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달 21일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게 돌발 질문을 던졌다. “고삼석 위원이 곧 입장 표명을 한다던데?” 그러자 고 위원이 마이크를 넘겨 받아 “임기가 남았더라도 임명권자에게 거취를 맡기는 게 정무직의 자세라고 생각한다”면서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날 저녁 고 위원은 페이스북에 “박수칠 때 떠나라,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사실상 사퇴를 선언했다.

역대 최장수 방통위 상임위원이었던 고 위원의 갑작스러운 사퇴 배경을 두고 관심이 집중됐다. 미디어오늘은 지난달 29일 과천 방통위 청사에서 고 위원을 만났다.

고 위원은 “성과도 많았지만 아쉬움이 많다”면서 “방통위의 권한이 많이 축소됐지만 어려운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자평한다”고 말했다. 고 위원은 방통위원 5년6개월의 경험을 살려 ‘5G 초연결 사회 : 완전히 새로운 미래가 온다’는 제목의 책을 조만간 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고 위원의 지난 5년6개월은 파란만장했다. 2014년 6월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추천으로 방통위 상임위원에 임명됐다. 국회가 240명 출석에 217명 찬성으로 고삼석 추천안을 의결했는데 방통위가 고 위원의 일부 경력이 임명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결국 3개월 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임명됐다. 그때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슬로건에 맞춰 방통위 소관 업무의 상당 부분이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 되고 조직이 절반 이하 규모로 축소된 뒤였다.

2017년 6월 정권이 바뀐 뒤에는 퇴임 5일 만에 대통령 추천으로 다시 복귀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임기 만료 전 추천이 아니라 퇴임 후 재임명인 데다 야당 추천으로 임명됐던 위원이 대통령 추천으로 다시 임명된 것이라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과 함께 명실상부한 ‘실세 차관’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고 위원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용수 위원을 미래부 차관으로 차출시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탄핵 국면에서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바꿔놓았을 뿐 방통위 조직 개편에 크게 손을 대지 못했다. 방통위의 지난 2년 반에 대한 평가도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국민 추천 이사제 등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아직 손을 대지 못했고 지상파 플랫폼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도 없었다. 중간 광고 도입 논의도 명확한 방향 없이 멈춰있는 상태다. 페이스북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과징금 취소 소송에서 방통위가 패소하는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허위 조작 정보 대책을 두고 방통위와 청와대가 갈등을 빚었고 이효성 전 위원장에 이어 고삼석 위원까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상황이 방통위의 위상을 입증한다.

▲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사진=방송통신위원회 제공
▲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사진=방송통신위원회 제공

 

- 방통위는 언제나 정치적 외압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합의제 기구로서 실제로 복잡한 이해관계의 충돌을 원만하게 조정해 왔는지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향후 방통위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무리 정부가 혁신 성장에 역량을 투여한다고 하지만 시장은 5G로 가는데 시장에서 보는 공무원들은 2G나 3G에 머물러 있더라. 이래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진입할 수 있을까. 방통위가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위원회인데 여야의 대표성은 확보돼 있지만 사회적 대표성이 부족했고 갈등의 조정 역할도 미흡했다. 방통위의 위상과 기능, 권한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업무 분장으로는 시장의 변동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게 곳곳에서 드러났다. 방송의 공공성과 인터넷의 허위 조작 정보의 문제, 디지털 범죄의 문제 등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역할의 한계가 드러났다면 개선해야 할 텐데, 정권 초기에 개편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다. 규제와 진흥을 분리하고 방송 및 콘텐츠를 방통위로 일원화하고 공공성을 담보하는 미디어 위원회를 신설하고 등등, 방향은 명확했지만 추진 단계에서 막혔다. 언젠가 이 부분에 대해서 입장을 밝히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 최장수 방통위원 기록을 세웠다. 4기 방통위에 대한 중간 평가는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아쉬움이 있을 것 같다.

