 시민들의 꾸준한 문제제기 필요성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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