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통신사의 케이블 인수·합병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유료방송업계가 통신사 중심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10일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와 LG유플러스-CJ헬로의 인수·합병을 조건부 승인한다고 발표했다. 

공정위는 박근혜 정부 때와 다른 판단을 내렸다. 지난 정부 때 공정위는 경쟁제한성 등을 이유로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합병을 불허했다. 이번 심사 때 공정위는 ‘8VSB’ 시장을 별도로 분리하는 등 시장 기준을 바꾸며 다른 판단을 내렸다. 8VSB는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가 디지털 셋톱박스 없이도 디지털 화질로 방송을 볼 수 있는 기술이다.

문재인 정부는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해외 미디어 기업에 대항할 경쟁력 있는 국내 미디어 기업이 필요하다며 인수합병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왔다. 공정위 역시 “방송·통신사업자들이 급변하는 기술·환경변화에 적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당 기업결합을 승인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때와 달리 반대파가 줄어든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SK의 CJ헬로 인수합병 때 미디어 독과점을 우려한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던 지상파 방송사들은 통신사와 OTT 통합법인을 만들고 제휴를 강화하며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시와 달리 SK 뿐 아니라 경쟁 통신사들도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점도 차이다.

▲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공정위는 승인을 결정했지만 경쟁 제한성이 우려된다며 ‘시정조치’를 부과했다. 공정위는 이들 사업자에 2022년 12월31일까지 △ 물가상승률 이상의 케이블TV 요금 인상 금지 △ 경쟁력이 떨어지는 8VSB 가입자 보호 △전체 채널 수 및 소비자 선호채널 임의 감축 금지 △저가형 상품으로 전환, 계약연장 거절 금지 등 고가형 방송상품으로 전환 강요 금지 △모든 상품에 대한 정보 제공 및 디지털 전환 강요 금지 등을 공통 조건으로 제시했다.

경쟁제한성 징후는 나타나고 있다. 공정위 조사 결과 티브로드는 점유율이 높은 지역에서 채널 수가 적고 가격이 높은 경향이 나타났다. CJ헬로의 경우 IPTV 시장점유율이 낮거나 독점적인 지역에서 8VSB 케이블TV에 더 적은 채널을 편성하고 채널당 가격이 높았다.

공정위는 시장을 ‘디지털’과 ‘8VSB’로 구분했다. ‘아날로그’의 경우 이용자 대부분이 8VSB로 전환한 점을 반영해 별도 분석하지 않았다. 두 시장에 걸쳐 경쟁제한성이 나타나는 SK의 경우 8VSB, 디지털 시장에 시정조치한 반면 LG는 8VSB에만 시정조치했다.

▲ 지난 9월 CJ헬로 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이 경고파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 9월 CJ헬로 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이 경고파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공정위는 ‘교차판매’ 금지를 조건으로 부과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최종안에는 빠졌다. ‘교차판매’는 인수합병 후 통신사와 케이블이 서로의 영업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이다. 공정위는 가격인상 억제 등 조건을 부과한 상황에서 이용자 편익이 예상되는 교차판매까지 금지할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통신 부문에서 공정위는 인수합병 추진 과정에서 논란이 된 ‘알뜰폰’은 문제 삼지 않았다. SK와 KT는 CJ헬로가 저가 알뜰폰 1위 독행기업이기에 통신시장 경쟁제한성이 우려돼 알뜰폰 부문을 떼 놓고 인수합병해야 한다며 반발해왔다. 그러나 공정위는 알뜰폰 시장이 아닌 전체 이동통신 시장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인수합병 후 합산 점유율이 높지 않다고 밝혔다. 

이번 인수합병으로 KT 역시 추후 인수합병을 검토할 전망이다. 통신3사 모두 케이블 유력 사업자를 인수합병하면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 대부분을 통신사가 갖게 된다. 

공정위 결정으로 인수합병에 초록불이 켜졌지만 심사가 끝난 건 아니다. 인수합병을 하는 SK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사전동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최종 인허가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인수만 하는 LG는 과기정통부 심사만 받으면 된다. 

시민사회는 향후 심사 과정에서 ‘케이블 지역성 강화’ ‘노동권 보장’ ‘이용자 권리보장 제도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시장 측면에서는 핸드폰과 IPTV 등을 묶어 파는 ‘결합상품’, ‘알뜰폰’ 문제를 비롯해 플랫폼 영향력 강화에 따른 PP 대상 협상력 격차에 따른 대책 등도 다룰 전망이다.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은 공정위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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