“전쟁을 하게 되면 빼앗는 자가 있고 지키는 사람이 있는데 국회 야당 추천으로 들어와서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나름 정권 교체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방통위라는 조직이 권한과 인력, 예산의 한계가 있고 중장기 비전을 만들고 실행 계획을 짜는데 역할이 제한적이지 않나. 핑계 같지만 미래창조과학부 출범 이후 방통위의 권한과 예산과 조직 인력을 대거 가져가버렸다. 이게 중앙행정기관이냐고 할 정도로 축소됐는데, 중장기적으로 정책을 고민하고 준비할 수 있는 조직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처음 3년도 그렇고 2년 반도 그렇고 3년 뒤 뭘 준비해야 할지 중장기 과제를 추진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방통위에 허위 조작 정보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가 많았다. 방통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주체인지도 의문이고 애초에 가짜 뉴스에 대한 용어 정리부터 제대로 안 돼 있는 것 같다.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불법 정보의 주무 기관인 건 맞는데, 엄밀하게는 정책 주무 기관이다. 가짜 뉴스가 정보통신망법의 불법 정보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논란의 소지가 있고 어떤 가짜뉴스는 불법 정보에 해당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해결할 것은 우선 혐오와 증오, 차별 표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개념을 명확하게 해야 하고 규제 대상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한다면 규제의 주체를 명시적으로 논란이 없도록 정리해야 하고. 민간 업계 자율적으로 하거나 비정부기구(NGO)나 학부모, 언론 단체 등등. 시장의 자정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게 내 믿음이다. 유언비어나 루머, 이런 걸 문제제기하는 게 아니다. 정보가 생산되고 유통, 확산되는 수단이 우리가 과거에 생각하던 루머를 넘어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갖기 때문에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나는 미디어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게 근본적인 대안이라는 믿음이 있다. 수용자 입장에서는 기존 언론이나 1인 채널의 가짜 뉴스나 차별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 상태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종합편성채널은 기획 단계부터 법안 마련과 통과, 시행단계에 이르기까지 특혜와 유착으로 점철돼 왔다. 지상파 수준의 커버리지를 보장하면서 종편에 광고 직접 판매와 중간광고, 간접광고 등을 허용한 것도 엄청난 특혜였다.

- 의무재송신과 황금채널 등 종편 특혜를 거둬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가능할 거라고 보나.

“어느 정권이든 신생 사업자 지원은 시장 안착 단계까지 간다. 그런데 종편 출범 이후 10년이 지났고 시청률도 꽤 올랐고 경쟁력도 확보됐으니 종편에 경도돼 있던 정책을 바로잡는 건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관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지하고 정상화할 거냐, 광고와 편성의 문제를 어떻게 균형을 잡을 거냐 등의 문제가 있다. 뭉뚱그려서 다 종편 특혜다, 다 회수해야 한다고 하긴 어렵고. 낱개로 보지 말고 전체로 보자는 거다. 2017년 초에 재승인 심사를 하면서 막말과 편파 방송 문제에 대해서는 5명의 위원들이 의견 일치가 돼서 재승인 취소 직전까지 밀어붙였고 지금은 많이 해소됐다고 본다. 논조에 따른 정파성은 어쩔 수 없는 문제고.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늘리라고 권고했고 지금은 시사와 보도 비중이 줄고 연예와 오락 비중이 높아졌다. 드라마 투자도 늘었다. 2017년 재승인을 엄격히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패널들이 일부 퇴출됐고 콘텐츠 투자도 많이 개선됐다고 우리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종편이 사회적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 이건 많이 부족하다고 본다. 언론이 의제를 제안하고 토론과 논쟁을 통해 공공의 의제로 발전하고 정책 의제로 채택되는 과정이 필요한데 종편이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 방통위가 페이스북에 패소했다. 글로벌 콘텐츠 업체에 대한 공정경쟁 이슈도 미완의 과제다. 한편으로는 망 중립성 논란도 가속화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나 이용자 권익 침해, 행정소송에 재판 현장에 가보면 민사는 거의 패소하더라. 행정소송에서도 사업자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들어봤더니 법리와 법적 근거. 엄격하게 해석하기 때문에 침익적 행정처분은 명확한 법적근거를 요구하고 사업자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공정 경쟁 관점에서 어느 정도까지 규제가 필요한가는 쉽지 않은 문제다. 미리 사전에 법으로 규제하면 규제 만능주의가 되고 자율규제나 가이드라인의 경우는 소송으로 들어가면 법적 구속력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규제를 하더라도 글로벌 사업자들은 빠져 나가고 집행 능력이 제한된다는 거다. 사업자들은 100% 규제를 감당해야 하고 신설 규제를 검토하면, 국내 기업들이 반대한다. 어떤 것은 법으로 해결하고 어떤 것은 행정 지도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글로벌 기업들도 한국을 중요한 시장으로 보는데 단순히 테스트 배드가 아니라 한국의 규제 당국을 신경쓰고 있는 게 사실이다. 국회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이런 변화에 맞춰서 시의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입법 미비 상태를 해결해야 하는데 과방위가 정치적 문제로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게 안타까웠다. 규제 공백 상태를 빨리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데 행정 입법으로는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기 벅찬 상태였다.”

- 지상파 방송의 직접 수신 비율이 4%대로 떨어졌다. 지상파 UHD 수신 가구는 1%도 안 될 거라는 분석도 있었다. 근본적으로 공적 플랫폼으로서의 지상파 방송의 역할과 위상을 다시 정립해야 하지 않을까.

