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데뷔해 빠르게 화제에 오른 라이징 스타가 있다. 공식 설정으로는 아직 데뷔도 거치지 않은 ‘연습생’이며 이렇다 할 홍보용 굿즈(goods, 상품)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방송국 소속의 한계를 넘어 여러 방송국의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등 인기가 무척이나 뜨거운 상황이다. 바로 2019년 EBS 봄 개편으로 신설된 프로그램 ‘자이언트 펭TV’의 ‘펭수’다.

‘자이언트 펭TV’는 EBS 장수 어린이 프로그램 ‘생방송 톡! 톡! 보니하니’의 인서트 프로그램으로 처음 선을 보였던 어린이용 교양 프로그램이다. 최고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남극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EBS 연습생이 되었다는 설정을 지닌 가상 펭귄 캐릭터 ‘펭수’를 주인공으로 삼아, 프로그램의 ‘공식적’ 주 시청자 어린이들에게 ‘크리에이터’라는 직업 세계를 소개하고 동시에 해당 크리에이터가 다양한 공간과 현장을 돌아다니며 ‘직업 체험’을 도와주는 효과를 함께 지닌다.

‘크리에이터’ 세계를 방송에 도입한 것이 ‘자이언트 펭TV’가 처음은 아니다. 2015년부터 방송을 시작해 최근 시즌2를 시작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은 한국에서 최초로 방송 프로그램에 ‘1인 크리에이터’의 특성을 결합한 프로그램이었다. ‘마리텔’에 자극을 받고 2015년에 탄생한 KBS의 ‘예띠 TV’는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한 방송으로 인기를 얻은 크리에이터 ‘악어’와 ‘양띵’을 프로그램의 사회자로 출연시키고, 동시에 방송국 차원에서 스스로 MCN(Multi-Channel Network, 유튜브 등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를 모은 에이전시)이 되고자 하는 면모를 함께 보인 프로그램이었지만 성공적 결과를 만들지는 못했다. 이후 프로그램 출연자를 직접적으로 인터넷 크리에이터가 되어 프로그램을 만들게 하거나, 예능 프로그램 자체를 인터넷 생방송과 연계하는 SBS ‘가로채널’과 ‘꽃놀이패’가 있었으나 이 역시 시청자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자이언트 펭TV’가 지니는 근본적 속성 자체는 ‘마리텔’을 전후로 등장한 프로그램과 큰 차이는 없다. 그렇다면 ‘자이언트 펭TV’에게는 동종의 다른 프로그램에게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작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바로 프로그램의 기반이 ‘유튜브’에 있다는 것. 주 1회, 그리고 일요일에 기존 방송분을 모은 종합편이 방송되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TV용으로 축약하고 재편집한 방송분이다. ‘자이언트 펭TV’는 철저하게 유튜브를 통해 프로그램을 감상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기획된 프로그램이었고, 실제로도 TV 방송을 통해 공개된 영상보다 유튜브 전용으로 기획된 영상이 훨씬 많은 상황이다.

▲EBS의 '자이언트펭 TV'.
▲EBS의 '자이언트펭 TV'. 사진출처='자이언트 펭TV' 캡처.

동시에 ‘자이언트 펭TV’는 어린이 시청자만을 노리는 대신 성인 시청자들도 함께 공략하는 전략을 통해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이 지니는 한계를 넘으려는 모습도 드러냈다.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는 ‘자이언트 펭TV’의 영상에는 어린이 시청자가 보기에는 그저 웃기거나 독특한 모습이지만, 성인 시청자가 느끼기엔 옛날 자신들이 어렸을 적 유행했던 코드를 재해석하거나 성인 시청자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함께 삽입함으로써 최대한 다양한 연령대에서 호응을 얻을 수 있도록 시도했다. 이러한 요소가 어린이 시청자들에게는 부적절할 수 있기에 TV 방송분에서는 적절한 수위에 맞춰 편집 한다.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구성 차원으로도 무분별하게 인터넷 상의 유행어나 코드를 사용하지 않으며 최대한 ‘어린이 교양 프로그램’의 면모를 해치지 않으려 노력한 측면이 돋보인다. 그러면서도 기존 EBS 시청자가 지니는 관념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유튜브’를 통해서는 ASMR 콘텐츠나 인기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을 부르는 커버송 기획, 게릴라 라이브 방송 등 한계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표현과 실험이 가능했다.

