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앙일간지 부산지사가 1967년말 부산에서 권투대회를 열었다. 매표소 앞에서 한 여성이 수십장의 입장권 다발을 들고 할인 판매를 하다가 주최 측에 붙들렸다. 알고보니 그는 부산지사 기자의 아내였다. 

제대로 된 호봉도 월급도 없이 운영되던 당시 언론계 사정을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 비리였을지 모른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넘은 지금 언론은 상전벽해를 경험하고 있다. 뉴미디어 홍수 속에 신문은 하루 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고, 시청률 경쟁과 올림픽을 계기로 최고의 미디어로 각광 받았던 지상파 방송마저 기술혁명 앞에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그래도 레거시 미디어는 여전히 여론을 만들고 확대하면서 국민들 주변을 맴돌고 있다. 

김누리 교수가 지난주 ‘차이나는 클라스’에 나와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지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 예로 국회에 교수와 법률가, 언론인이 과도하게 대표돼 있다고 했다. 교수보다 교사 수가 월등히 많은데도 국회엔 교수 출신이 교사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의하는 집단이지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는 말도 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는 사람도 교수라는 게 답답했다.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나가면 국회의원을 투표가 아닌 추첨으로 뽑자는 주장이 나온다. 미쳤다고? 아니다. 국회의원 추점제는 의외로 실보다 득이 많다. 일단 당선자부터 10% 이상 득표자까지 보전해주는 막대한 세금이 안 든다. 돈을 풀어야 경제가 돈다고? 선거 한두 번 해본 사람이면 다 안다. 15% 득표하고 떨어진 후보가 실제 5000만원 쓰고도 1억원 썼다며 영수증 만들어 신고하면 1억원 받는다. 선관위가 꼼꼼하게 조사한다고? 아니다. 기술만 조금 익히면 그 정도 눈속임은 일도 아니다. 그래서 어떤 후보는 매번 선거에 지고도 재산이 늘어난다. 정당 주위에 이런 선거전문업체들이 수두룩하다.

추첨제로 국회의원을 뽑으면 지금 거대 양당이 피터지게 싸우는 대표성 논란은 일거에 일소된다. 고대 그리스도 그렇게 했으니 못할 것도 없다. 우민 정치로 전락할 거라 걱정하겠지만 20대 국회보다 더 나쁠 거 같지 않다. 

하긴 어떤 방식으로 뽑아도 마흔살 이하 국회의원이 단 둘 밖에 없는 지금보다야 나을 것이다. 2000년 전에도 했던 ‘패각 추방’ 같은 국민 소환제조차 제대로 없는 우리 정치권 얘기다. 

▲ 지난 2016년 4월11일 4·13 총선을 이틀 앞둔 국회에서 제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가 공개됐다. ⓒ 연합뉴스
▲ 지난 2016년 4월11일 4·13 총선을 이틀 앞둔 국회에서 제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가 공개됐다. ⓒ 연합뉴스

지금 욕 먹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상식을 가진 이에겐 괴물로만 보이는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피끓는 20대 청년기를 보낸 사람이 적지 않았다. 엊그제 박정희 전 대통령 40주기 추모식장에서 “당신의 따님, 우리가 구하겠다”고 눈물의 추도사를 읊었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20대 내내 민중혁명을 꿈꿔던 노동운동가였다. 

김 교수는 그들의 변절을 브레히트의 명언으로 정리했다.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인간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오랜 군사정권 하에 독재와 싸우던 지식인과 청년은 민주적 의사결정 같은 건 배울 수 없었다. 그들은 독재와 싸우면서 독재를 닮아갔다. 

어디 386뿐이겠는가. 이승만, 박정희 시절엔 결기 있던 기자들이 많았지만 서울시청과 중앙청을 거쳐 청와대(경무대) 같은 요직을 출입하면서 권력 품에 안긴 이가 적지 않았다. 

김 교수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며 전 세계를 휩쓸었던 ‘68년 혁명’의 유일한 무풍지대였던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우리 민주주의의 허약한 구조를 낳았다고 짚었다. 이렇게 박정희의 유산은 우리 몸에 오롯이 남았다. 

그러나 김 교수가 잊은 것도 있다. 3·1운동이 중국 5·4혁명을 불러 왔듯이 1968년 이전 한국은 ‘6·3세대’를 길러냈고, 신자유주의에 첫 파열구를 낸 96·97년 총파업은 2년 뒤 시애틀 전투로 이어졌다. 3년 전 타올랐던 촛불은 여전히 일렁이며 한 눈 파는 정치권에 옮겨 붙을 기세다. 모든 것을 버리는 각오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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