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숨 가쁘게 바뀌었다. 더불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빠르게 달라졌다. 그러나 이를 기록하는 공간은 찾기 어렵다. 한국의 신문박물관은 과거에 멈춰있고, 방송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은 찾을 수 없다. 군사 독재 시절 보도지침과 언론계 촌지 문화·오보의 역사 등 ‘언론의 그늘’을 기록해놓은 곳도 없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디지털 미디어로의 변화가 언론계에 끼친 영향을 타임라인과 함께 맥락적으로 설명해주는 공간도 없다. 초 단위의 미디어 소비 속에, 정작 미디어가 궁금한 시민은 갈 곳이 없다.  

해외에는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박물관이 존재한다. 이들 박물관의 공통점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전망케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박물관이 있는 국가들은 언론 신뢰도 및 언론 자유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사회도 시민과 소통하는 미디어박물관 건립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다. 미디어오늘은 미디어박물관의 공공성·효용성, 그리고 박물관이 등장할 경우 기대되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취재하고자 해외에 있는 다양한 미디어박물관을 찾아 나섰다. 이번 기획기사는 지면에 10회 연재될 계획이다. (편집자 주)

미디어의 ‘대세’는 영상으로 넘어왔다. 수많은 언론사가 텍스트 기사와 함께 영상 기사를 송고하고, 더 많은 영상을 업로드하려고 경쟁한다. 영상에 신규 사업자들이 뛰어들면서, 전통적으로 영상을 만들어온 이들은 경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영상의 시초인 영화도 그렇다. TV 드라마와의 경쟁을 지나 이제는 넷플릭스, 디즈니와의 전쟁이 열렸다. 짧은 유튜브 영상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은 영화관에서의 1~2시간을 견디지 못하기도 한다. 영화까지 모바일로 소비하는 시대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9월27일 영화가 태어난 곳, 프랑스 리옹을 찾아 이런 흐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듯 영화를 만들어 처음 상영한 사람은 프랑스의 오귀스트 뤼미에르(Auguste Lumière)와 루이 뤼미에르(Louis Lumière), 뤼미에르 형제다. 이들은 1895년 ‘시네마토그라프’(cinématographe)를 설계해 특허를 등록했고 영화를 상영했다. 리옹의 ‘뤼미에르 기념관’(Institut Lumière)은 뤼미에르 협회가 주최하며 그들 가족의 생가를 중심으로 기념관과 박물관, 도서관, 카페, 갤러리 등이 속해있다.

영화를 만든 이들의 고장인 만큼 뤼미에르 기념관의 인기도 높다. 프랑스 여행을 하는 관광객들에게도 인기있는 관광코스 중 하나다. 프랑스 최고 영화 축제 중 하나인 ‘뤼미에르 페스티발’을 주최하기 때문에 대중적 인지도도 높다. 올해 10월12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제11회 ‘뤼미에르 페스티발’ 때문에 리옹역에 들어서자마자 ‘뤼미에르 기념관’의 대형 포스터를 볼 수 있을 정도다.

▲프랑스 리옹에 위치한 뤼미에르 박물관의 전경. 뤼미에르 형제가 살던 집에 박물관을 설계했다. 사진=정민경 기자.
▲프랑스 리옹에 위치한 뤼미에르 박물관의 전경. 뤼미에르 형제가 살던 집에 박물관을 설계했다. 사진=정민경 기자.

영화는 ‘함께 보는 것’…“넷플릭스가 영화관 죽이진 못해”

뤼미에르 박물관은 뤼미에르 형제가 살던 집을 박물관 형태로 만들었다. 2002년 프랑스의 현대 미술관인 조르주 퐁피두 센터의 문화계발부 디렉터였던 도미니크 파이니(Dominique Païni)가 박물관 모습을 설계했다.

뤼미에르 형제의 아버지 앙투안 뤼미에르(Antoine Lumière)가 지은 집으로, 앙투안 뤼미에르는 사진사로 일하다가 전쟁 이후 리옹으로 피난해 스튜디오를 차렸다. 이 스튜디오에서 아버지와 형제들은 사진과 관련된 발명품을 함께 만든다. 이후 사진 건판(카메라에 의해 맺히는 상을 기록하기 위한 판)을 만드는데 성공하고 건판 공장을 차려 사업이 성공한다. 사업에 성공해 공장을 만들고, 그 공장은 주변 지역의 사람들이 대부분 취직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그들의 집 바로 옆이 공장이기도 한 이유이고, 뤼미에르 형제의 첫 영화가 ‘뤼옹의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인 이유기도 하다.

