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가 2020년 농민기본소득 관련 예산을 확보했다고 6일 발표했다. 경기도는 ‘전국 최초 도입’을 강조하며 이재명 경기지사의 ‘농업정책은 사양산업이 아니라 국가 주요 전략산업, 안보산업’이라는 정책기조를 반영했다고 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농가소득지원과 달리 농민 개개인에게 지급하는 정책으로 경기도가 시행 중인 ‘청년기본소득’을 ‘UN 농민 및 농촌 노동자 권리선언’에 근거해 농촌으로 확대했다고도 했다. 

경기도는 기본소득의 한 형태라는 걸 강조했다. 이 지사는 대선후보 시절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현재는 청년기본소득 성남시장 시절엔 청년수당을 시행하며 기본소득에 가까운 정책을 시행해왔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농민지원책으로서 이번 정책의 의미와 향후 과제에 더 주목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언론이 다룬 농민‘기본소득’

경기도는 “농민기본소득과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 설계, 사업추진을 위해 기본소득 신청·대상자 확인·지급 등을 처리할 정보시스템 구축 등”을 위해 27억5000만원을 내년 하반기 추경으로 도입하겠다고 했다. 

▲ 경기도청 전경. 사진=경기도
▲ 경기도청 전경. 사진=경기도

 

이 지사는 이날 경기도의회에서 “기본소득의 이념은 개인에게 지급하는 것인데 지금 시행되는 타 지자체의 농민수당은 농가 단위로 지급되는데 이 방식은 농민기본소득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세대주 대부분 남자여서 여성 농민이 소외되는 성차별적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민 개개인에게 지급할 건지, 개인으로 한다면 대상을 어떻게 할지 연구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사업 대상을 선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언론에선 농민기본소득 중 경기도가 강조한 대로 기본소득에 초점을 뒀다. 대다수 매체는 경기도 보도자료 취지대로 전했고, 일부 매체는 기본소득을 ‘퍼주기’라는 이유로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경기도, ‘농민 기본소득’ 국내서 처음 내년 시행”이란 기사에서 최초 시행을 강조했고, 서울신문 “청년 이어 농민까지…경기도의 기본소득 실험 확대”, 노컷뉴스 “경기도, ‘기본소득’ 수혜 대상 확대…‘청년’→‘농민’” 등 기본소득 대상을 청년에서 농민으로 확대한 부분에 집중한 곳도 있었다. 

한편 이날 매일경제는 “경기도 또 퍼주기 논란…청년이어 농민에게도 기본소득”이란 기사에서 “농민 기본소득 사업을 추진하기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며 “재정이 제한된 상황이어서 ‘퍼주기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매일경제는 “경기도는 청년기본소득을 통해 만 24세 청년 17만명에게 연간 100만원을 지급하지만 편의점, 음식점, 학원 등 생활비 위주로 사용돼 청년 삶의 질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평가가 엇갈리는 상황”이라며 “효과 검증이 덜 된 기본소득 사업이 농민으로 확대되고 국정과제인 공익형 직불제(모든 작물에 직불금 동일 지원)까지 도입될 경우 옥상옥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역시 농민과 기본소득 중 기본소득에 초점을 둔 보도다. 

언론 보도만 보면 농민기본소득을 내년에 전면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27억5000만원은 내년 하반기 추경이다. 예산을 확보하면 바로 지원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사실상 농민기본소득을 설계하고 실행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 예산이라고 봐야 한다. 

농민기본소득 vs 농민수당

농민기본소득은 기본소득에 가까운 정책인 동시에 농민지원책이다. 농민지원책의 주된 이유는 농업의 공익 측면과 어려운 농민의 삶이다. 

과거 정부가 쌀을 시장가격보다 비싼 값에 구매해주던 추곡수매제를 WTO 규제 등으로 2005년 폐지하면서 직불금제를 도입했다. 직불금제에 여러 형태가 있는데 쌀 농가에만 지원금을 지급한다거나 면적을 단위로 할 경우 부익부빈익빈 현상 등 농가 간 불균형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농민수당과 농민기본소득이다. 농민지원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으니 중요한 건 지원방식을 찾는 과정이다. 농민수당은 일부 기초지자체에서 시행하는데 공익활동 등을 하는 조건으로 농가 단위에 지원금을 준다. 반면 농민기본소득은 농민이라면 개개인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지사가 지적한대로 농가 단위로 지급할 경우 성차별 요소 등 불평등 문제가 있지만 현재 농민수당만 시행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 경기도가 예산을 확보했다는 것과 함께 이 지사가 “사업대상(농민)을 선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말한 부분을 언론에서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농민들 사이에선 현실적으로 지원대상을 선정하기 쉬운 농가 단위로 지급하는 농민수당과  농민을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한 농민기본소득 중 어떤 제도가 효과적인지를 두고 논쟁이 있다. 농민을 어디까지로 규정할지가 관건이다. 사진=pixabay
▲ 농민들 사이에선 현실적으로 지원대상을 선정하기 쉬운 농가 단위로 지급하는 농민수당과 농민을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한 농민기본소득 중 어떤 제도가 효과적인지를 두고 논쟁이 있다. 농민을 어디까지로 규정할지가 관건이다. 사진=pixabay

 

박형대 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정책위원장은 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경기도가 청년 다음으로 농민을 기본소득 대상에 넣은 건 사회적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높게 평가한다”면서도 “다만 청년은 나이를 기준으로 대상이 명확하지만 농민을 구분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시행 중인 농민수당이 기본소득 요건 중 ‘무조건성’을 배제한 이유이기도 하다.  

농민기본소득 실험 성공의 전제조건

박 전 위원장은 “전농에서 전남에 ‘적어도 1년쯤 농민등록제를 실시해 전체 농민을 등록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지만 전남도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여전히 농가단위 지원이라는 구시대적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며 “농민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구분할 제도적 대안이 없다면 자칫 서류상 농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원 대상을 선별할 필요가 없는 게 기본소득의 장점이다. 즉 농민기본소득은 농민만을 선별해내야 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제도로 볼 순 없다. 기본소득은 아니지만 기본소득에 가까운 정책을 도입해 실패할 경우 자칫 기본소득 논의나 농민지원책에도 제동이 걸리지 않을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지난달 31일 경기도가 최초로 진행한 기본소득제 도입 공론화 조사 결과(3차에 걸친 여론조사와 1박2일 숙의토론 등)를 보면 1차 여론조사에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46.1%였지만 3차 조사에선 필요하다는 의견이 29.7%p 상승했다.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17.6%p 낮아졌다. 또 3차 조사에선 기본소득을 전면 시행해 현재보다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75.1%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기본소득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지지비율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가운데 농민기본소득의 성패가 기본소득 모델 확대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다. 박 전 위원장은 “경기도가 단순히 농가 단위 지원을 농민 단위로 발전시켰다고만 볼 건 아니다”라며 “농민기본소득 논리를 더 보강해 사회적으로 신뢰를 받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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