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고용노동부에 간접고용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기본 노동인권을 증진하기 위해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을 계기로 사회 경각심이 퍼지며 산업안정보건법이 개정됐지만 역부족이란 취지다. 권고안에는 원청 법적 책임 강화, 위험작업장 범위 확대 등 노동계가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위해 요구해온 안들이 담겼다.

인권위는 지난 5일  “정부는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사내하도급 노동자 법제도적 보호방안 마련’을 주요 과제로 포함했다. 또 지난해 12월 발생한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사망사고를 계기로 일부 제도개선이 있었으나 유사 사고가 지속 발생한다”며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위험의 외주화 개선 △위장도급(불법파견) 근절 △사내하청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등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하청노동자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며 “위험업무가 외주화되고 수차례 하도급 단계를 거치며 노동조건이 열악해지고, 비용을 줄이려 하청업체가 숙련공이 아닌 초보기술만 익힌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한다”고 원인을 꼽았다. 지난 9월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2018년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가운데 약 40%가 하청노동자다. 건설·조선 업종에선 90%에 이른다.

인권위는 먼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도급금지작업이 화학물질을 중심으로 좁게 규정됐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변화한 산업구조와 작업공정을 고려해 금지범위를 확대하고, 하청 산재위험을 줄이기 위해선 생명안전 업무 기준을 구체화하고 산재보험료 원하청 통합관리제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태안화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산업재해로 숨진 故 김용균(24)씨의 직장 동료들이 지난해 12월19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열린 3차 촛불 추모제 청년 추모의 날에 참가해 김씨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태안화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산업재해로 숨진 故 김용균(24)씨의 직장 동료들이 지난해 12월19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열린 3차 촛불 추모제 청년 추모의 날에 참가해 김씨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불법파견(위장도급)을 뿌리뽑으려면 합법 파견 기준에 대법원 판례를 반영해야 한다고도 했다. ‘근로자파견 판단기준 지침’의 법적 지위를 상위법령으로 높여 정부가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지도·감독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원청 기업이 하청노동자 노동조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의무를 지지 않는 점도 지적했다. 인권위는 “하청노동자의 작업장 안전 개선에 한계가 있었다“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사용자 개념을 넓히거나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일제히 환영 입장을 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는 6일 성명에서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고를 이행할 책임이, 발전소 연료환경설비운전과 경상정비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이룰 책임이 문재인 정부에 있다는 점이 다시 확인됐다. 인권위 권고와 김용균 특조위 권고를 즉시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국가인권위까지 나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위한 권고안을 발표했다는 사실에 비애감을 느낀다. 민주노총이 끊임 없이 호소해왔던 내용“이라며 “권고 이행과 더불어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간접고용 노동자 인권 보장 권고는 처음이 아니다”며 “불법파견·간접고용이 양산하는 노동인권 사각지대의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은 실천만 남겨두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가 올해 초 발표한 ‘간접고용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간접고용 비정규직 규모는 약 350만명에 달한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20%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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