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영화, 음악, 드라마, 애니메이션 업계 관계자들이 한 데 모여 문화산업계 전반에 걸친 고질적 ‘갑질’, ‘불공정 거래’ 해소를 요구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문화산업 유통 공정성 강화 관련 법안을 두고, 극소수 ‘갑’인 플랫폼·방송사업자들에 대한 실실적 제재가 가능해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김민규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문화산업계의 ‘10대 불공정 행위 유형’을△사재기 및 구매 강요 △부당한 제작활동 개입 △서면계약 미체결 △판촉·유통비용 전가 △부당한 유통 차별 △가격 후려치기 △제작 후 수령 및 유통 거부 △재작업 비용 미보상 △과도하게 낮은 수익배분 △부당한 정보 제공 강요 및 보복 조치 등으로 분류했다. 김 교수는 7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산업 불공정거래 행위 실태 및 법 제도 개선 세미나’에서 관련 발제를 진행했다. 영화·음악·게임·애니메이션·드라마·만화·캐릭터·광고·공연·뮤지컬·패션·PP(Program Provider, 방송채널사용사업자)·대중문화예술기획업 등 13개 분야 종사자들을 인터뷰한 결과가 함께 발표됐다.

전 산업에 걸쳐 가장 보편적으로 나타난 불공정 행위는 제작활동 방해, 유통차별, 과도하게 낮은 수익배분, 부당정보 제공 강요 및 보복 조치 등이다. 불공정 양상은 영화·음악·게임·애니메이션 분야는 익히 알려진 대로 ‘사재기’, 드라마·게임·애니메이션·광고업에선 ‘가격 후려치기’ 형태로 나타났다. 음악·드라마·PP·캐릭터·패션 등 주로 방송을 통해 콘텐츠가 소비되는 산업에선 ‘서면계약 미체결’이 공통적인 문제로 확인됐다. 영화는 마일리지, 음악은 제작비, 드라마는 유통채널 수수료, 만화·웹툰은 선물권 등 장르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판촉유통비용을 전가하는 행위도 드러났다.

▲ 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문화산업 불공정 거래 행위 실태 및 법 제도 개선 세미나가 진행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 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문화산업 불공정 거래 행위 실태 및 법 제도 개선 세미나가 진행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국회에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월 대표발의한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안’이 계류 중이다. 사후제재보다 사전적으로 공정한 유통구조를 구축해 공정한 유통환경 여건을 조성한다는 목적으로 △각 당사자가 대등한 계약 체결 및 표준계약서 보급 △대기업인 문화상품사업자의 불공정행위 금지 △국가·지방자치단체 등이 중소기업 문화상품사업자의 관련 사업참여 지원 △문화상품사업자 간 공정유통 협약 체결 및 문화산업공정유통지원기관 지정 등을 규정하고 있다.

문화산업계 관계자들은 공정거래 여건 마련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이 법안만으로는 실효성이 낮다고 봤다.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는 “자율적으로 상생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 (대기업 입장에서) 이행강제금 1000만원을 내고 1억원 수익이 난다면 당연히 1억을 선택한다”고 지적했다. 법 위반행위 조사 조항에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자료 제출이나 출석 요구를 따라야 한다는 대목과 관련해 “특별한 상황 당연히 있다. 영업비밀”이라며 “지난 10년 동안 변한 게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특별한 사유’ 때문에 어떠한 조사에도 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대식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국장도 방송법에는 제재 위반에 대해 재허가, 재심사에 반영하도록 했음에도 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회사를 허가 안 해서 방송국 문 닫아야 된다고 할 수 있는 법이 있는데도 변화가 없다. 그런데 1000만원 이하 이행강제금 등으로 효과가 있겠느냐”고 한계를 지적했다.

문화산업 특성과 변화를 반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이어졌다. 조경훈 한국애니메이션산업협회 부회장은 “(방송사가) TV 시리즈나 애니메이션 제작할 때 21분짜리 한편에 1억원 정도, 비싸면 2~3억원 정도가 든다. 지상파에서 방영하면 방영권으로 최대 받을 수 있는 금액이 1100만원, 제작비 10분의1”이라며 ‘구조적 갑’의 위치에 놓이는 방송사 현실을 먼저 언급했다. 이어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자금을 조달하려면 몇몇 전략적 투자자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방식이 ‘공동제작’이다. 방송사가 돈을 주면서 프로젝트 지분을 가져간다. 자신들도 기여를 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의 저작권도 공동 소유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한다”며 “선언적으로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정하는 것은 필요한데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했다. 산업 특성에 맞는 진흥과 규제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남경 한국매니지먼트연합 국장은 “과거 ‘사재기’는 음반판매수량을 늘리기 위한 거였고, 그 다음 단계가 온라인 스트리밍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아이디(ID)를 무작위 생성하고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음원을 스트리밍하는 방식이다. 최근 방식은 ‘스텔스 마케팅’(소비자가 광고인지 모르게 접근하는 마케팅 방식)을 포함한 SNS 활용으로 또 한 번 진화돼 법망을 피해간다”며 “이 법안이 점차 발달해가는 범법행위, 소비자 오인행위들을 융통성 있게 다룰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방송사들이 과거 가요 프로그램을 클립 영상으로 온라인에서 유통하지만 제작자에게 수익 분배가 이뤄지지 않는 부분 등을 ‘공정 거래’로 볼 수 있는지 등도 언급했다. 이 국장은 이어 “문화콘텐츠 전문가들에 의해 수사나 조사가 가능할 것인가. 공정거래위가 조사하면 굉장히 딱딱하고 단편적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다. 기관이나 전문가가 실질적인 힘을 가질 수 있느냐는 부분도 잘 풀어주면 좋을 것 같다”고 첨언했다.

조성동 한국방송협회 정책연구위원은 “지상파 방송사 경영진이 ‘상생’에 동의하는 분들로 바뀌었다. 이미 2011~2012년 광고매출이 올해에는 반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외부 제작 영역을 ‘쪼고, 갑질하고’ 이런 걸로 표현하는데 사실상 방송사 내부 인력, 인프라, 제작편집 시스템, 기타 투자에 따라 방송사가 짊어지고 가던 위험부담이 있다”며 문화산업 영역의 진흥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운영하는 기금, 예컨대 방송통신발전기금만 봐도 영세하거나 한류로 연결해 투자할 수 있는 영역을 무시해 아쉬움이 크다. 유통관련 재정지원 부분 등을 활성화시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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