박물관을 들어서면 뤼미에르 가족의 초상화부터 집 모형도, 공장 모형도, 뤼미에르 형제들의 다양한 발명품들을 볼 수 있다. 영화라는 것을 만든 뤼미에르 형제의 업적을 기리는 것이 주요한 메시지로 보인다. 박물관에는 루이 뤼미에르가 만든 사진기와 초기 컬러사진들, 뤼미에르 형제들이 만든 초기 영화들도 볼 수 있다.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정원사 골탕 먹이기’, ‘기차의 도착’ 등의 영화를 볼 수 있다.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은 뤼미에르 형제가 찍은 최초의 필름이고 ‘정원사 골탕 먹이기’는 코미디 요소와 ‘연기’라는 것을 담은 필름이다. ‘기차의 도착’은 세계 최초의 대중영화로 영화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한다. 박물관 외부에서는 유료로 상영되는 초기영화들도 있다. 박물관이 소장한 초창기 영화는 1422개다.

▲박물관에는 뤼미에르 형제들이 만든 카메라나 판매하던 필름 등도 전시돼있다.(왼쪽) 초기 영화들과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 등을 찍은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박물관에는 뤼미에르 형제들이 만든 카메라나 판매하던 필름 등도 전시돼있다.(왼쪽) 초기 영화들과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 등을 찍은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소장품의 핵심은 역시 ‘시네마토그라프’다. 물론 ‘시네마토그라프’ 이전에도 영상을 볼 수 있는 발명품들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1891년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의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다. 키네토스코프는 순간적인 영상을 틈이 난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장치였고 한 사람씩 영상을 보는 장치였다. 그러나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프는 필름을 연속적으로 영사해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장치이고 ‘대중이 함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것’. 뤼미에르 협회에서 1992년부터 일한 교육 서비스 담당(sevice pédagogique) 모타르 마우아즈(Mokhtar Maouaz)도 영화의 속성에서 ‘함께 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모타르 마우아즈는 미디어오늘 기자와 만나 “최근 넷플릭스(Netflix) 등에서 멋진 영화와 영상을 많이 만들고 있다. ‘영화의 위기’라는 말도 들려오는데 이러한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은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장점은 아주 다양한 시리즈물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에서 한국의 ‘킹덤’을 감상했는데 아주 멋졌다. 조선시대의 굉장한 멋진 모습을 보고 놀랐다. 프랑스 영화 상영관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영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의 위기’라는 물음에는 “영화는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며 웃음을 지었다.

“TV가 생겼을 때도 영화는 위기였다. 이제는 다양한 동영상 사업자들 때문에 영화의 위기라고들 한다. 넷플릭스의 단점을 쉽게 말하면 영화 상영관을 죽인 것이다. 비유적인 말로 말이다. 그러나, 사실 넷플릭스 때문에 영화 상영관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넷플릭스 인해 상영관의 관람객 수에는 영향이 있지만 넷플릭스가 영화관을 대체할 수는 없다. 또 하나의 다른 플랫폼일뿐이다. 영화관에서는 사람들이 모여서 영화를 ‘공유’한다. 넷플릭스는 특성상 혼자서 보는 경우가 많다. 또한 보통 모바일 등에서 시청하기 때문에 영화관이 주는 경험과는 상이하다.”(모타르 마우아즈)