결정적으로 ‘자이언트 펭TV’가 인터넷에서 화제에 오른 계기가 된, 지난 9월 중순에 공개된 ‘EBS 아이돌 육상대회’ 편 역시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1990년대~2000년대 ‘딩동댕 유치원’과 ‘모여라 딩동댕’에 등장하며 많은 성인들의 추억에 남아 있는 캐릭터 ‘뚝딱이’, 그리고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방송되며 주목을 받은 ‘뽀롱뽀롱 뽀로로’, ‘방귀대장 뿡뿡이’, ‘번개맨’ 캐릭터를 출연시켰다. 동시에 ‘뚝딱이’ 캐릭터가 1990년대 처음 선을 보인 것에 착안하여 상대적으로 자신들보다 늦게 방송에 등장한 나머지 캐릭터를 ‘꼰대’처럼 하대하는 컨셉은 ‘뚝딱이’를 기억하는 성인 네티즌들을 통해 순식간에 인터넷으로 퍼지며 화제가 되었다. 해당 영상은 ‘자이언트 펭TV’가 유튜브로 공개한 영상 최초로 조회수가 100만 이상을 기록했다. 뒤이어 한동안 5만명 부근에 머무르던 유튜브 구독자수 역시 10월 초에 10만명을 넘고, 11월 9일 현재에는 약 47만명의 구독자수를 기록하는 등 ‘자이언트 펭TV’에 ‘뚝딱이’를 비롯한 과거 EBS 어린이 프로그램의 인기 캐릭터를 등장시킨 시도는 유튜브 채널은 물론, ‘펭수’라는 캐릭터를 더욱 널리 알리는 중대한 사건이 되었다.

EBS ‘자이언트 펭TV’가 프로그램 신설-채널 개설로부터 일 년도 되지 않아 이룩한 성과는 EBS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큰 결실이다. EBS는 다른 방송국들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유튜브를 비롯한 뉴미디어 전용 콘텐츠 제작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기존 방송 프로그램을 일정한 길이로 자르거나, 클립 영상으로 재편집하여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 2010년대 중반부터 SBS가 유튜브-뉴미디어 전용 채널인 ‘스브스뉴스’와 ‘비디오머그’로 여러 주목을 받은 이후 EBS는 유튜브 전용 채널 ‘momoE’(모모)와 홈페이지로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만드는 식으로 대응을 했다. 이중 EBS의 인기 반려동물 프로그램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로 화제가 된 동물조련사 강형욱과 요리연구가 이혜정을 등장해 반려견용 음식을 만드는 ‘개슐랭가이드’, 서로 상반되는 속성을 지닌 두 인물을 함께 밥을 먹으며 서로를 이해한다는 컨셉을 가진 ‘밥친부터 시작’이 각각 조회수 10만회, 100만회를 넘기며 잠시 화제가 되었지만 채널 자체에 대한 인지도나 호응은 미미했다. 2019년 11월 현재 채널 구독자수는 약 11만명에 불과한 것은 물론, 설상가상으로 올해 하반기 이후로는 점차 콘텐츠 업로드가 뜸해지더니 약 4개월 째 신규 콘텐츠가 업로드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어떤 의미로 EBS는 유튜브 콘텐츠에 대한 제작 역량을 모조리 ‘자이언트 펭TV’에 쏟아부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EBS는 방송국 중에서는 무척이나 뒤늦게 유튜브 콘텐츠에 도전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빠르게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된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는 일단 성공했다. ‘펭수’ 캐릭터가 화제가 되고 다른 방송국들에게도 주목이 되자 SBS의 유튜브 전용 프로그램 ‘문명특급’은 물론 같은 방송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인 ‘배성재의 텐’, MBC의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인 ‘여성시대’과 앞서 언급한 ‘마리텔 V2’ 등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등 EBS는 적극적으로 타 방송사와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동시에 EBS는 ‘펭수’를 비롯한 EBS 인기 캐릭터를 한국동서발전과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해 부가적 수익을 노리고, 더 나아가서는 자매 유튜브 채널 ‘번개맨이 간다’를 최근 개설하는 등 자사가 보유한 기존 인기 캐릭터를 활용한 전략을 더욱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EBS '자이언트 펭TV'에서 번개맨과 만난 펭수. 사진출처='자이언트 펭TV' 캡처.
▲EBS '자이언트 펭TV'에서 번개맨과 만난 펭수. 사진출처='자이언트 펭TV' 캡처.