“지상파 위기는 안타까운데 정책이 바뀐다고 해서 위기가 해소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공공성과 공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신뢰성의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 경영의 문제는 정책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시장의 구조를 바꿔야 하는 문제고 결국 재원 구조의 문제, 결국 수신료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OTT(스트리밍 비디오)의 시대고 푸시형 미디어의 시대가 끝났다고도 하는데 지상파의 위기와 방송의 위기가 아니라 신뢰와 내적인 비효율의 문제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이런 현실을 부정하고 수신료만 올린다고 되는 문제는 아닐 거고, 안팎으로 줄탁동시(啐啄同時)를 해야 한다. 내부에서 스스로의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사진=방송통신위원회 제공
▲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사진=방송통신위원회 제공

 

- KBS와 MBC의 사장 선임 방식도 이번 정권 안에서 정비하지 않으면 언젠가 또 다시 낙하산 논란이 재연될 것이다. 정부가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인데 의지가 있다고 보나.

“국민추천 이사제 도입을 제안했는데 국회에서 논의를 해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이사들의 충돌을 완화시키고 공영방송 사장의 선임 과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기 위한 국민 참여를 제도화하는 방안이다. 지난해 미래발전위원회에서 논의를 끝내고 국회로 정부 입장을 전달했을 때 핵심 내용을 다 수용했는데 정작 국회만 가면 야당이던 시절이나 집권한 뒤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정치적 타협이 안 되는 것이다. 행정 입법을 통해 할 수 있는 건 어느 정도 다 했고 이제 방송법을 고쳐야 하는 문제다. 20여 년 전에 만든 시장의 구조가 급격하게 바뀌었는데 우리 방송을 규율하는 방송법은 제정될 당시의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지상파에 근무하는 분들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위기가 지속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지상파들이 다시 국민과 법이 부여한 공적 책무를 수용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KBS의 경우 순혈주의와 기수문화가 경쟁력을 제고하는 게 아니라 깎아먹고 있고 MBC는 최승호라는 변수가 변수가 안 됐고 사장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핵심 제작 역량이 빠져 나간 게 더 컸다고 본다. 그 부분에 대한 반전의 계기를 못 만든 것이다. 방송시장이 자본집약적일 뿐만 아니라 인력 집약적인 사업인데 포맷과 스토리 모두 MBC는 많이 망가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내가 조언하고 싶은 건 지상파는 지상파 수준으로 유료방송은 유료방송 수준으로 제작비를 투자하라, 그리고 인적인 요소가 좌우하는 경쟁력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 MBN은 승인 취소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채널A도 차명 출자 의혹이 제기됐다. 지상파와 맞먹는 수준의 영향력을 보장해줬으면서도 엄격한 설립 조건이나 공적 책임을 제대로 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이라도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MBN의 법률 위반이 확정된 건 아니고, 어떤 법을 적용할지도 검토 중이다. 미온적이라고 비판하는데, 방통위 권한으로 할 수 있는 건 하려고 노력했다. 명확한 사실과 법리를 갖고 하는 것인데 지금은 명확한 사실을 확정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기 때문에 결론이 나올 거라고 본다. 미온적으로 하거나 해야 할 역할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 방송사 외주 제작 현장에서는 여전히 불공정 관계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방통위의 역점 사업 가운데 하나였는데 성과가 있었다고 보나.

“많이 해결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현장 스탭들에게 상당히 여러차례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30년 동안 계속됐던 관행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2017년 말 5개 부처 합동으로 외주제작 종합대책을 만들었고 분기마다 점검하고 시정조치를 하고 있다.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라고 한다. 표준계약서 사용도 늘어났고 상품권 페이는 근절됐다. 독립 창작자 인권 선언문도 나왔고 외주 제작 가이드라인도 만들었다. 스탭들 노조도 늘어나는 추세다.”

- 5G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책을 낸다고 들었다.

“우리가 스마트폰 시대에는 비교적 선방했는데 정보화 시대로 진입하면서 선도 국가가 아니라 추격 국가로 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5년5개월, 방송통신 정책을 23년째 다루면서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정리했다. 5G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다섯 가지 ‘초’로 구성한 거다.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 초현실, 초격차다. 지금까지 나온 경영 전략서나 정보기술 관련 책들이 기술과 기업, 산업에 대해 혁신의 관점으로 접근하는데 나는 경제와 산업 분야에서의 디지털 대전환을 큰 흐름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입체적으로 보자는 것이다. 두 가지 키워드가 디지털 포용과 복지, 그리고 스마트 시티즌이다.”

- 다음 계획은 뭔가. 총선에 출마할 계획이라는 소문이 많다.

“결정된 것은 없다. 총선 출마 역시 가능성 중에 하나지만 어떤 형태로든 방송과 통신 정책으로 기여할 일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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