▲뤼미에르 박물관의 교육서비스 담당자 모타르 마우아즈(Mokhtar Maouaz)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뤼미에르 박물관의 교육서비스 담당자 모타르 마우아즈(Mokhtar Maouaz)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모타르 마우아즈는 한국 영화감독 중 봉준호 감독을 좋아한다며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넷플릭스에서 만들었지만 스마트폰으로 ‘옥자’를 보기엔 굉장히 아깝지 않나”라며 “그 아름다운 풍경과 디테일들을 모바일로 본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프랑스에는 넷플릭스에서 만든 영화를 상영관에서 틀 것이냐, 넷플릭스의 영화를 칸영화제에서 상을 줄 것이냐 등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는 “많은 영화감독들이 넷플릭스와 작업하지만 추후에 편집 문제를 두고 불만이 많았다는 걸 알고 있다. 상업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하고 감독들 마음대로 편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자신의 영화가 상영관을 통해 관객을 만나길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넷플릭스 신작 ‘아이리쉬 맨’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한국영화 어려움들 알고있어…현재처럼 투쟁적으로 만들어 주길”

그는 박물관에 찾아오는 관람객들에게 가이드를 제공하고 시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함께 만드는 일을 한다. 9월27일에도 그는 오전부터 쉴 틈 없이 단체 손님들을 가이드했다. 시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는 ‘영화 이전의 것 발견하기’로 1895년 영화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어떤 발명품들이 있었는지 체험하는 프로그램이있다. ‘찰리 채플린 필르밍’ 프로그램은 영화 만들기 문법을 알려주는 워크숍이다. 이외에도 촬영 기술 워크숍, 영화 음악 만들기 워크숍, 아이들을 위한 촬영 수업들이 마련돼있다. 각종 영화 감독들 기획전이나 특별전도 제공한다. 대부분 워크숍의 가격은 만원 이하로 저렴하다.

박물관이 뤼미에르 형제의 업적을 기리는 것 외에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하는지 물으니 그는 “저소득층에게는 박물관을 무료로 개방한다. 또한 이 박물관의 직원들이 초중등학교 등에 가서 영화에 대한 강의를 무료로 해주기도 한다. 이익의 목적이 아니라 공익을 띄는 프로그램들도 진행한다”며 “영화의 과거를 알아야 미래에 대해 설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타르 마우아즈(Mokhtar Maouaz)가 박물관의 방문자들을 상대로 가이드를 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모타르 마우아즈(Mokhtar Maouaz)가 박물관의 방문자들을 상대로 가이드를 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이 박물관의 80%는 자체 수익으로 이루어진다. 프랑스 문화부와 시 차원에서의 지원도 있지만 전체 수익의 20% 정도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시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뤼미에르 협회’에 속해있다. 때문에 시나 정부로부터 자유롭게 내부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다. 다만 건축물의 경우는 시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시에서도 관리하는 역사적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모타르 마우아즈는 “건축물 보존을 위해서라도 항상 유의할 것들이 많다. 오래된 건물임에도 보수가 어렵다. 다만 건축물을 보수할 때는 시의 재정을 지원받을 수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뤼미에르 기념관’은 현재 두 번째 박물관을 추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모타르 마우아즈는 “이 박물관이 뤼미에르 가족이 살던 집이기 때문에, 박물관으로는 한계가 있다. 특히 3층이고 옛날 집의 구조 때문에 장애인들의 접근이 어려운 점이 크다. 또한 너무 작아서 가지고 있는 소장품의 아주 일부만 전시하고 있다. 때문에 현대식 박물관을 추가할 계획”이라며 “그러나 아직 기획단계이고 예산이 확보된 사안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뤼미에르 박물관을 방문한 영화인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외관. 한국의 이창동 감독의 이름이 적혀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뤼미에르 박물관을 방문한 영화인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외관. 한국 이창동 감독의 이름이 적혀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모타르 마우아즈는 한국영화 제작자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영화에서 헐리웃 영화에 대해 쿼터제를 시행하자고 투쟁했던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최근의 영화 제작 노동 문제에 대한 이슈도 뉴스를 통해 알고 있다”며 “프랑스에서도 영화 제작의 영역에서 돈을 못 받는 사례나, 인턴으로 일을 하면서 제대로 보수를 못 받는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노동권에 대한 문제가 예민한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여전히 주 52시간 이상 일을 하는 것에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모타르 마우아즈는 “어려움이 많겠지만 한국 영화인들에게 용기를 전해주고 싶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투쟁적으로 영화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난 정말 한국영화의 팬”이라고 전했다.

※ 현지 통역: 당현선 (Léa Dang)
※ 본 기사는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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