그러나 EBS의 전략이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다. ‘자이언트 펭TV’를 본격적으로 화제의 프로그램으로 만든 ‘EBS 아이돌 육상대회’에서 간접적으로 언급했던 것처럼 EBS는 2017년 경기도 고양시로 사옥을 이전한 후 이전에도 빈약하던 재정이 더욱 악화되며 이전보다 훨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 버거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KBS에 비하여 수신료 배분이 터무니 없이 낮은 것은 물론, 오랜 시간 수신료가 인상하지 못하면서 EBS는 다양한 부가 사업과 ‘수능특강’ 등을 비롯한 교육 관련 사업으로 빈약한 재정을 채워왔었지만 이제는 그조차도 쉽지 않은 국면에 놓였다. 여기에 2018년 김구라가 진행자로 등장한 시사 프로그램 ‘빡치미’, 프리랜서 아나운서 전현무를 출현시킨 ‘부모성적표’, 박명수 등을 고정 출연진으로 기용한 ‘조식포함 아파트’ 등 적극적으로 인기 연예인을 프로그램의 간판으로 내세워 시청률과 인기를 증진시키고자 한 계획도 실패로 마무리된 것도 EBS의 재정 악화에 영향을 끼쳤다.

그런 차원에서 EBS가 ‘자이언트 펭TV’에 역량을 집중시키는 모습은 뉴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진입 전략인 동시에 이전보다 더욱 악화된 EBS의 재정에 맞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만드는 행보이기도 하다. 방송용 프로그램과 유튜브 프로그램을 각각 만드는 대신, 편집의 차이만 두어 제작에 효율성을 추구하고 프로그램의 포맷도 세트나 CG 활용이 크게 필요 없는 ‘리얼리티 교양’으로 방향을 맞추며 최대한 제작비를 아끼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자이언트 펭TV’는 인기를 얻는 것에 성공했고, 큰 사건이 터지지 않는다면 당분간 꾸준한 인기를 얻을 가능성 역시 높다. 그러나 EBS가 놓인 고질적 재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동시에 EBS가 최근 몇 년간 보인 체계적인 전략 없이 우왕좌왕하는 행보가 진정되지 않는다면 기회는 순식간에 위기가 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게다가 EBS는 이미 열악한 재정 상황 속에서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외주 제작사에게 적절한 제작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물론, 도리어 제작사를 압박하는 문제가 지적된바 있다. 해외 출국 전 EBS의 불합리한 촬영비 기준에 항의하며 소송을 진행하고, 열악한 제작 상황으로 인해 아프리카에서 ‘EBS 다큐프라임’ 프로그램을 촬영 하던 중 안타깝게 교통사고로 사망한 故 박환성, 김광일 PD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방송사의 기틀과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면, 실제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 노동자들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인기는 그야말로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