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대기업 S그룹 한 계열사가 최근 임원 모친상 의전에 직원들을 대거 차출했다. 업무시간 중 빈소를 지키거나 화환을 정리하는 등 직원들의 역할을 분담한 시간표까지 짜 직장갑질이라는 비판이 안팎에서 나왔다. 회사는 자원자만 받아 진행했고 사내 미풍양속이라고 밝혔다.

미디어오늘 확인 결과 이 회사는 지난달 17~18일 서울 모처에서 진행된 기업문화 담당 임원 모친상 장례에 자사 직원 28명을 차출했다. 직원들은 사측 지시에 따라 빈소 안팎 동선 안내, 화환 배치, 부의금 받기, 방명록 지키기 등을 맡았다. 직원들은 업무 시간에도 차출됐다. 아침 9~11시에서 밤 12시까지 시간대 별로 나눠 받은 역할을 수행했다. 

사측은 빈소 업무배치 시간표까지 짰다. 차출에 앞서 직원들에게 업무 분장과 시간대, 직원 이름을 적은 표를 이메일로 공지하며 “회사 업무로 바쁘시겠지만 가능한 배정(시간)보다 앞서 도착해 원활히 지원이 이뤄지도록 협조를 부탁 드린다”고 밝혔다.

내부에선 불만이 쌓였지만 쉬쉬할 수밖에 없었다. 업무상 위계관계라 거부하기 어려운 데다 인사철을 앞두고 있다. 직원 A씨는 “개인 조사에 회사 구성원을 수십명 불러내 지원토록 하는 건 구시대, 군대식 동원”이라며 “11월부터 하반기 인사평가가 시작되는 점도 갑질에 응할 수밖에 없는 데 한몫 했다”고 말했다.

강제 동원 의혹이 회사 밖에 퍼지자 사측이 ‘내부 제보자’를 색출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직원 B씨에 따르면 기업문화 담당 인사권자가 구성원들을 모아 제보자를 색출하겠다고 나섰다.

▲지난달 17~18일 서울 모처에서 진행된 S그룹 계열사 기업문화 담당 임원 모친상에 소속 직원이 차출된 모습.
▲지난달 17~18일 서울 모처에서 진행된 S그룹 계열사 기업문화 담당 임원 모친상에 소속 직원이 차출된 모습.
▲ 회사가 빈소 차출에 앞서 직원들에게 보낸 시간표 공지 이메일 갈무리. 음영처리=미디어오늘
▲ 회사가 빈소 차출에 앞서 직원들에게 보낸 시간표 공지 이메일 갈무리. 음영처리=미디어오늘

회사는 이런 의전이 자발적 일손 돕기라는 입장이다. 회사 홍보 관계자는 “회사 ‘경조출장’ 규정에 따라 조문 지원했고, 직원들이 빈소 일을 돕는 게 사내 미풍양속 관행”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직원들의 의사를 물은 뒤 자원자만 받았다. 모든 직원들에게 똑같이 지원한다”고 밝혔다. 색출 의혹엔 “들어본 적 없다”고 했다.

회사 규정에 따르면 ‘팀장 포함 3명 이상’이 경조 출장을 갈 수 있는데 사측이 임원 포함 44명을 배치했으며, 경조출장 아닌 ‘국내 출장’으로 보고하도록 했다는 지적에 이 관계자는 “팀당 3명이라는 뜻이며, 근태 관련 지시는 이메일 보낸 직원의 실수”라고 답했다.

‘직장갑질 119’에서 활동하는 윤지영 변호사(법무법인 공감)는 “본래 주어지지 않은 업무를 업무상 위계관계에서 시키는 경우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특히 이 사안은 고위급 임원의 개인 행사에 업무 관련성 없는 일을 시켰다. 특히 자원자만 받았다고 해도 위계 질서 아래 있는 직원에게 다른 선택권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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